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냉일선이 두타산을 지나고 있었다. 때는 오월이라 녹음방초가 우거져 있었다. 두타산 중턱에는 백풍장군과 웅장군이 도를 닦고 있었다. 옛적부터 여기에는 많은 인골이 나뒹굴었다. 백풍산군과 웅장군이 지나가는 행인을 마구 잡아 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육식을 자제하고 있었다. 도력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절제하며 음식을 먹지 않고 기를 들이마시려고 애쓰고 있었다.
“염소조사가 도를 얻기까지 우리에게 준 단약 외에 여름에는 화성의 붉은 기운을 겨울에는 수성의 검은 기운을 먹었다고 했지.”
백풍산군은 입맛을 다시며 배고픔을 참기 어려운 듯 웅장군에게 물었다. 백풍산군은 조급히 굴었으나 웅장군은 다소 미련한데가 있어서 지긋이 수도를 계속했다. 백풍산군을 무시하다가 이윽고 계송을 읊었다.
“속세의 즐거움은 죽음으로 보답되고
쌍선동의 수도는 생사를 초월시키네”
나직한 소리였으나 공력이 실려있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이 소리를 냉일선이 들었다. 냉일선은 유유히 동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에는 파리가 많이 날아들었다. 파리들이 백풍산군의 눈 옆에 많이 달라붙었다. 귀찮은 파리가 백풍산군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이리저리 파리를 날리다가 마침내 옆에 있는 돌을 들고 파리를 찍어 죽이기 시작했다. 몇 마리의 파리를 잡은 후 옆의 웅장군을 보니 코끝에 파리가 앉아 있었다. 백풍산군은 파리를 겨냥하고 힘껏 돌을 내리찍었다. 파리도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지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웅장군도 뒤로 넘어졌다. 웅장군이 머리를 한 손으로 짚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백풍산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어쩔줄 몰라했다. 웅장군은 백풍산군에게 소리쳤다.
“너는 정말 쓸모 없는 놈이구나 왜 수도하는 내 머리를 돌로 내리치느냐? 내가 깊은 수도를 하지 않았다면 피를 흘리면서 죽었을지도 모를 것이 아니겠느냐 너 같은 놈하고는 수도를 할 수 없다. 나는 저 봉우리 너머 동굴로 옮겨가겠다. 쓸모없는놈…….”
웅장군이 투덜거리며 쌍선동을 나가려고 할 때 냉일선이 동굴입구에 당도했다. 웅장군은 냉일선의 비범한 모습에서 위압감을 느껴 공손히 대하였다.
“어느 고인 이신데 여기 쌍선동을 찾아 오셨소?”
냉일선은 대답을 않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 안에서 나오던 백풍산군은 냉일선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으으흠, 오랫동안 기만 복용하였더니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보기에도 오동통하니 기름이 흐르는 맛있는 먹거리가 들어왔군.”
냉일선이 듣거나 말거나 백풍산군은 멋대로 지껄여 댔다. 냉일선은 백풍산군을 무시하고 웅장군에게 물었다.
“너희는 인간이 아니라 범과 곰인데 어떻게 도를 깨치게 되었는고?”
웅장군은 공손히 대답했다.
“예전에 수행이 깊지 않은 도사를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그 도사가 이르기를 천지간에 있는 생물로서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이 달린 자는 다 수행을 거쳐 신선이 될 수가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도심이 일었지요. 그래서 수도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웅장군의 말을 중도에 가로채서 백풍산군이 말을 했다.
“그 놈은 유난히 맛이 있었지. 흐흠.”
동안의 냉일선이 하얀 수염을 쓸어 내리면서 물었다.
“그는 이름이 무엇이었느냐?”
웅장군은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후 소상히 지난 일을 털어놓았다.
“그 젊은 도사의 이름은 능허자(凌虛子)라고 하였습니다. 천하를 주유 하면서 학식을 넓혔는데 불로불사의 도를 깨치고자 도공(道功)산에 있는 조식조사를 찾아갔답니다. 그 조사는 능허자에게 숨을 들이키고 내뱉는 것을 지켜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잡념이 떠올랐답니다. 능허자가 깨닫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자 하루는 조식조사가 능허자를 불렀답니다.
“너도 알다시피 나에게는 노모가 계시다. 내가 젊어서 천하를 주유 하며 학문을 익히느라 효도를 하지 못하였으니 네가 봉양하는걸 도와주도록 해라 내일부터 눈이면 노모 님을 목욕을 시켜드려라 알맞게 물을 데워 씻겨 드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태가 아름답다고 칭송을 하도록 하라.”
조식조사의 명령대로 능허자는 그의 노모를 모시면서 칭송을 했다.
“노모님 살빛은 우윳빛이고 두루미인양 우아한 풍채 송백 같은 기품 있는 얼굴 참으로 아릅답습니다.”
능허자가 칭송을 하였으나 노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매일 목욕을 시키면서 능허자는 노모를 칭송하였으나 노모는 항상 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모는 능허자에게 물었다.
“혹시 나를 좋아하는 것인가?”
능허자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노모는 한숨을 쉬면서 신세타령을 했다.
“내 남편은 자네의 스승을 낳고서 얼마 되지 않아서 병으로 죽었지 지금 자네는 나와 정을 나누고 싶다고 하니 나를 마음대로 하게.”
능허자는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고 싶지만 스승이 살아 계신데 어찌 스승의 모친과 정을 나누겠습니까 두려워서 감히 행동하지 못하겠습니다.”
노모는 한숨을 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에 노모는 능허자를 불렀다.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다른 손에 실타래를 쥐고 있었다.
“이 실을 풀고 나가서 네 스승의 베개에 묶어 놓게.”
조식조사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실을 베개에다 묶어주고는 능허자를 돌려보냈다. 조식조사는 침상에 눕는 대신에 나무토막을 놓고는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실을 따라와 베개를 확인한 눈먼 노모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아들 때문에 정을 나눌 수 없다고 했지 휴…….”
노모는 도끼를 쳐들고 나무토막을 내리쳤다. 이때 조식조사가 태연히 말하였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노모는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조식조사는 말없이 옆에 서 있었다. 능허자는 이 모든걸 지켜보았다. 조식조사는 능허자에게 말했다.
“능허자야 너는 이제 여기를 떠나거라 욕망은 그 모든걸 뛰어 넘는다. 무극에서 태극이 생기고 오행과 팔쾌가 나오느니라. 태어난 것은 늙고 죽으니 이것이 자연의 순리다. 너는 욕망을 따라서 순리대로 죽든지 아니면 자연의 역리를 따라서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아 눈을 감고 잡념을 없이해서 일심으로 태극을 지나서 무극에 이르면 가히 대선이라 일컬어지리라.”
능허자는 조식조사에게 이별의 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두타산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웅장군과 백풍산군을 만났다. 백풍산군이 황급히 잡아먹으려는 것을 웅장군이 말렸다. 능허자의 지난 사연을 듣고 웅장군은 그를 살려 주려고 하였으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백풍산군이 능허자를 단숨에 잡아 먹어버렸다. 먹고 난 후에 그의 유골은 은은한 금빛을 내뿜었다. 웅장군을 그의 말대로 수련을 해서 어느 정도의 도력을 갖게 된 것이었다. 백풍산군은 도력이 웅장군에 미치지 못하였다. 웅장군이 이야기를 마치자 백풍산군은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냉일선에게 다가갔다. 단숨에 냉일선의 머리를 깨물려고 시도했으나 일순간 냉일선의 몸이 흔들거렸다. 전광석화 같이 뒤로 빠지면서 연검을 허리에서 뽑아들고 연검삼식을 펼쳤다. 화려한 검화가 서너 송이 피어올랐다. 백풍산군의 입과 이빨이 전부 절단되었다. 손으로 피가 철철 흐르는 입을 막고 백풍산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가냘픈 듯한 냉일선을 쳐다보았다. 냉일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다시 불손하게 대하면 두 눈알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웅장군이 엎드려서 애원하였다.
“대선께서는 아량을 베풀어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하늘이 우리에게 다른 생물의 피와 살을 먹게 한즉 순리대로 사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냉일선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웅장군에게 물었다.
“너는 순리가 아닌 역리를 따르고 싶으냐?”
웅장군은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냉일선은 웅장군에게 역리를 가르쳐 주었다.
“너희들은 마늘과 쑥을 한 짐 해다가 동굴 속에 두고서 구십구일동안 밖으로 나오지 말고 수도해라 마음을 편히 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만물이 헛됨을 깨닫고 몸 안의 일월과 감리를 사귀라 기를 보전하고 진여의 본성을 따르면 하늘과 수를 같이하며 겁을 겪게 되리라.”
냉일선은 웅장군에게 말을 한 후에 백풍산군에게도 말을 남겼다.
“너의 입술에는 새살이 돋아나고 이는 빠지고 다시 돋아날 것이니 도를 깨치면 무서운 범골범태를 버리고 선골선태를 얻게 되리라.”
냉일선은 말을 마치자 공중으로 떠올라서 허공 중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웅장군과 백풍산군은 동굴 속에서 수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웅장군은 정신을 집중시키고 수도에 정진하였으나 백풍산군은 산만하여 고뇌만 더 늘어갔다. 이미 강호에 이름을 떨쳤기에 두타산 쌍선동 옆에는 토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백풍산군은 배가 너무 고파서 현기증이 났다. 문득 웅장군이 수도한지가 백일이 되는 것을 알고 쌍선동으로 힘없이 돌아갔다. 거기에는 아릿다운 아가씨가 있는 것이었다. 웅장군이 탈태환골하여 웅선녀(熊仙女)가 된 것이었다. 너무나도 맛있을 것 같아서 백풍산군은 목덜미를 깨물려고 달려들었다. 슬쩍 피한 웅선녀는 백풍산군을 힘껏 밀어버렸다. 앞으로 돌격하던 기세와 더불어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동굴 벽을 들이받고 백풍산군의 머리는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웅선녀는 미련 없이 이 곳을 떠나서 서기가 서린 영산을 찾아 떠났다. 언덕을 넘어갈 때쯤 유항이라는 무서움을 모르는 젊은 사냥꾼이 나타났다. 널부러져 있는 백풍산군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익숙한 솜씨로 호피를 벗기기 시작하였다. 백풍산군은 죽으면서 본래의 모습인 호랑이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유항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껍질을 벗기는 와중에 한 두 점의 살을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껍질을 다 벗기고 호랑이 고기를 실컷 먹고는 입을 쓱쓱 문지르면서 중얼거렸다.
“언제 먹어도 굶주린 호랑이 고기는 맛있단 말야. 호랑이란 놈은 뼈까지도 약으로 쓰니 버릴 것이 없어. 이야말로 굶주린 놈이 남의 배를 부르게 해주니 무가 유가되고 유가 무가 됨이로다."
유항은 고생하지 않고 호랑이 가죽을 얻게 되서 매우 기뻐하였다.
"백풍산군의 위세는 물거품 같았고
인생도 흐르는 물처럼 속절없도다.
어제 아침에 붉은 얼굴과 검은머리가
어느덧 오늘은 흰색으로 변하네
옛부터 좋은 음식은
수명을 늘린다고 했건만
맞지 않는 음식이 백풍산군의 명을 재촉했더라
사람들아
오직
토납을 살펴
선도의 수행을 쌓는 것이 좋으리라"
유항은 되지도 않는 시 나부랭이를 읊다가 호랑이 뼈까지 챙겨서 희희낙락거리며 쌍선동을 떠났다.
-제3부끝 -
김태일
2006-08-17 22:17
웅선녀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와 비슷하군요.
그럼 냉일선은 환웅?
무대가 점점 백두산과 가까워지는 듯... ^^
이제 곧 단군에 이어 치우천황이 등장하여
그 유명한 탄록대전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지게 되겠군요. ^^
강병철
2006-08-17 22:22
김태일선생님!
성원에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끝을 맺고 다음 기회에 좀 더 쓰든지 하겠습니다.
김태일선생님은 필력이 뛰어나서 시, 소설, 수필 어떤 것이든 마음만 먹으면 훌륭히 쓸 것 같군요.
좋은 작품 많이 쓰십시요.
그간에 보여준 우의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뚜럼~
2006-08-18 00:36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간사의 허와 실... 그러하기에 더욱 사랑해야할 인생이군요^^ 움헤헤 아무쪼록 건강하시길...넙쭉!!!
강병철
2006-08-18 00:56
박순동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홈페이지에서 가끔 구성진 노래를 듣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으니 참으로 깊은 맛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관심에 감사합니다.
김순이
2006-08-18 10:34
아니, 벌써 파장입니까, 이제 막 전을 벌여놓는 줄 알았는데....
재미있어가는데 끝이라니 섭섭하군요.
강병철
2006-08-18 16:23
김순이선생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오인자
2006-08-19 17:01
너무 황급하게 막을 내렸군요. 그럴만한 사정이라도?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데, 아쉬워요.
무더위에 이야기 전개 시키느라 고생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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