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풍운 (風雲) 선인전(仙人傳) 제2회
반고가 세상을 열었다. 세월이 흘러 삼황이 세상을 다스리고 오제가 윤기를 정한 후 춘추시대에 이르렀다.
춘추시대의 일이다.
양자강의 하류의 하구지대에 있는 천가둔 이라는 마을에 냉경중 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집안에 틀어 박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원래 그의 조상은 제나라 사람인데 제후로부터 “냉”이란 성씨를 하사 받았다.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뛰어난 의술솜씨로 공로를 세운 덕이었다. 두문불출하던 그가 아들을 얻고서 몇 년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는 무극산의 대선의 무극경을 얻고 선도의 길을 갔다고 전해졌다. 그의 아들의 이름이 냉일선 이었다.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소년은 영기 발랄하고 준수한 기품을 나타냈다. 냉소년은 일찍 글을 익혀서 아버지가 읽던 책들을 읽었다. 점점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줄고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냉일선이 십오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가 죽었다. 냉일선은 집을 떠났다. 천문산을 향해서 출발한지 열흘이 걸려서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였다. 여름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소년영웅 냉일선은 천문산의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서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소년은 단전에 기를 모으고 단숨에 정상으로 오르려는 듯 가뿐한 발걸음으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오솔길은 꼬불꼬불 나 있어서 생각처럼 쉽게 오를 수 없었다. 한참 올라가고 있을 때 노랫소리가 들렸다.
“세상사의 슬픔도 기쁨도 덧없도다.
즐거움을 뒤따르는 고통이
항상 같이 하나니
오직 수행을 쌓아 무정한 선인이 되리
청산의 푸르름 같이
신선의 얼굴도 붉도다.
묻지 말지어다
어떻게 선도를 찾는지
토납을 살피면
시간이 흘러
사과가 붉어짐과 같으니.
자연히 천문으로 들어서리라.”
냉일선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내달렸다. 푸른 옷을 입은 나무꾼이 지게에 나무를 한 짐 지고 내려오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년영웅 냉일선은 냉큼 머리를 공손히 조아렸다.
“냉일선이 인사드립니다. 방금 부른 노래를 들었는데 선인의 도를 노래한 듯 하니 부디 가르침을 주소서.”
구렛나룻의 중년 나무꾼은 갑작스러운 소년의 출현으로 놀란 듯이 보였다. 단정하고도 기품 있는 냉일선을 보고는 엉거주춤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아주 곤란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나무꾼은 멋쩍은 듯이 상황을 설명하였다.
“소공자 나는 저 산기슭에 있는 심가둔에 살고 있는 심호라는 보잘것없는 나무꾼에 지나지 않소 저 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 사는 선인이 있는데 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른 것에 지나지 않소.”
소년은 기쁜 듯이 서둘러 질문을 하였다.
“그 선인이 사는 동굴이 어디쯤 있지요?”
나무꾼은 지팡이를 들어서 오른쪽 숲을 가리켰다.
“저 쪽에서 이 오솔길이 양 갈래로 나눠지는데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되지요.”
“고맙습니다.”
소년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나는 듯이 달려갔다. 갈래가 난 오솔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오래된 고목과 넝쿨이 늘어져 있었다. 말이 오솔길이지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서 길의 형태가 없어져 가고 있었다. 큰 바위를 타고 올라가자 석굴이 나타났다. 석굴의 입구에는 넓은 돌 판이 놓여 있었다. 인위적으로 돌을 깎아 놓은 곳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연적인 것이었다. 돌 판에는 북두칠성의 모양대로 별이 새겨져 있었다. 동굴의 현판에는 “냉선동”이라고 양각되어 있었다. 소년은 망설이다가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의 우측 벽과 좌측 벽에는 맞 대응되는 글귀가 조각되어 있었다.
“크도다 건원이여! 지극하도다 곤원이여! 만물이 의지해 생기고 좇아서 하늘을 잇도다.”
동굴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통로가 좁아졌다. 이윽고 축축한 동굴의 통로를 기어서 가야만 하게 되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시원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굴이 점점 넓어지면서 큰 광장이 나타났다. 수많은 갈래 굴이 나타났다. 그 갈래 굴에는 또다시 갈래 굴이 연이어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대담하고 영기 있는 냉일선 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길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공포가 엄습하였다. 이제는 밖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두터운 가죽신 속으로 물이 스며들어 왔다. 점차로 동굴이 아래로 경사가 완만해져 가고 있었고 점점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닥은 매우 미끄러워서 균형을 잃자 물과 함께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급격한 속도로 미끄러지다가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밑에 물이 고여있는 소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렸을 때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냉일선이 주위를 둘러보자 옆에서 괴인이 앉아 있었다. 산발한 노인이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소공자 정신이 들었소?”
냉소년은 황급히 일어나서 머리를 숙였다.
“노선배님께 냉일선이 인사를 올립니다.”
노인은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실로 사람을 본지가 10년이 넘었군. 여기 이 깊은 곳으로 들어온 후 사람을 잊어버리다 시피 했었소 나는 냉면서생 구지호라 하오. 일찌기 나는 요왕의 장손 경기(慶忌)의 부장이었는데 왕의 조카 광(光)공자가 모반을 일으켜 전제(專諸)를 시켜서 요왕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소. 위나라의 경기는 볼모로 와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는 비분강개하여 오나라를 쳐서 부왕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소.”
냉소년을 머리를 끄덕이었다.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그는 의용병을 모집하였는데 오나라의 정통 왕은 자신이라고 하고 하늘이 불의를 징벌하므로 자신을 도와서 효도를 하게 할 것이라고 외쳤소. 협객(俠客)을 모았는데 천여명 중에 나도 뽑히었던 것이었소.”
그는 감회가 새로운 듯이 잠시 숨을 내쉬었다.
“경기는 의용병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소. 체력이 약한 자나 품성이 간악한 자는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는 정병 천명이 있으면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고 했었소.”
냉소년이 감탄한 듯이 물었다. 냉면서생 구지호의 이야기에 심취해서 지금의 처지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기공자는 무공이 뛰어난 사람인 모양이죠?”
냉면서생은 옛일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감고서 말하였다.
“경기공자는 근골이 뛰어나게 훌륭하였고 담력이 대단하였소. 사냥을 나가면 산돼지를 달려가서 쫓아 잡았으며 날아가는 새도 뛰어 올라서 잡았었소. 한번은 활 과녁이 되어서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자아서 모든 사람이 그의 무공에 감탄을 했었소.”
냉소년은 감탄해서 나직히 신음을 내뱉었다.
“으음, 인중지룡 이었군요. 그러면 경기공자는 천하의 주인이 되었겠군요.”
냉면서생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요리(要籬)라는 자의 창을 맞고 죽고 말았지요.”
냉소년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당금 천하에 그처럼 뛰어난 무공을 지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냉면서생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실 이 요리란 사나이는 무공이 형편없는 자요. 신분도 낮고 몸집도 보통이고 명성도 없는 소인배처럼 보였소. 그러나 그 보잘것없이 보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대단한 용기가 숨어 있었소. 후일에 알게 된 거지만 그는 세 치의 혀로 제나라의 용사 초구흔을 무찔렀던 사람이요.”
냉소년은 집에서 책만을 읽었기 때문에 강호의 흐름이나 인물들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었다.
“이 초구흔 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냉면서생은 냉소년을 쳐다보고서 초구흔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제나라에서 무공이 뛰어나고 담력이 있는 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소. 한번을 제왕의 사신으로 오나라로 오던 중 회수(淮水)나루터에서 쉬면서 말에게 물을 먹이라고 시켰소. 그때 회수 나루터 관리가 와서 말렸소. 그 강에는 물신이 있어서 화를 당한다는 말을 했던 거요. 그는 화를 버럭 내면서 대장부가 하는 일에 무슨 얼어죽을 신이냐고 호통을 쳐서 말에게 물을 먹이도록 했소. 그러자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말과 마부가 사라져 버렸소. 그는 대노해서 이를 갈며 칼을 들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소. 몇 날 몇 일을 두고 싸우다가 한눈을 잃고는 싸움을 그만두었는데 물 속의 괴물에게도 일검을 선사했다고 하오. 그 때에 강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하는구려.”
냉소년은 이 초구흔 이라는 사람에게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과연 영웅이었군요.”
냉면서생은 신이 난 듯이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후에 초구흔은 오의 도읍에 가서 일을 마친 후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오나라의 고관대작들이 참석한 가운데서 초구흔은 오만 방자하게 굴었다. 물귀신과 결투를 해서 그의 위명이 드날려서 안하무인격으로 설쳐댔다. 모두가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으나 아무도 말리는 자가 없었다. 이를 보고 요리란 사나이가 초구흔을 꾸짖었다.
“모름지기 용사란 적과 싸울 경우 물러섬이 없이 결사적으로 싸워서 수치를 받는 법이 없는 법이요. 당신은 물귀신과 싸워서 말과 마부를 잃었으며 한쪽 눈까지 다쳐서 불구자가 되었는데 구차스레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요. 어찌 교만을 떨고 계시오?”
요리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좌중은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초구흔은 눈을 부라리며 요리를 노려보았으나 화를 참았다. 볼품없는 요리를 초구흔은 나중에 일도 양단 할 심사였다. 요리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대문과 방문을 열어두고 관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자 초구흔은 요리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초구흔은 요리의 머리를 움켜쥐고 검을 목에다 대었다. 그리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초구흔은 비루먹은 노새 같은 요리를 고통 속에서 후회하며 죽게 만들어서 통쾌하게 복수를 할 심사였던 것이다.
“요리! 너는 죽을죄를 세 번 범했음을 알겠느냐?”
요리는 눈을 뜨고서 태연히 대답을 하였다.
“모르겠다.”
초구흔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면서 분연히 말했다.
“너는 나를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했으니 첫 번째 죽을죄요, 문단속을 안 했으니 두 번째 죽을죄요, 편히 자빠져 자고 있었으니 세 번째 죽을죄다. 이 어리석은 놈아!”
말을 마치자 초구흔은 요리의 목을 베려고 했다.
“잠깐,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당신이야말로 세 가지 실수를 했소.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소?”
초구흔은 멈칫하고는 의아스럽게 되물었다.
“모르겠다. 무엇이 나의 실수라는 것이냐?”
요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였다.
“첫째, 내가 당신을 모욕하였을 때 그 자리에서 나를 처단했어야 했소. 그것이 용사의 할 바인데 그 당시에 수모를 감수했소. 그것이 첫 번째 실수였소. 둘째, 당신은 깊은 밤에 남의 집을 방문하면서 대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어서 들어왔소.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담을 넘는 것은 소인배가 할 짓이요. 셋째, 당신은 잠자는 사람의 머리를 잡고 칼을 목에 대고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비열한 행동이 아니고 뭐라 말이요. 그게 용사의 할 짓이요?”
일리있는 요리의 호통을 듣고서 초구흔은 낮게 신음하였다.
“으음, 내 무공을 두려워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너는 용기 있는 말로 나를 감탄시켰다. 너야말로 진정한 용사다.”
초구흔은 검을 거두고 요리에게 목례를 올리고 떠나갔다.
김태일
2006-08-13 13:20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가는군요.
중국인들은 실리와 명분 중 명분을 더 중요시하는 민족이어서
요리가 세 치 혀로 초구흔을 물리치게 되는군요.
그런 면에서 한국인은 중국인을 많이 닮은 것 같군요. ^^
강병철
2006-08-13 14:08
김태일선생님!
수준 높은 독자가 있어서 글을 쓰는데 큰 부담을 느끼게 되는군요. 혹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여 주십시요. 수정하거나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김태일
2006-08-13 15:50
강선생님, 별 말씀을요.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걸요.
이 소설의 소재가 서로 맞붙어 있는 하늘과 땅을 떼어 놓았다는 우주 거인 '장길손'의 신화에서부터 중국의 3황 5제, 춘추전국시대를 오가면서 장대한 스케일로 전개되고 있어, 선생님의 그 피나는 노력과 해박한 지식에 혀를 내두루고 있는걸요.
그 대륙적인 호방함과 신비스런 선의 세계... 제 마음을 사로잡는군요.
아무튼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
기대가 큽니다.
강선생님, 화이팅!!
연혁 
홈 > 회원마당 > 문학창작방
김태일
ㅣ 제주문인협회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