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21 -
그 거지 여인은 자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으나 이윽고 여동빈의 손을 잡고 걷게 되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 주머니는 하루에 열 냥씩 나오니 이것으로 노모를 봉양하시오. 그녀는 그대가 전생에 학대한 하인이었는데 이제 건강을 되찾아 그대의 노고를 덜게 할 거요.”
그녀는 감격하여 감사를 거듭하다가 이름을 물었다.
“도사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요.”
여동빈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나는 여동빈이라 하오.”
그녀는 나머지 생을 편안하게 살았고 선을 수련하며 속세의 욕망을 추구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더 이상 다리로 구걸하러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여동빈이 그 자리에서 구걸을 하였다. 인근에 있는 난약사(蘭若寺)의 주지로 대구화상(大矩和尙)이라는 고승이 있었다. 그가 많은 시주를 받아서 수레에 싣고 이 다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 참 신기하군! 잘해야 동전 다섯 개도 안 들어 갈 것 같은데 아무리 넣어도 한이 없이 들어가니 기묘한 일이로군.”
대구화상이 수레를 옆에 세워놓고 동자승과 함께 군중들 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먼지떨이를 들고 장검을 멘 도사가 서 있고 앞에 작은 단지가 있었는데 동자승의 주먹만 한 작은 항아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리 돈을 집어넣어도 단지가 차지 않는 것이었다. 대구화상은 이 도사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보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요사스러운 짓을 그만두게.”
여동빈은 대구화상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내가 단지를 채우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채우고자 할 뿐이요.”
여동빈이 이치에 맞게 설명을 하자 대구화상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단지를 채워서 그의 잘못됨을 드러나게 하려고 하였다. 그는 동자에게 말하였다.
“얘야, 수레에 가서 시주자루 두 개만 들고 오너라.”
동자는 끙끙대며 자루를 두 개를 들고 왔다. 대구화상은 그 자루에 든 돈을 한꺼번에 단지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단지가 가득차고 넘치기는커녕 흔적도 없었다. 대구화상은 화가 나서 몇 자루를 더 집어넣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시줏돈을 다 집어넣었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대구화상은 당황하였다.
“내가 그대의 삿된 술수를 파헤치려고 시줏돈을 집어넣었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그 돈을 돌려주게.”
여동빈은 종이에다가 뭔가 글을 쓰고 단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단지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잠시 후 머리부터 천천히 단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단지에 들어간 여동빈은 나오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은 바위나 온갖 잡동사니를 주워 다가 단지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마침내 대구화상은 화가 폭발하여 단지를 집어 들어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 단지는 그저 평범하게 부서져버렸다. 보통의 단지에 지나지 않았으며 단지 종잇조각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 종이에 ‘동평에서 다시 만나리라.’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대구화상과 동자는 동평마을로 황급히 출발하였다. 동평마을 입구에 여동빈이 의젓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이자 대구화상이 황급히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
“빈도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줏돈은 돌려주시지요.”
여동빈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돈 자루는 이미 그대의 수레에 실려 있다. 내 그대의 근기를 시험하여 천선대도의 결을 전하려 했으나 애통한 일이다. 사람의 욕심이 작은 단지와 같아 보이나 가히 채우기 어렵다. 나는 여의 침을 베고 누웠다가 세상의 헛됨을 깨달았으나 그대는 아직도 내게 와서 시줏돈만을 찾으려 하니 애석하다. 그대는 연이 없다.”
말을 마치고 여동빈은 서쪽으로 걸어갔다. 대구화상은 말없이 서서 여동빈이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동빈의 세상의 사람들이 탐욕에 물들어 살아가는 것을 한탄하여서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경계한 시를 썼다.
人身難得道難明(인신난득도난명)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塑此人心訪道根(진차인심방도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再等何時度此身(재등하신도차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여동빈은 그 후에도 자주 나타나서 도를 전하였는데 함양출신의 왕중양(王重陽)이 과거공부를 하다가 정륭(正隆) 4년(1159) 한 술집에서 여동빈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왕중양의 나이는 48세였는데 선도를 수련하며 전진7자를 양성하여 그 위세를 떨치게 되었는데 이를 전진교라 하였다. 왕중양은 18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73세의 징기스칸에게 절제와 애민을 가르쳤다.
이언수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가 있었다. 그는 시장에서 흥겹게 노래하며 구걸하던 남채화에 대하여 김수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옛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박자를 맞추기 위해 두드리는 악기의 일종으로 박자판(拍板)이 있다. 팔선도(八仙圖)에서 석자 길이의 긴 박자판(拍板)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남채화(藍采和)인데 남채화는 뜻이 없는 후렴구에 지나지 않았다.
남채화는 헤어진 옷을 입고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터에서 답답가(踏踏歌)를 부르곤 하였는데 남색의 긴 장삼을 입고 있었고 한쪽에는 가죽 장화를 신고 다른 쪽은 맨발인 채로 다녔다. 여름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도 추운 듯이 행동했으며 겨울에는 오히려 얇은 옷을 입고 더운 듯이 땀을 흘렸다. 남채화가 박자판을 두드리고 노래하면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같이 노래 부르고 흥겹게 놀았다.
남채화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불렀던 노래는 해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답답가 남채화라는 노래였다.
답답가(踏踏歌) 남채화(藍采和)
世界能幾何(세계능기하) 세계가 그 얼마이던가? 紅顔一春樹(홍안일춘수) 붉은 얼굴 한 그루 봄의 나무 流年一擲梭(유년일척사) 흐르는 세월은 한 번의 북질 古人混混去不返(고인혼혼거불반) 옛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今人紛紛來更多(금인분분래갱다) 지금사람들 분분히 오는 이 많더라. 朝騎鸞鳳到碧落(조기난봉도벽락) 아침에 난새와 봉황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暮見蒼田生白波(모견창전생백파) 저녁에 바다를 보니 흰 파도가 인다. 長景明暉在空際(장경명휘재공제) 햇볕은 하늘가에 오래도록 밝게 빛나는데 金銀宮闕高嵯峨(금은궁궐고차아) 금은궁궐은 높아 우뚝하구나.
남채화가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웃기면 간혹 그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받으면 그는 그 돈들을 긴 줄에 꿰어 끌고 다녔는데 줄이 끊어져 돈이 굴러가도 다시 줍지 않았고 다른 거지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성안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남채화를 보면서 자랐는데 노인의 되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늙지도 않은 남채화를 보면서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돌이켜 생각해보고 남채화가 늙지 않는 신선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남채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주루에서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보랏빛 서기가 어리고 은은한 퉁소소리가 들렸다. 생황소리가 하늘에서 들리더니 선학(仙鶴) 한 마리가 술집 창문을 통해 남채화 옆으로 날아와 앉았다. 술을 마시던 남채화는 술잔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고 박수를 치며 답답가를 마지막으로 불렀다.
그는 노래를 마치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침내 왔구나! 왔구나!”
남채화는 껄껄 웃으며 선학의 등에 올라탔다. 선학은 날개를 두어 번 푸드덕 거리고 길게 한번 울고는 남채화를 태우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남채화의 답답가를 들을 수 없었다.
남채화의 일화를 설명한 후 이언수는 한상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김수길은 한상자에 대하여 기록을 하기 시작하였다.
팔선도(八仙圖)에서 퉁소를 불고 있는 미남의 청년이 한상자(韓湘子)이다. 그는 당나라 시절의 유명한 학자이고 문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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