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풍운 (風雲) 선인전(仙人傳) 제4회
냉소년은 잠깐동안 말을 잊었다. 천하의 영웅들의 모습이 그의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경기공자가 한번은 날아가는 제비를 벤 적이 있소. 나도 시도해 보았는데 쉽지 않았소. 그래서 제비의 몸놀림을 보고 연구한 검법이 있는데 연검칠식이요. 이것을 공자에게 전해주겠소.”
냉소년은 예를 올려 감사의 표시를 했다. 땅을 박차고 제비가 나르듯이 부드럽게 아래로 미끄러지는 듯 하는가하면 하늘로 치솟았다. 연검칠식중 일식을 펴면 검화가 하나 일었다. 이식을 펼치면 검화가 둘 일었다. 냉소년이 일곱 개의 검화를 피워 냈을 때는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냉면서생 구지호는 마침내 냉일선을 제자로 거느렸다. 냉일선의 검술연마를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일선아 이제 너는 연검칠식을 완전히 연마하였으니 세상으로 나가거라. 내가 여기서 나가지 않는 것은 충과 의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요리의 죽음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이 본성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살면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다 갖고 있는데 요사스러운 가르침으로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는 것이다. 오직 사람은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청성산 아래에 구가촌에 들러서 내 딸 구소연을 돌봐다오.”
고독한 생활에 익숙해 있던 구지호 였지만 삼년을 함께 지냈던 냉일선과 헤어지면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냉일선은 냉면서생에게 절을 올리고 기력을 끌어올려 연검에 주입했다. 연검을 땅에 찌르며 뛰어 올랐다. 솟구쳐 뛰어 오르다가 오른발로 왼발을 차 또 뛰어 올랐다. 제비가 흰 배를 보이며 낮게 날다가 하늘로 올라가듯이 유연하게 날아올랐다. 연검으로 암벽을 몇 번 더 쳐 올린 후에 무사히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느덧 황혼이 지고 있었다. 소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냉면서생 구지호가 전수한 연검칠식에 냉일선이 추가한 두초식이 합해져서 연검구식은 강호에 위맹을 떨치게 되었다.
구가촌의 촌장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구소연을 찾아간 냉일선은 그녀를 데리고 강호를 주유하자고 청했다. 냉일선은 구소연의 스승이자 보호자가 되었다.(제1부 끝)
- 제 2부 -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제후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천하의 대지를 멋대로 나누어 차지하고 그 위세를 드높이던 때였다.
싸움과 정벌이 끊일 사이가 없었고 제후들은 자신을 강하게 할 재능 있는 자들을 찾고 있었다.
무극산의 천도(복숭아)는 삼백 육십 그루가 있었다. 선동 두 명이 삼지창을 들고 이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는 사철의 변화가 없고 언제나 변함없는 포근한 봄날이었다.
그름을 타고 지나가던 흰옷을 입은 신선이 이곳에 내렸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무극선인의 복숭아 과수원이로군.”
갑자기 나타난 백의 선인을 보고 선동 두 명은 창을 앞으로 내밀며 일갈했다.
“어느 놈이 감히 무극선인의 반도원을 침범하느냐?”
냉일선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냉일선이 인사를 하겠소. 다른 뜻이 없이 이곳을 지나다 선기가 비치기에 호기심으로 와 본 것뿐이오.”
냉일선의 대답에 두 선동은 코웃음을 치며 창을 내질렀다.
“흥, 이 삼지창을 받아랏. 요물! 이곳 반도원의 복숭아를 노려서 왔던 요괴 치고 이 삼지창 맛을 보지 않고 도망친 놈이 드물다.”
냉일선이 손가락에 이성의 공력을 넣고서 삼지창을 눈앞에서 가볍게 튕겨냈다. 선동은 중심을 잃고서 제풀에 넘어질 뻔했으나 두 번을 돌고 나서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았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창피함을 느꼈다. 다른 선동이 창을 짚고서 구경을 하고 섰다가 놀란 듯이 창을 움켜쥐었다. 중심을 잃었던 선동은 겨우 중심을 잡은 후 단전에 기를 모으고 우렁차게 일갈을 했다.
“핫, 미물아! 보통이 아니구나 번지르르하게 선인의 형태를 하지 말고 정체를 드러내고 한번 자웅을 겨뤄보자.”
“하하하핫!”
냉일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선동들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잠자코 있었다.
“단지 손가락 두 개도 상대하지 못하는 것들이 자웅을 겨뤄?”
선동들은 창을 굳게 쥐었다. 그러나 그 손은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내가 요괴라면 너희들을 잡아다가 탕을 만들어 먹겠지. 여기에서 선을 하면서 도를 쌓았을 테니까.”
두 선동은 이곳에서 백 오십 년을 도를 닦았으나 덜컥 겁이 났다. 그들이 큰 놋쇠 그릇에서 구수한 탕이 되는 것을 생각하자 식은땀이 났다. 이들은 서로 마주보더니 기습적으로 창을 냉일선에게 들이대었다. 한바탕 땀을 흘리면서 창을 휘둘렀으나 냉일선은 태연자약하게 응수하면서 복숭아 과수원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붉은 복숭아는 부끄럼이 없도다
가지는 휘어져 푸르르니
과연 범속의 종자가 아닌 천도로다.
수줍은 듯 붉게 물들었으니
그 누군들 탐하지 않을소냐?”
냉일선이 시를 읊조렸다. 두 선동은 창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우리들이 실수로 대선을 몰라 뵈었습니다.”
냉일선은 미소로 화답하였다.
“괜찮소 천도는 선과가 서린 보물이라 누구든 탐하게 마련이고 누가 가까이 오면 신경이 쓰일 것이 당연하오. 나는 별 뜻이 없었고 단지 선경을 구경한 것으로 만족하오. 이만 물러가겠소.”
냉일선이 말을 마치고 구름을 타고 단숨에 떠나갔다.
두 선동은 다시 천도를 점검하였는데 복숭아 두 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다. 선동은 냄새를 맡기 시작하였다. 한참 킁킁거린 다음에 한 선동이 말했다.
“이 냄새로 보아 지난번에 천도를 훔치려다 내게 들켜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진 두타산에 사는 곰의 정(精)과 늙은 범의 정이로군. 다소간의 도력을 닦아 여기까지 기어올라 왔으나 맨날 우리들한테 얻어터지더니 대선과 실랑이하는 틈에 천도를 훔쳐먹었으니 도력이 훨씬 커졌겠군.”
두 선동은 마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소 괴팍하면서 엄한 무극선인에게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가세. 속세로 내려가면 우리를 당할 자가 많지 않을 것이니 가업을 도모하세.”
무극산의 천도는 풍지박산이 났다. 까마귀가 쪼아먹고 온갖 마물들이 훔쳐먹어서 반도원은 황폐해 졌다. 무극선인은 도솔궁의 태상노군과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윽고 돌아온 무극선인은 만화경을 통하여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무극선인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두 선동은 이제껏 도를 닦은 것이 허사가 되었도다. 길흉화복이 이미 정해 졌으니 어쩔 수 없도다. 두 선동은 인간의 태 중에 떨어졌으니 하나는 송나라 상구(商邱)에서 이름은 방연(龐涓)이고 다른하나는 오나라의 손빈(孫殯)으로 이름을 남기겠군.”
이 일이 있은 후 무극선인은 냉일선을 싫어하게 되었다.
천산의 염소조사는 미희가 건네준 금합을 받아들고 염소수염을 쓸어 내리면서 기뻐하였다. 진귀한 보물을 얻은 염소조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메헤헤’하고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강에서 하늘로 올라가던 늙은 용이 토해낸 황룡의 내단을 미희요괴가 얼른 주워 다가 염소조사에게 바친 것이었다. 염소조사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희에게 삼십 년을 더 젊게 살수 있는 청춘환을 몇 알 덤으로 내려 주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금합을 얻게된 경위를 설명한 미희는 보물과 청춘환을 갖고 급급히 천산을 떠났다. 염소조사는 그날 밤 친구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얼마간의 도력을 갖춘 온갖 인물들이 선물을 들고 염소조사를 찾아왔다. 이들 중에 한껏 위엄을 부리는 두 인물이 있었는데 하나는 백풍산군(白風山君)이라는 자고 또 다른 하나는 웅장군(熊將軍)이라는 자였다. 이들이 무극선인의 천도를 훔쳐 도력을 증강시킨 곰과 늙은 범이었다. 지나가던 행인을 잡아다가 토굴에 가둬 두었다가 술이 거나해 지자 백풍산군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끌어내어 잘라 놓았다. 배를 가르고 염통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삽시간에 몇 명의 사람을 먹어치운 후 흐뭇한 듯이 입주 위를 쓱쓱 문질렀다. 포만감이 들자 웅장군이 염소조사에게 새로이 얻은 보물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염소조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금합을 탁자 위에 놓고 입을 열었다.
“자자, 모두 조용히 하고 불을 끄시오.”
웅성대던 모든 요괴요선들이 조용하게 염소조사가 탁자위에 올려놓은 금합을 보고 있었다. 백풍산군이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밤이 깊었는데 불을 끄면 캄캄할 것이 아니오?”
염소조사는 백풍산군의 말을 무시하고 수하들에게 손짓을 하여 불을 끄도록 했다.
과연 넓은 동굴은 캄캄하게 되었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모두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때 염소조사가 금합을 열었다. 순간 동굴 안에는 보라색의 영기가 퍼져 환하게 동굴을 비추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경탄하면서 그 황룡의 내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때에 점잖게 가만히 동굴 위를 쳐다보며 상아의 홀을 쥐고 있는 자가 있었다.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서각대(犀角帶)를 허리에 둘렀으며 나포를 입고 있었다. 제법 품위 있게 생긴 남자였다. 염소조사는 이 남자를 처음 보았으나 비범하게 보였으므로 조심해서 물어 보았다.
“그대는 처음 보는 사람이구료. 내가 청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 곳으로 오시었소?”
염소조사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염소조사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딴전을 피우며 기묘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나는 이제껏 초청을 받아 본적이 없소. 그 누구도 나를 초청하지 않지만 나는 예전부터 이름을 날린 불청객이오. 어디서 왔느냐하면 엣헴! 유명계에서 왔도다.”
그는 우스워서 못 참겠다는 듯이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끝맺었다.
“당신은...., 당신이... 저승사자란 말이요?”
염소조사의 말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그 남자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리 없소, 그럴 리 없소.”
염소조사는 실성한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 -선을 닦아 도를 깨친 염소 요선, 수명 이백오십이세 끝을 잘 맺지 못하다- 이렇게 생명 책에 쓰여 있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라를 받을 준비를 하렸다.”
이 인물 때문에 주연은 이미 엉망이 되어버렸다. 도력이 깊은 염소조사였지만 저승사자의 출현에 놀라서 황망히 왔다 갔다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돌연 일진 광풍이 불면서 검은 먹구름을 대동하고서 어떤 물체가 동굴로 들어왔다. 염소조사가 벽에 걸어둔 검을 집으려 손을 뻗치는 순간 그 괴물 체는 순식간에 염소조사의 몸을 깨물어 동굴 천정에 내동댕이쳤다. 위풍당당한 황룡의 모습이 나타났다. 염소조사는 황망히 쌍장을 내밀어 쌍룡창주법(雙龍槍珠法)으로 황룡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너희 요물들이 감히 내 부친의 내단을 탐내다니 죽어 마땅하다.”
황룡은 염소조사의 일격을 몸을 비틀어 피하였다. 그 유연한 몸놀림은 참으로 절묘하였다. 염소조사는 급급히 몸을 추스리면서 황룡에게 휘진청담식(揮塵靑談式)으로 두동강을 내듯이 맹렬히 오른쪽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황룡의 한 두 초식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염소조사의 입으로 내장이 흘러나오고 머리는 박살이 나 버렸다. 염소조사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니 늙은 염소 한 마리가 처참히 죽어 있었다. 이 광경을 태연히 보던 그 저승사자는 히쭉 웃고 나서 부지런히 염소조사의 망연자실한 상태의 혼을 묶더니 한마디하고 사라졌다.
“황룡의 내단은 길이 적고 흉이 많은 물건이다.”
황룡이 날뛰자 다수의 요괴가 팔과 다리를 잃고 분분히 도망쳤다. 웅장군과 백풍산군만이 상처 없이 도주했다. 금갑 속의 내단은 황룡이 삼켜 버렸다. 먹구름과 함께 황룡은 사라졌다. 동굴에는 천정이고 벽이고 피가 묻어 있었고 온갖 기물이 부서져 있었다. 고통으로 흐느껴 우는소리도 들렸다.
고경희
2006-08-15 00:13
갑자기 대단한 친구란 생각이 듭니다...죄송스럽게도 작품을 접하지 못하고 오늘 첨 선인전소설을 차근차근 읽으려 합니다. 힘내시고...홧팅!!!!
강병철
2006-08-15 00:52
고경희선생님!
격려 감사합니다.
자기 앞에 있는 행복을 찾길 빕니다.
이철화
2006-08-15 10:51
강병철 선생님!
대단히 수준 높은 작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기대가 점점더 커집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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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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