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13 -
이문일은 진좌수와 달라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치부를 했다. 그의 비방을 적어 후손에게 전했는데 그것이 이언수에게로 전해진 것이었다.
“바카야로.”
술에 취한 의붓아버지의 손길은 매서웠다. 쿠로다 료이치로(黑田龍一朗)는 아직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였지만 이미 눈물을 잊어버렸다.
이복형제들이 첩자식이라면서 학대를 하면 이를 악물고 덤볐다. 힘이 약한 료이치로는 항상 얻어 터졌지만 기가 죽지는 않았다. 싸우다 죽을 듯이 용맹하게 덤볐다. 시라카와 곤조(白川權三) 는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바람기가 많아서 세 명의 여자에게서 팔 남매를 낳았다. 술에 만취하면 폭행을 일삼아서 여자들이 못 견뎌서 떠나버렸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친절하고 인정도 많은 그저 그런 사람이었는데 주사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심했다. 유곽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실수로 료이치로를 낳아서 기르다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시라가와 곤조의 후처가 되었다. 점 점 남자들을 끄는 매력도 사라져 가고 시라가와 곤조가 돈푼깨나 있어보였으므로 그에게 몸을 의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술에 취하면 특히 료이치로를 많이 때렸다. 다른 형제들은 도망갔지만 어린 료이치로는 곤조에게 온몸이 퍼렇게 멍들도록 맞았다. 술이 깨면 시라가와 곤조는 료이치로에게 미안해했다.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도 료이치로는 코웃음을 쳤다. 료이치로는 언젠가 시라가와 곤조를 죽도록 패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얻어맞아서 울분이 풀리지 않을 때는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날개를 퍼덕이다가 죽어 가는 닭을 보며 료이치로는 싸늘한 전율을 느꼈다. 그 후 열두살이 되던 해 오월 둘째 날 료이치로는 닭장에 불을 지르고 집을 떠났다.
소년원에서 1년을 보내고 나왔을 때 료이치로는 18살이 되었다. 그는 5년이 지나서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간부가 되었다. 그가 일본군 군자금을 파묻은 지도에 대해서 듣고서는 망설이지 않고 한국행을 결심하였다. 그때 료이치로는 벌써 20여명을 잔혹하게 살해하여서 야쿠자의 세계에서 사신(死神)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이언수에게 보물지도가 전해졌을 거라는 이야기를 귀국한 일본군병사가 술취 하여 객기를 부리다가 료이치로에게 실토하게 되었다. 당시에 료이치로는 지역을 평정하여 무료하던 차라 금괴를 찾기로 결심하였다. 료이치로는 떼거리를 싫어해서 도코오(獨行)로 행동하였다. 마침내 그는 제주도에서 은밀히 이언수를 찾아냈다. 밤에 도둑고양이처럼 은밀히 잠입한 그는 이언수의 할머니를 다그쳐서 비밀지도를 뺏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이언수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의서를 보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무슨 소리가 난 듯도 하다는 느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할머니. 주무세요?”
아무런 응답도 들리지 않자 이언수는 할머니가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 이언수는 멈칫하고 돌아서서 바깥채의 할머니 방의 문을 열려고 하였다.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언수는 얼굴로 날아든 수리검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어쿠!”
단발에 정확히 턱을 가격 당한 어둠 속의 사내는 고꾸라졌다. 이언수는 목뒤의 대추혈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타격 했다. 료이치로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고수의 싸움은 순간에 결정 나는 법이다. 만일 여기에서 이언수가 졌다면 잔인한 살인마인 료이치로는 주저 없이 이언수의 숨통을 끊었을 것이다.
“할머니, 할머니!”
이언수는 할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방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료이치로의 손아귀에 질식사를 당한 뒤였다. 103세의 나이는 우악스런 료이치로의 손아귀의 힘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언수는 마당으로 내려가 료이치로를 걷어찼다. 료이치로는 나무토막처럼 뒹굴었다. 그 충격으로 정신은 들었으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마비된듯했으나 처참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그 고통은 너무나 격렬해서 료이치로는 제발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 들었다. 이언수는 료이치로를 죽을 때까지 걷어차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우선 그를 끌고 뒤쪽 대나무 숲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동굴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동굴이었다. 몇 군데 침을 놓자 료이치로는 의식이 맑아졌지만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료이치로는 근래에 느껴보지 못했던 불안감이 엄습함을 느꼈다. 싸늘한 눈빛으로 료이치로를 내려다보던 이언수는 조용히 동굴 밖으로 나갔다. 료이치로는 한기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료이치로의 가슴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언수는 삼일장을 치르고 동굴로 돌아왔다. 보물지도를 들여다보고 다시 료이치로의 품에 넣어주었다.
“나를 죽여라.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겠다.”
료이치로가 발악을 했지만 이언수는 태연했다. 그는 의서를 보면서 침을 료이치로에게 꽂았다가 뺏다 가를 반복했다. 인체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료이치로! 네놈 덕분에 내 의술이 진일보하는구나. 할머니는 살만큼 살았고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므로 나는 네놈을 용서하기로 했다. 하지만 너는 살아오면서 멀쩡한 젊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었지. 살아오면서 쌓은 죄업과 앞으로 지을 죄를 생각하니 너를 어찌할까 고민 중이다.”
료이치로는 계속 떠들어댔으므로 이언수는 료이치로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같이 지내는 동안 료이치로는 이언수가 뛰어난 무술실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를 해칠 의사가 없음을 알고 료이치로는 야꾸자답게 넓죽 엎드려 이언수에게 절을 했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는 야꾸자의 사고방식을 료이치로는 이언수에게 표현했던 것이다.
“오야붕.”
이언수는 료이치로가 하는 짓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야꾸자는 오야붕 - 꼬붕 (아버지-아들)으로 알려진 체제를 전통적으로 이어왔다. 오야붕은 ‘아버지’로 충고도 하고 도와주고 보호를 하였고 꼬붕은 ‘자식’으로서 행동하며 오야붕이 필요할 때 충성과 헌신을 맹세했다. 야쿠자는 조직에 가입하고 오야붕-꼬붕 관계를 맺는 상징으로 정종 잔을 교환했다. 각 잔에 부어지는 정종의 양은 각자의 신분에 따라 달랐다. 관계자가 부자지간이거나 형제지간 혹은 노소관계이냐에 따라 정종을 잔에 부었다. 입회식은 종교적 엄숙함을 주기 위해 보통 신토 제단에서 행했다.
“오야붕은 무슨 얼어 죽을 오야붕이냐. 나는 그런데 관심 없다. 나는 사람을 많이 죽였다. 네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전쟁터에서 살기위해 비록 어쩔 수 없어서 그들을 죽였지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너를 죽이지는 않겠지만 고통을 좀 겪도록 하겠다. 정신을 온전하지 않도록 해서 한 십년 떠돌도록 만들겠다.”
1970년대에 하멜이 표류했던 산방산 지역에서 일본인 떠돌이 거지가 헤매고 다녔다. 물론 그는 쿠로다 료이치로(黑田龍一朗)였다.
“저 일본거지 불알 봐라. 하하하”
아이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헤어진 옷을 입고 떠돌아다니는 반쯤 미친 료이치로를 놀려댔다. 료이치로가 참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멀리서 이언수가 지켜봤다. 십년이 지나서 료이치로는 이언수의 침을 맞고 몽환에서 깨어난 듯이 개운함을 맛봤다. 그러나 자신의 헤어진 옷을 보고 꿈같은 기억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료이치로는 이언수에게 다시 넓죽 엎드렸다. 이언수가 그의 목숨을 너그럽게 이어줬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오야붕.”
이언수는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너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마라. 그리고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마라. 이 두 가지를 꼭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살려 보내는 것을 내가 후회하게 될 것이야.”
“오야붕! 목숨 걸고 그 두 가지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전신(戰神)이라는 별명을 지닌 료이치로는 격렬한 전투를 끝내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료이치로는 십년간 무엇을 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고 대답했다.
“오야붕 대단합니다. 펄펄 날던데요. 혼자서 20여명을 쓰러뜨렸습니다. 오야붕 같은 사람은 전무후무할 겁니다.”
피 튀기는 전투를 끝내고 부하들이 료이치로에게 칭송의 말을 한마디씩 해댔다.
“아, 츠마라나이(아, 시시해).”
료이치로는 피우던 담배를 손끝으로 퉁겨내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한국의 제주도에 있는 이언수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
료이치로는 야쿠자로 살아갔지만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는 품속의 보물지도를 가끔 들여다보긴 했지만 다시는 금괴를 발굴할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보물지도는 불길한 물건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언수의 할머니가 죽었고 그 보물을 파묻었던 일본군들도 자중지란이 일어나 대부분 죽었다. 만일 료이치로가 보물지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그것 때문에 료이치로도 죽을 것이었다. 료이치로는 과거와 달리 인정과 즐거움을 알면서 살아갔다. 그러나 그가 오사카의 코리언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의 보물지도는 대단히 큰 풍파를 일으켰다. 그 지도상의 좌표는 지금의 산천단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언수는 그 좌표가 황세왓의 어느 개천 옆 우물에서 50여 미터쯤 떨어진 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보물은 언젠가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가 아닌 먼 후일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이언수는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언수의 생각대로 그것은 불길한 물건이었다.
김순이
2005-12-07 09:12
며칠동안 이렇게 비가 내리고 스산하네요. 어렸을 적에 읽은 안톤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의 구절들이 떠오르는 그런 날들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강병철
2005-12-07 10:44
안톤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저도 매우 좋아해서 암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절제된 가운데 은은하게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져주는 글입니다. 조정철(趙貞喆)목사와 의녀 홍윤애(洪允愛)에 대한 감동적인 사연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필력 대단합니다. 소설로 쓰면 정말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날을 은근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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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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