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15 -
어느 날 팔선도를 쳐다보다가 김수길은 이언수에게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은 신선을 믿습니까?”
이언수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만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우리의 오감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고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이언수는 점점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 김수길이 그를 만났을 때는 서늘하고 왠지 꺼려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요즘은 봄날의 따스한 햇볕을 쬐는 것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내일 부터는 신선도에 대하여 가르치겠다. 내가 아는 팔선에 대한 전설을 먼저 알려주겠다.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우주와 합일하는 호흡법을 가르치겠다. ”
김수길은 이언수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김수길이 이언수를 찾아 갔을 때 그는 편안한 얼굴로 명상을 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자 김수길도 앞에 앉아서 같이 명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팔선의 우두머리는 철괴리로 원래 옥황상제의 사향리(司香吏)였는데 직무를 태만히 하여 인간세상으로 떨어져 여러 생을 거친 후에 마침내 태상노군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이언수의 낭랑한 음성을 듣자 김수길은 눈을 뜨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렸다.
철괴리의 본명은 이현(李玄)이다. 그는 잘 생긴 미남으로 키가 크고 건장하였다. 넓은 어깨와 시원한 이마는 위엄과 기품을 느끼게 하였으므로 그를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현은 주색이나 세상의 명성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아서 세상의 덧없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어느 날 책을 덮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관찰하다가 산속으로 떠났다. 숲속의 동굴에 들어 앉아 천지의 기를 들여 마시며 생각을 고요하게 하였다. 혼자서 수련을 하여 진전을 이루고 큰 걸음을 내딛게 되자 홀연 태상노군(太上老君)인 노자가 떠올랐다. 이이 즉 노자는 자기와 성씨가 같은 동족의 신선이며 화산(華山)에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현은 화산으로 가서 노자를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심하였다. 화산에 도착하니 험준하고도 높은 봉우리들이 당당한 기세로 뻗어 그 위용이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 아름다운 경치는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고 청정하게 하였으며 안개구름이 높은 산을 싸고돌면서 휘감고 있었고 노송은 오랜 전통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현은 무작정 여기저기로 걸어 다니면서 이 넓은 화산 어디에서 태상노군인 노자를 만날 것인가 궁리하고 있었다. 이때 귀엽게 생긴 두 동자가 앞에서 다가오면서 이현에게 물었다.
“이현선생님 인지요?”
이현은 음양의 흐름을 새긴 도복을 입은 두 동자를 보고 이상히 여기며 대답하였다.
“그렇다. 그대들이 어떻게 나를 아는가?”
그 두 동자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선생이 화산에 온 것을 태상노군께서는 이미 아시고 우리에게 영접하라고 시켜서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이현은 마음속으로 태상노군의 도력에 감탄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노자는 상천 최고의 옥경천에서 신왕의 전체 우두머리이고 하천 자미궁에 거주하며 비행선인의 수장이었다. 아미산에서 황제에게 선을 전수하고 제곡에게는 목덕의 벌판에서 도를 전수하고 우왕에게는 장수의 비결을 전하고 윤희에게는 도덕경을 전수하였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햇빛이 비치는 대를 앞에 두고 있는 초가집이 있었다. 노자는 청옥으로 된 바둑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도 노인이 앉아 있었다. 두 노인은 머리와 수염만이 하얗게 세었을 뿐 몸은 기력이 넘쳐 보였으며 피부는 어린아이 피부 같았다.
“어서 오게, 이분은 완구(宛九)선생이시네. 제명환(制命丸)을 먹고 득도했으니 이미 천년 전의 일이라네.”
이현은 공손하게 두 신선에게 엎드려 큰절을 오리고 말하였다.
“선인들이시여. 제게 대도의 요결을 가르쳐 주소서.”
두 선인은 은은히 웃으며 말하였다.
“ 몸 안에 단약이 있으니 어찌 밖에서 찾겠는가? 토납의 이치를 깨달아 순리는 만물이 나고 죽으며 반복하니 역리를 취하면 나고 죽음이 없도다. 몸 안의 일월과 감리를 사귀라 몸은 청정하고 마음은 견로 하도다.”
이현은 마음에서 기쁨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열심히 들었다. 화산에서 가르침을 얻고 돌아온 이현은 두 신선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을 하면서 정진하여 마침내 음신(陰神)이 마음대로 육체를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오래 수련해 나가다보니 이 현의 도가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루는 양자(楊子)라는 젊은이가 찾아와서 이현에게 도를 배우겠다고 하였다. 이 현은 양자를 가만히 살펴보고 자질과 마음가짐을 좋게 보고 제자로 받아들여 토납법을 가르쳤다. 양자가 와서 수련한지 삼 년이 지난 가을 밤에 휘영청 달이 떴는데 학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학이 천천히 내려오는데 학위에 타고 있는 사람은 바로 태상노군과 완구선생이었다. 이 현은 기쁘게 그들을 맞이하여 절을 하였다.
“ 너는 큰 진전을 이루었구나. 우리는 곧 천하를 둘러볼 생각이다. 너는 아직 경지가 우리와 다르니 10일 후에 육신은 여기 두고 혼만 몸에서 빠져나와 화산으로 오너라. 잊지 말고 약속을 지키도록 해라.”
이현은 기쁘게 대답을 했다. 노자는 완구선생과 함께 학을 타고 금방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현은 태상노군과 약속한 날이 되자 제자인 양자를 불렀다.
“나의 혼이 육체를 떠나 태상노군을 만나러 멀리 화산으로 간다. 내 몸을 이곳에 남겨두니 네가 잘 지켜야 한다.”
“만약 나의 혼이 7일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나의 육신을 화장해 버리도록 하라.”
이현이 지시하자 양자는 그대로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현은 마음을 편히 하고 자리에 앉아 음신이 육신을 떠나게 하였다. 양자는 가부좌를 틀고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이현의 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양자는 이현의 육신 곁을 떠나지 않고 조심해서 잘 지키고 있었는데 6일째 되던 날에 느닷없이 양자의 사촌이 말을 몰고 찾아왔다.
“너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네 어머니 임종을 지키고 마지막 살아계신 모습을 봐야하니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양자는 속세의 인연을 완전히 잊지 못하였으므로 슬픔에 겨워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그러나 그는 이현의 육신을 지켜야 했으므로 집으로 갈수가 없었다.
“나의 스승님의 혼이 육신을 떠난 지 6일째다. 하루만 있으면 스승님의 혼이 돌아올 것이니 하루 후에 출발하겠다.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산짐승이 스승님의 육신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사촌형인 양세옥(楊世玉)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죽은 사람이 어찌 다시 살아난단 말인가? 게다가 너의 스승이라는 자는 죽은 지 이미 6일이나 지났다고 하였잖느냐? 네가 홀려서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이구나. 어떻게 죽어가는 어머니를 두고 하루를 더 머물겠다는 것이냐?”
양자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양세옥은 얼른 장작을 모아서 제단을 만들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은 금방 이현의 육신을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렸다.
이현은 화산으로 가서 노자를 만났고 두 선인과 함께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다. 6대주를 돌아보고 화산으로 돌아왔다. 작별인사를 하자 태상노군이 웃으면서 시를 지어서 이현에게 주었다. 이현이 받아서 읽어보았다.
辟穀不辟麥(벽곡불벽맥) 곡식을 먹지 않았으나 보리마저 피한 게 아니고 車輕路亦熟(거경로역숙) 수레는 가볍고 길은 또한 익숙하구나. 欲得舊形骸(욕득구형해) 옛날 모습을 찾으려 하는데 正逢新面目(정봉신면목) 정작 새로운 얼굴을 만나리.
이현은 태상노군이 건네준 시를 읽어보았으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태상노군에게 사의를 표하고 자기 육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찿아봐도 제자 양자와 그의 육신이 없었다. 한 무더기의 화장을 했던 흔적을 보고는 태상노군의 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현이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시체 한구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떠돌다 죽은 거지의 시체였는데 죽은 지 오래지 않아서 아직은 신체가 부패하지 않았다. 이현은 할 수 없이 이 거지의 몸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얼굴이로구나!”
이때부터 이현은 때에 찌든 거지의 얼굴로 배를 드러내고 쇠 지팡이로 몸을 의지해서 걸어 다니는 철괴리(鐵拐李)가 되었다. 그 후 그의 수련은 깊어져서 학을 타고 다니는 경지에 올랐으나 자신의 외모를 바꾸지 않고 거지의 모습으로 다녔다.
늘물
2005-12-15 08:42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읽는구나
늘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서 ....빨리 올리시길
오늘 사대부중 강연도 성공적으로 마치시길 바랍니다
건필과 건강을...
김순이
2005-12-15 10:40
건필하는 작가를 위하여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천명관의 주목받는 장편소설 <고래>를 주문하여 두었습니다. 눈내리는 겨울밤에 밀감 까먹으며 읽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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