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12-
“말로써는 뜻을 전하지 못하니 스승이 있어 그 도를 전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여동빈조사께서 정좌하고 앉아 마음을 고요히 하고 기를 응집시키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을 평정시키는 것은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고 가늘게 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축기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진국태가 다시 물었다.
“축기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장삼이가 그 깊은 뜻은 모르고 그저 아는 대로만 설명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에 설명하였다.
“이문기(異聞記)란 책에 있는 이야기에 거북이의 호흡을 흉내 내어 3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난 소녀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축기를 하면 정신이 통일되고 나와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침내 우주와 합일이 되면 승천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전란이 한창일 때에 정광정이란 사람의 마을이 전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의 가족이 몰살당하는 와중에서 가까스로 그의 네 살 난 딸을 구하였다. 그러나 같이 데리고 다니다가 같이 죽을 상황이어서 약간의 음식과 함께 딸을 큰 무덤에 숨겼다. 그는 적군에게 잡혀서 군역을 당하게 되었다. 딸의 안위가 걱정되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3년이 지난 후에 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는 딸의 유골이나마 수습할 심사로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는 무덤 속에서 살아있는 딸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처음에는 딸이 한이 맺혀서 유령으로 나타나서 자신을 원망하는 걸로 생각하고 자신이 헛것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딸이 온전하게 생명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고는 기뻐하며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그녀는 음식이 떨어져서 배가 고픈 가운데 구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살펴보니 한 마리의 작은 거북이가 목을 내밀어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 마시는 것을 보고 따라 했더니 배고픔이 가시고 지금까지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장삼이는 진국태에게 도교에 대하여 아는 것을 전부 가르쳐 주고 진국태에게 침술과 약초에 대하여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일로 진국태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진국태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전라도(全羅道)에 까지 이름을 떨쳤을 때였다. 영조(英祖)가 병이 나 팔도의 명의들을 부르자 진국태의 의술을 아는 전라(全羅)감사는 곧 진국태를 불러들여 한양으로 보냈다. 조정에 입고 들어갈 의관도 갖출 수가 없었던 진국태는 남루한 차림새로 갔는데 그의 차림새를 보고 사람들이 괄시를 했다. 주막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의원들에게 정승댁 마님이 길쌈을 하다 쓰러졌으니 처방을 해달라고 사정했다.
의원들은 임금의 병을 고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중이라서 누구 하나 그 환자에게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구석에 있던 진국태가 표정 없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이보시오, 돌아가서 쌀 일곱 알을 물에 불려서 마님에게 먹이시오.”
진국태가 너무나 단순한 처방을 내리자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신뢰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간 그 사람은 그대로 처방을 상전에게 전하였다. 모여 앉았던 의원들은 진국태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이 다시 와서 진국태를 청하여갔다.
“의원님의 처방으로 마님이 회복되었습니다. 정승께서 의원님을 모시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 사람은 사양하는 진국태를 억지로 데리고 갔다. 정승이 직접 마중 나와 극진히 치하하고 융숭한 대접을 했다.
당시에 영조는 등창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등창은 나아가는듯하다가 다시 도지고 하여 고질병이 되어가고 있었으며 소문난 의원들도 영조의 등창을 치료하지 못해서 쩔쩔 매고 있었다. 감히 영조의 등창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의원이 없었다. 진국태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다가 거미집과 거미 일곱 마리를 잡아오도록 하고는 그것을 찧어서 혼합했다. 그것을 영조의 등에 붙였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였다. 3일 만에 영조의 등창은 깨끗이 치료되었다. 영조는 진국태의 공을 치하하고 궁중에서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국태가 간곡히 사양하였으므로 영조는 진국태에게 좌수라는 직함을 하사했다. 이후로 진국태는 진좌수라고 사람들이 불렀다.
진국태가 기이한 결정을 많이 했지만 가족들은 대부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지 이문일은 어느 정도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 즈음 진국태는 선도의 깊은 수련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눈에 보이는 실상 외에 보통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지하게 되어 있었다.
김가기(金可紀)는 신라의 학자였는데 제38대 원성왕 때 당나라의 빈공과에 급제했다. 그는 신선도를 알게 되어 종남산 자오곡에 은거하며 수련을 하였는데 도력이 깊어져서 옥황의 조서를 받게 되었다. 당나라 대중11년 12월에(858년) 당의 황제에게 자기가 옥황상제의 부름으로 이듬해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그 말을 듣고 황제가 말하였다.
“그런 일을 예전에 들은 바가 없다. 그 옥황상제의 조서를 보여 주시오.”
김가기는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조서를 들고 온 선인이 그 조서를 인간 세상에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궁녀 4인과 내관 2명을 보내어 김가기의 시중을 들라고 명한 후에 동태를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다. 김가기는 조용히 방안에서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방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시종들이 이상히 여겨 몰래 훔쳐보았다. 방안에는 선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즐거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김가기가 예언한대로 2월 25일 하늘로 올라갔는데 수천 명의 군중들이 모여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진국태가 장삼이에게 선인의 길에 대하여 들은 후 그의 말대로 전력을 다하여 수도하며 스승을 염하자 하루는 푸른 소를 타고 있는 노인과 함께 김가기가 그에게 나타나 가르침을 주었다. 그 후로는 새로운 눈이 열려 보통사람이 보지 못하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
하루는 진좌수와 문일이가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늦은 밤에 밤길을 가고 있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황급히 지나가고 있었다.
“노파는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오.”
진국태가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엉? 자네는 내가 보이는가? 자네야 말로 어디로 가는가?”
그 노파는 진국태 일행을 흘깃 쳐다보더니 총기가 흐르는 눈을 빛내며 진국태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진국태의 행선지가 어디냐고 되물었다.
“밤이 늦어서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진국태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난 다녀와야 할 곳이 많아 대정(大靜)고을과 정의(旌義)고을에 다녀와야하지.”
진국태는 밤길로 명월진(明月鎭)에서 대정(大靜)과 정의(旌義)를 다녀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진국태의 생각을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노파가 말하였다.
“난 삼신(産神)할미인데 대정(大靜)고을에는 아들을 점지하고 정의(旌義)고을에는 딸을 점지하러 가네. 대정(大靜)고을에서 날 사내아이는 하루에 보리 한 홉을 타고 나고, 정의(旌義)고을에서 태어날 계집아이는 백정집안이지만 하루 백미 세 홉씩은 타고 날거야.”
진국태가 정중히 대하자 기분이 좋은 삼신할미는 진국태에게 천기를 누설하고 황급히 길을 떠났다. 이 말을 기억한 진국태는 정의(旌義)고을 백정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천한 백정의 딸과 아들을 혼인시키자 가족 모두가 불만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정하여져 있다. 내가 자식을 어여삐 여겨 일을 도모하지만 하늘이 이루지 않는구나.”
진국태가 억지로 며느리를 맞아들였지만 아들이 복을 차는 것을 보고 한탄하였다.
진국태가 육십이 되자 조용히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 이문일도 조용히 사라졌다. 그의 초상을 치룬 후에 한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충청도에서 힘들게 진국태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배에서 내리자 진국태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 환자가 상심해서 힘없이 걸음을 떼고 있을 때 백마가 그 앞에 섰다. 인자하게 생긴 노인이 수염을 쓸어 올리면서 말하였다.
“진국태의 아들에게 찾아가서 약함 첫째서랍에 있는 처방을 달라고 하시오.”
말을 마치고 말을 타고 노인은 서쪽으로 달려갔다.
그 환자는 진국태의 아들에게 찾아가서 그대로 이야기를 전하였다. 아들이 의아하게 여기며 약함을 열어보자 과연 그의 병을 치료할 처방이 적혀 있었다. 진국태의 아들은 그 노인의 모습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 환자의 대답을 듣고 진국태의 아들은 깜짝 놀라며 진국태와 꼭 같다고 말하였다.
진국태가 세상을 떠나자 내키지 않은 결혼을 시켰던 친족들과 아들은 백정집의 며느리를 천한 집안의 딸이라고 하여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쫓겨난 며느리는 길가에 앉아 울고 있다가 도붓장사를 만나 부부가 됐다. 그들은 산간마을에 가서 밭을 일구며 살았는데 농사가 잘 되어 금세 부자가 됐다. 행운을 갖고 태어난 여자라서 하는 일마다 잘 되었던 것이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던 중에 옛 남편의 가문이 망하여 거지가 됐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부인은 어느 날 남편과 의논하여 거지잔치를 열었다. 결국 전 남편을 만난 부인은 옛 남편에게 새 옷을 주고 음식을 잘 대접했다. 그러나 진국태의 아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진국태가 그의 아들의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김순이
2005-12-04 19:13
동장군이 벼락치듯 달려들어 가을의 머리채를 휘잡아 메치는 날, 그런 오늘, 파전을 부쳐먹으며 의선12를 읽다....ㅎㅎㅎ
강병철
2005-12-04 19:46
날리는 눈발을 보며 선생님은 무슨생각을 했을까요!
궁금하군요.
매서운 날씨에 건강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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