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5 -
김수길은 감격하여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까지 누구를 이처럼 존경해본 적이 없었다. 이언수의 염소얼굴이 오늘은 광채를 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옥녀는 김수길이 사업을 정리하고 이언수를 따라다니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언수가 자신의 병을 치료한 후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적극적으로 김수길에게 염소도사를 잘 모시하고 권하게 된 것이다. 정옥녀는 목소리가 이전과 약간 달라졌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다녔다. 몸도 과거 수준을 거의 회복되었다. 바른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몸을 굽혔다 펴는 굴신운동을 하게 되었다. 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건강의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게 되었다. 작은 것의 행복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병이 그녀의 생각을 크게 바꾸게 하였으며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자식들마저도 증오하다가 이제는 사랑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이마에 세로로 아로새겨진 주름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를 상냥하게 대하였고 그녀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명백하게 정옥녀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날씨가 쌀쌀하다고 느껴질 무렵에는 김수길도 대충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자주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으므로 김수길은 인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벽에 자주 부딪혔다.
“물구나무를 서면 척추가 곧게 펴지니 물구나무를 서는 것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되지.”
이언수가 일반적인 간단한 동작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요가동작을 설명하는 듯해서 김수길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의 의술은 요가와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까?”
이언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의 의술은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요가는 균형을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나의 의술과 일치한다. 양성력과 음성력의 균형, 긴장력과 이완력의 균형, 확장력과 수축력의 균형, 생성력과 소멸력의 균형, 과한 힘과 부족한 힘의 균형을 이루면 인간은 분명히 건강체가 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손상된 인간의 균형유지력(均衡維持力)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복원시키는가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김수길은 이언수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수길이 고개를 끄덕일 때 이언수는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듯이 한탄했다.
“인간이란 참 허무한 것이야. 생명이란 것이 너무나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언수가 말을 그쳤다.
“실례합니다.”
아가씨의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언수는 나가서 그녀를 쳐다보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리를 곧게 펴고 절대 무릎을 굽히지 마시요. 허리를 굽히면서 몸속에 있는 공기를 완전히 내 뱉으시오. 매우 짧게 한 번에 다 뱉으려고 애쓰시오. 몸을 바로 펴고 똑바로 서면서 숨을 길게 들여 마시도록해요. 절대로 숨을 멈추지는 마시요. 면면히 숨을 이으면서 내가 스킨대로 하시요.”
김수길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언수는 이렇다 할 질문도 하지 않았고 그녀도 말없이 그저 이언수가 시키는 대로 운동만 했다.
그녀가 돌아가자 김수길은 이언수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봤다.
“좀 전의 아가씬 어디가 아파서 온 겁니까?”
대답을 하지 않고 이언수는 김수길을 쳐다보면서 심드렁히 물었다.
“좀 전의 그 아가씨를 보니 어디에 이상이 있는 것 같던가?”
김수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건강하고 귀엽게 보이던데요. 여드름이 많은 것 말고는......”
이언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온 몸이 여드름투성이지. 여자에게 수치를 줘서 안 되지. 그래서 묻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해준 거네.”
김수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국태의 일화에서 그와 비슷한 내용이 있어.”
이언수는 진국태의 일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국태가 한번은 처녀가 임신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밭에서 고민하면서 잡초를 뽑고 있는 처녀를 진국태가 조용히 불렀다.
“얘야, 내가 네게 침을 놔 줄 테니 변을 보고 싶은 느낌이 들면 가서 배변을 해라. 하지만 절대 그것을 보지는 말아라.”
진국태는 처녀가 옷을 입은 채로 앞에 서 있게 하고 바늘 침을 던져서 대 여섯 번 침을 놔주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는 피곤한 목소리로 그 처녀에게 말하였다.
“얼른 집에 가서 내가 말한 대로 해라.”
진국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좌선을 시작하였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처녀는 집에 가서 잠시 있으려니 배에서 소리가 나며 부풀어 오르던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과연 진국태의 말대로 화장실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배변을 하였더니 원래의 날씬한 몸으로 돌아갔고 기분도 개운해졌다. 진국태의 말대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이 무엇인지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뱀이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놀랄까봐서 진국태가 주의를 줬는데 그 경고를 무시했다가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서 며칠 간 앓아눕게 되었다.
며칠 후에 한 과부가 진국태를 찾아왔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진국태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녀의 동태를 잠시 살피더니 진국태가 그녀에게 부탁하였다.
“저기 저 책장 밑에 내 붓이 굴러 들어갔으니 그걸 좀 꺼내 주시오.”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우선 진국태가 시킨 일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장 밑은 어두웠고 그녀는 안을 들여다보려고 엎드려서 살펴보려고 하였으나 보이지 않았다. 한쪽팔로 바닥을 짚고서 오른팔을 책장 밑으로 집어넣어 대충 휘저었으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만 되었으니 일어서시오. 붓은 여기 창가에 있소. 내가 착각한 모양이오.”
그녀는 황망히 일어났는데 그녀의 치마 밑에서 계란이 굴러 나왔다. 그녀는 황급히 계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만 가보시오.”
진국태의 말에 그녀는 모기만한 소리로 고맙다고 하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김수길은 진국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게 느껴졌다.
“진국태는 어느 시기에 살았던 사람인가요?”
이언수는 염소수염을 쓸어 내리며 대답하였다.
“아마도 1662년에 태어났다는 기록이 맞지 않을까. 나는 그 기록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걸로 알고 있네.”
김수길은 이언수와 가까워지면서 그의 신상에 대하여 궁금증을 느꼈다. 그는 사생활을 잘 말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고구마를 쪄서 같이 먹으면서 김수길은 이언수에게 어린 시절에 대하여 물어봤다.
“선생님을 안지가 일 년이 가까워가는데 선생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이언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입을 열었다.
“어린 시절은 참으로 힘들었지. 그 당시 대부분이 그랬지만 난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이 할머니 손에서 컸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힘들었어. 내가 1932년에 태어났을 때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에 있었지.”
이언수는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지와라 아키오(藤原彰夫)라는 일본군 장교가 나를 가엾게 여겨서 돌보아 주었다. 대부분의 일본군이 악명을 떨쳤지만 어디에나 좋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김수길은 일본군을 좋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요? 의외인데요. 일본군은 잔인무도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언수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본군 제58군 사령부가 있었는데 금괴를 묻어놓고 그 지도를 만들었어. 그들이 그것을 후일 혼자차지 하려고 싸우는 와중에 그 지도를 내게 맡기고 죽었지. 그것 때문에 나는 소중한 것들을 잃었고 큰 깨우침도 얻었지.”
금괴이야기를 꺼내자 김수길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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