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14 -
이언수는 점 점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고 유명해졌다. 그는 료이치로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십 년 정도 원기 왕성하게 살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이언수는 침을 버렸다. 침으로는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방안에 팔선도를 걸어놓고 여동빈에 대하여 심취하였다. 진국태가 선인이었다고 그는 믿게 되었다. 신선에는 현신 그대로 승천하는 천선(天仙)이 있고 명산에서 사는 지선(地仙)이 있으며 가장 낮은 신선은 죽은 뒤에 관에서 벗어나는데 이를 시해선(尸解仙)이라고 한다. 그는 진국태가 관에서 사라진 시해선이라고 믿었다. 그는 단전호흡과 명상을 시작하였다. 보물지도를 갖고 그를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야쿠자들 때문에 귀찮은 일이 있었으나 그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고 자기들의 지도를 토대로 금괴를 발굴하려고 애썼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어떤 젊은 여자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 이언수의 마당을 들어서고 있었다. 이언수가 여인을 눕혔다.
“이름이 무엇이요?”
여자는 힘겹게 대답했다.
“서은아 입니다.”
이언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서은아를 눕히고 목침을 갖다 줬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다리를 들었다가 놓고 약간 비틀더니 천으로 묶어서 고정 시켰다. 서은아는 곱게 상을 찡그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이언수는 무시하고 그대로 뒀다. 잠시 후 참으로 신기하게도 서은아는 근래 들어 가장 편안하게 낮은 소리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이언수는 서은아에게 끌리면서도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혔다. 서은아는 빼어난 미모로 많은 남자들이 주위에 들끓었으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인생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남편도 떠나고 형제도 외면했다. 치료비로 가산을 대부분 탕진했으므로 누구를 원망할 수 도 없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자신이 생각해도 지나치다 생각할 정도로 주위사람에게 짜증을 부렸고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모진 목숨을 이어왔고 몸이 나빠질수록 생명에 대한 애착이 커졌고 자존심도 사라졌다. 이언수의 소문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몸을 맡긴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가벼운 가사노동을 할 정도가 되었다. 마루에서 걸레질을 하는 그녀를 보며 이언수는 주체할 수 없는 격정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 이젠 옛날처럼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이언수에게 두 달 동안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게 되자 감격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흐뭇한 모습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이언수의 가슴에 그녀가 얼굴을 묻었다. 이언수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빼어난 미녀를 아내로 맞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수완이 좋았고 붙임성도 있었다. 온갖 환자가 들끓었고 사람들은 줄을 섰다. 그녀는 순서대로 순번을 적은 번호표를 나눠주고 돈을 받았다. 그녀가 이언수와 이년동안 살았고 딸을 하나 낳았다. 그러나 이언수가 불법의료행위로 고발되어 시끄럽게 되자 돈과 아기를 데리고 그녀는 야반도주를 했다. 이언수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맨손으로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운동을 시켰을 뿐이라고 우겼다. 사실이 그러했다. 의료기구를 사용한 적이 없고 이언수의 행위가 위법행위라고 보기에 애매해서 검찰에서 무혐의처리를 했다. 하지만 검찰청에서 나올 때 이언수는 아내도 없고 주머니도 비어있는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이언수는 파란하늘을 쳐다보면서 돈이 없는 것이 오히려 삶을 바르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였다.
소문을 듣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오는 사람에게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아는 대로 설명하고 몸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러나 인연이 있는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건강해졌고 인연이 없는 사람은 그의 이론을 비웃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평판을 개의치 않았다.
몇 년이 흘러갔고 의료보험이 확대되면서 이언수를 찾는 사람이 점 점 줄어들었다. 이언수는 근근히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그리 괴로워하지 않았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뚝거리던 광민이를 치료해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자 광민이는 이언수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물론 광민이의 부모들도 매우 고마워했고 광민이에게 이언수를 아버지처럼 대하라고 시켰다. 하지만 몇 년 지나서 광민이가 찾아오는 발길이 뜸하더니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얼굴이 유난히 일그러진 수빈이는 바로잡아주자 처음에는 기뻐하였지만 애증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투신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력이 안 좋은 숙자는 이언수의 치료를 받고 눈이 좋아져 새 세상이 열렸다고 기뻐하였으나 몇 년 후 만취하여 이언수를 찾아와서 차라리 장님이 되었다면 빚을 지고 숨어사는 비참한 삶을 살진 않았을 거라고 원망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언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염증을 느꼈다. 이언수는 사람이 몸만이 아니라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심각히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였다. 이언수는 칠십이 넘은 노인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이언수는 생활비를 벌려고 노인직업소개소로 나갔다. 신청서를 써놓고 왔는데 소식이 없자 다시 찾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려고 두리번거리던 이언수는 김수길을 발견했다. 그는 오른쪽 어깨를 늘어뜨리고 왼쪽 어깨를 치켜든 상태로 매우 심하게 몸이 비틀어져 있었다. 이언수는 그에게 길을 물어봤고 그의 몸을 바로 잡아줬다. 만일 이언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김수길은 육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을 것이다. 이언수는 김수길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정성을 다하여 전수해주고 있었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서 깨우친 것을 단 시간 내에 다 전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의술의 진수를 전하고자 애썼다.
“좌우의 균형과 대칭을 이루면 최상의 건강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고통이 있으면 없는 쪽으로 몸을 움직여라.”
이언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체의 균형에 관하여 김수길에게 말했다. 김수길은 이언수에게 좌우대칭론에 대하여 수백 번도 더 들었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김수길은 마흔이 되어서 최윤정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한 상태에 빠져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여 방안에만 틀어박혀서 지내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 폐인처럼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수길은 그녀를 찾게 되었다. 최윤정을 봤을 때 김수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거친 피부와 생기 없는 그녀의 눈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그녀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최윤정이 늘어놓을 때 그는 건성으로만 듣고 있었고 오로지 어떻게 그녀의 음과 양을 바로 조화시킬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여인이었지만 최윤정이 건강을 회복한 후에 김수길은 그녀와 다시 만나지 않았다. 김수길은 이언수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중에 좋은 것과 소유하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와 그의 삶은 융화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인생은 젊은 시절 한 순간 교차했지만 다시 평행선을 그리며 시공간을 달리하여 뻗어 나갈 운명이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김수길은 느끼고 있었다.
칠십이 되자 이언수는 인체에 대하여 일가견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인간이 물질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기로 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도교에 심취하여 여러 서적을 탐독하고 도인술을 연마하기 시작하였다. 목을 길게 내빼고 팔과 다리를 꼬며 호흡을 조절하였다.
벽에다 여동빈이 썼다는 자영(自詠)을 적어서 붙여 놓고 음미하며 읊었다.
自詠(자영) 스스로 읊노라
獨上高樓望八都(독상고루망팔도)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墨雲散盡月輪孤(묵운산진월륜고) 검은 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중천에 외롭게 떠있다.
茫茫宇宙人無數(망망우주인무수)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도 많은데
幾個男兒是丈夫(기개남아시장부)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언수는 팔선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팔선도를 들여다보며 장시간을 보냈는데 팔선도를 보면 조국구(曺國舅)는 운양판(雲陽板)을 가지고 있으며, 종리권(鍾離權)은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한상자(韓湘子)는 피리를 불고 있고 여동빈(呂洞賓)은 등에 칼을 차고 손에는 불자(佛子)를 들었으며 여자 신선인 하선고(何仙姑)는 연꽃을 들고 있었다. 남채화(藍采和)는 청년의 모습을 하고 꽃바구니를 들고 있으며 장과로(張果老)는 나귀를 거꾸로 탄 채 어고와 간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철괴(李鐵拐)는 절름발이로 표주박과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김순이
2005-12-11 17:35
주인공의 선조어르신이 송당 사람이군요. 메밀그릇이 아니라 메밀그루, 즉 메일을 심었던 그 자리에서 돋아난 쌀깨풀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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