호구산은 산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얕았다. 차라리 산(山)자를 빼고 그냥 호구(虎丘)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한 이름일 것이다. 워낙 언덕 하나 없는 평야 지대인 이 곳에서는 이런 언덕도 산으로 느껴졌을 것임을 입구의 현판에 적힌 "오중제일산(吳中第一山)"이라는 현판이 말해 주고 있다. 이름에서 보다시피 이 일대는 옛날 춘추전국시대의 오(吳)나라 영토이며 이곳 소주는 그 수도였다. 내일 우리가 가야 하는 항주(杭州)는 오(吳)와의 원수지간이었던 월(越)나라의 본거지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을 만든 유명한 전략가인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 손무(孫武), "와신상담(臥薪嘗膽)"과 그 주인공 월왕(越王) 구천(句踐 : ?-BC465, 월왕 允常의 아들), 오랫동안 중국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여인 "서시(西施)", 그를 사랑했던 범려(范 )와 그가 남긴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 오왕(吳王) 합려(闔廬 : ?-BC496, )와 그의 아들 부차(夫差), 원한의 사나이 오자서(伍子胥) 등에 관한 감동과 애절함이 묻어 있는 곳이 이 일대이다.
호구산은 바로 월왕 합려가 묻힌 무덤이 있고 그와 아들 부차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 남겨져 있다. 산이름인 호구산은 무덤을 호랑이가 지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이드는 지금도 호랑이가 나온데요라고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호구산(虎丘山)에 얽힌 장쾌(壯快)한 드라마를 알려면 지금부터 2,50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오(吳)나라도 월(越)나라도 아닌 초(楚)나라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의 제육(第六) 오자서편(伍子胥篇)과 세가(世家) 41권 월왕(越王) 구천편(句踐篇)을 중심으로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초나라 평왕(平王)은 태자 건(建)을 진나라 여자에게 장가를 보내고자 하였다. 배행(配行)으로 갔던 비무기(費無忌)라는 자가 돌아와 평왕에게 야릇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장대한 이야기의 서막(序幕)이 오른다. 이름으로 보면 "꺼리는 것이 없다"는 이 얄팍한 인간 때문에 후대의 우리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맛볼 수 있으니 감사를 한다. 이 녀석은 평왕이 호색한(好色漢)이라는 것을 알고 며느리가 될 여자가 무척 아름다우니 평왕에게 아들 보다는 당신이 가지라고 유혹한다. 그 유혹에 홀라당 넘어간 평왕은, 훗날 역시 며느리가 될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산 당현종(唐玄宗)과 같이 역사에 남은 폐륜아가 되었을 뿐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원래 비무기는 태자 건의 부하였는데 못된 짓을 범하여 밉상을 받고 찍힌 인간이었다. 그러니 장차 태자가 왕이 되면 자기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두려워 밤낮으로 태자를 비난하였다. 평왕도 자기가 저지른 폐륜을 덮을 생각으로 마침내 반역죄를 덮어씌우고 태자의 스승인 태부(太傅) 오사(伍奢)를 불러서 태자의 죄를 자백하라고 고문을 하였다. 그러나 강직했던 오사는 오히려 소인배의 말을 듣고 태자를 죽이려고 하는 평왕을 책망하였다. 화가 난 평왕은 오사를 투옥하고 태자를 유인하여 죽이고자 하였으나 데리러 간 분양(奮揚)이 태자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도망을 가도록 하였다.
남은 오사를 죽이려고 하였을 때 평왕과 비무기에게 걱정이 되는 것은 오사의 아들인 오상(伍尙)과 오원(伍員)이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두 아들을 아버지와 함께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살려주는 조건으로 오사에게 두 아들을 부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사는 "큰아들 상(尙)은 죽을 줄 알아도 온다. 그러나 작은 아들 원(員)은 성품이 모질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며 부끄러움을 참을 줄 안다. 아마 불러도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상은 아버지와 함께 죽었고 원은 태자 건이 망명을 한 송(宋)으로 도망갔다. 바로 이 사람 원이 이 비장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자서(伍子胥)이다.
나는 젊은 시절 이 대목을 읽고 형인 상의 비장함을 생각하면서 밤새 울었다. 대체로 효(孝)란 무엇인가? 부모의 위기를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구하려 하는 것인가? 후일의 복수를 위하여 굴욕을 참는 것인가? 다행히 형제가 있어서 하나는 아버지와 함께 죽을 수 있었고 하나는 도망가서 복수를 할 수 있었으니 상과 원의 역할분담은 효를 다한 것이다. 그러나 비천한 나는 부모가 위기에 빠지지도 않았고 고향에서 스스로 농사짓고 내가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섬기지를 못하니 오사의 두 아들에 비하면 사람이라 할 수가 없다. 그 부끄러움을 생각하며 나는 호구산 자락 어딘가에서 오자서의 눈빛을 마주칠까 두려워하였다.
사마천도 오자서열전의 후기(後記)에서 이렇게 말한다.
"원망하는 일은 사람에게는 독(毒)이 되는 구나. 임금이 된 자는 신하에게 원망을 사서는 아니된다. 일찍이 오자서가 아버지를 따라서 죽었다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과 무엇이 달랐겠는가? 소의(小義)를 버리고 대의(大義)를 따랐으니 큰 치욕을 씻어 이름을 후세에 날렸다. 그 뜻이 비장하구나."
그러나 아버지를 따라서 죽은 상을 소의를 지켰고 도망가서 복수를 한 원이 대의를 지킨 것이라는 사마천의 말에 동감이 가지 않는다. 쓸쓸히 감옥에서 억을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아버지를 두고 차마 도망가지 못한 형의 죽음도 아우에 못지 않은 대의라고 생각한다. 사마천의 생각도 그러했던지 이 형제의 이야기를 열전에 기록할 때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의 바로 앞에 두었다. 공자의 제자들 보다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도망 간 오자서에게로 돌리자. 태자를 따라서 고난의 망명 생활을 하던 오자서는 정(鄭)나라에서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勝)을 데리고 이 곳 오(吳)나라로 다시 도망을 하였다. 추격군에게 쫓겨 강가에 이르렀는데 마침 배 한 척이 있어서 얻어 타고 무사히 도망을 하였다. 아마 우리가 보았던 수많은 물줄기 가운데 하나였으리라. 고마움을 느낀 오자서가 자기가 차고 있던 보검(寶劍)을 사공에게 주었더니 사공은 사양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목에는 곡식 5만석과 벼슬이 걸려 있소. 만약 내가 재물을 탐했다면 그 까짓 칼 정도이겠습니까?"
이러한 의인(義人)은 중국사 곳곳에서 나온다. 한푼의 재물에 배신을 일삼고 보잘 것 없는 지위에 평생의 은혜를 져버리는 인간들은 이렇듯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 평생 배를 젓는 사공이라도 의인을 도와서 우리의 주인공이 살아 남도록 하였으니 이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손인 운하의 사공은 이국(異國) 나그네의 푼돈을 앗아갔으니 아마도 내가 의인이 아님을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당시의 오나라는 료(僚)가 왕이었고, 공자(公子) 광(光)이 병권(兵權)을 잡고 있었다. 광(光)이 초(楚)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자 복수의 기회라고 생각한 오자서는 오왕에게 지금 다시 초(楚)나라를 공격하면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광은 오자서가 복수심 때문에 권하는 것이라고 반대를 하였다. 오자서는 광이 장차 오왕 료를 죽일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객(刺客)인 전제(專諸)를 광에게 추천하고 자신은 물러나 승과 함께 농사를 짓고 시기를 기다렸다. 과연 아버지인 오사의 말처럼 서두르지 않고 참는 오자서의 진면목이 보이는 대목이다.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애석하게도 복수의 대상인 초나라의 평왕이 죽었다. 그리고 아들에게서 빼앗은 여자가 낳은 진(軫)이 초나라의 소왕(昭王)으로 등극하였다. 오왕 료는 초나라의 국상을 틈타서 기습을 하였다. 그러나 이 부대는 오히려 초나라 군대에게 후미(後尾)를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병권을 잡고 있던 공자 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침내 오자서가 추천한 자객 전제에게 료(僚)를 암살하도록 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광이 왕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바로 호구산에 묻힌 오왕 합려(闔廬)이다.
초나라에서도 정변이 일어나 백비(伯 )가 오나라로 망명을 하였다. 합려는 왕이 된지 3년만에 오자서와 백비에게 초나라를 치도록 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승세(勝勢)를 틈타서 초나라의 수도인 영( )을 치자는 주장을 이번에는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가 반대를 한다. 5년 후 마침내 오나라는 손무와 오자서의 활약으로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하였다. 그러나 원수의 아들인 소왕은 이미 도망을 한 후였다. 오자서는 평왕의 묘를 파서 그 시체를 채찍으로 3백번이나 내리치고 분을 풀었다고 한다. 골수에 맺힌 한이 그로 하여금 잔혹한 짓을 하도록 하였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뜻밖에도 자신에게 화가 된다.
오자서(伍子胥)가 초나라에 있을 때 친구였던 신포서(申包胥)에게 반드시 도망하여 초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자 신포서는 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이름에 끝자가 같은 것은 친구로서 우정이 그만큼 각별했던 탓이리라. 오자서가 평왕의 시체에 매질을 했다는 말을 들은 신포서는 사람을 보내서 오자서의 지나침을 나무랐다. 그러나 오자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 천리(天理)를 알지만 순리에 따르지 않고 역리(逆理)를 시행할 뿐이다"
신포서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말대로 소왕을 모시고 전전하다가 진(秦)나라의 도움을 받아서 마침내 오나라를 몰아내고 초나라를 지킨다. 나는 오자서와 신포서의 우정(友情)과 기개(氣槪)와 의(義)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영웅의 선택일 뿐이다. 저승에서 만난 두 친구는 아마도 이곳의 명주 소흥주(蘇興酒)를 마시며 다시 우정을 나누었으리라.
이쯤에서 복수의 사나이 오자서가 야망을 멈추었다면 우리는 다음 이야기를 듣지 못할 뻔했다. 평왕의 시체에 매를 친 오자서는 복수가 끝났으면 홀연히 초야로 돌아가 아버지와 형의 명복을 빌었어야 했는데 전략의 천재 손무와 함께 양자강을 건너서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까지 굴복시키고 합려를 춘추시대의 패자(覇者)로 만든다. 드디어 항룡유회(亢龍有悔)의 단계가 된 것이다. 곁들이는 말은 이 때 공자가 노(魯)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
합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내일 우리가 가는 항주(杭州)를 근거지로 하는 월(越)나라를 공격하다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句踐)에게 역공을 받아서 고소성(姑蘇城)에서 손가락 부상을 입고 앓다가 죽게 된다. 아깝다. 그때 구당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침뜸으로 치료를 하였을 것을! 고소성은 앞에서 소개한 장계의 풍교야박에 나오는 곳이다. 아쉬운 것은 이번 일정에 고소성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 이곳을 오면 필히 고소성을 찾아서 합려의 끝없는 욕심을 탓하리라. 욕심장이 합려는 아들인 부차에게 자신의 복수를 다짐하고 이곳 호구산에 묻혔다.
호구산에는 이러한 긴 복수극에 얽힌 드라마가 있다. 복수극의 후편은 다음으로 미루자. 부차는 아버지의 무덤을 만들고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을 천인석(千人石)이라는 넓직한 바위에 모아서 모두 죽였다. 산 중턱에 있는 이 바위는 일부러 다듬은 듯 매끈하다. 그 애틋한 사람들의 피는 2500년이 흘러도 마르지 않고 지금도 비가 오면 핏물이 흐른다고 한다. 그 애석함을 조문하는 후세 사람이 "천인좌(千人坐)"라는 세 글자를 바위의 앞에 핏빛의 전서체(篆書體)로 새겨 놓았다.
천인석 옆을 끼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검지(劍池)가 있다. 부차가 아버지의 혼백을 지키기 위하여 명검(名劍) 삼천 자루를 묻어 두었다는 이야기가 당나라 때 편찬된 "오지기(吳地記)"에 나온다. 좁다랗게 깍아 지른 듯이 양옆으로 서 있는 바위 계곡의 밑에는 파란 물이 칼날을 보는 듯 섬뜻하고 그 절벽에는 원(元)나라의 주백기(周伯琦)가 쓴 "검지(劍池)"라는 전서체가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풍학운천(風壑雲泉)"이라는 파란 글자가 있다. 바람이 후벼파고 구름이 내려와 샘물이 되었다는 운치있는 표현에도 불구라고 나는 검지가 주는 섬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입구에는 역시 붉은 해서체(楷書體)로 "호구검지(虎丘劍池)"라는 네 글자가 있다. 그리고 동그랗게 만든 입구의 머리 부분에는 검지(劍池)를 말하는 듯 "별유동천(別有洞天)"이라는 글자도 있다. 이 곳을 들어가면 천국이 있다는 의미인 이 글귀는 호구산에 얽힌 처절한 이야기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후대의 사람들은 호구산의 가슴 아픈 사연보다는 관광지로서의 가치를 더 두고 있는 듯 이 곳을 "오중제일승(吳中第一勝)"나 "산청수수(山淸水秀)"라는 현판을 걸어 놓고 있다. 명(明)나라의 고거(高居)는 이 곳에 와서 경치에 반해 다음과 같은 시(詩)를 남긴다.
노승지공산이거(老僧只恐山移去)
일락선교쇄사문(日落先敎鎖寺門)
늙은 스님은 산이 옮겨질까 두려워
해가 지면 먼저 이르는 말이 절문을 잠그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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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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