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모였습니다.
큰키는 무릎
작은 키도 관찮아
맨 앞 줄에다 세울게
활짝 핀 얼굴은 아래쪽이다
봉오리는 위쪽이면 되겠다!
우리 마음을 단단히 묶어
리본으로 매어야지
자! 여럿이 모여
하나로 다시 피었습니다.
우리 이름은 꽃다발입니다
대나무
오순택
나는 대나무가 좋습니다.
한 뼘 한 뼘 자라며
매듭 만들어 놓고
텅 빈 가슴속에
고운 소리 가득 담아두었다가
베어져 피리가 되면
고운 소리를 들려주는
대나무가 좋습니다.
줄넘기
송 상 홍
통통통
줄넘기를 하지
숨이 턱에 차도
휙휙휙
돌아가는 소리가 좋아
멈추지를 못하지
줄넘기를 할 때면
내가 지구를 돌리는 것 같다니까
내가 지구를 차서
멀리 보내는 것 같다니까
살아난다, 살아난다
이상교
차 소리가 끊어진
아파트 조용한 뒷길,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머언 뒷길.
살아난다, 살아난다.
내 발자국 소리가 살아난다.
살아난다, 살아난다.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살아난다.
살아난다, 살아난다.
자전거 바퀴살 소리가 살아난다.
숨죽였던 소리들이
푸드득푸드득
살아 나온다.
나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경환
나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손을 대 본다
나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귀를 대 본다
나무도 날 좋아하는지
살며시 뺨을 대 본다
나무도 날 좋아하는지
살며시 팔로 안아 본다
아, 싱싱한
나무 향기
나무도 날 좋아하는 걸
나는 나무 냄새로 안다.
풀씨를 위해
이창건
봄하늘 구름은
빨리
봄비가 되고 싶다.
땅 속
촉촉이 젖어들고 싶다.
바위틈
촉촉이 스며들고 싶다.
흙 속
여기저기 묻힌
바윗돌 이틈 저틈 끼인
지금 막 눈 뜰
이름 모르는
플씨를 위해
보말 줍기
오지연
아빠 어렸을 적엔
몸 바닷가 즐거운 바릇잡이 시간
큰 돌 들어내면 오기종기 먹보말 가족
큰놈 한두 개만 소쿠리에 담고
나머진 뒤에 올 사람들 위해 그냥 덮어주었대요
일흔넷, 아직 해녀이신 우리 할머니
테왁 속 알 밴 꽃게, 새끼 전복들 다시 놓아 줘
잠수일 평생 바다밭에서 막고 살아도
물고기 씨 마르는 일 없었다는데
난, 먼훗날 열어볼
마음 속 타임캠슐에
어떤 추억을 주워 넣을까.
우산속 둘이서
장승련
비오는 날
너와 내가
한 우산을 받고 걸어가면
소곤소곤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는
도도 도도
비가 다 듣고
우리가
어깨를 붙여
팔 걸고 걸어가면
비는 어느 새 다가와
오른쪽 내 어깨를 적시고
왼쪽 네 어깨를 적시네
비도 우리 사이를
시샘하는 걸까?
우산 속
문삼석
우산 속은
엄마 품 속 같아요
빗방울들도
들어오고 싶어
두두두두
야단이지요
신발 두 짝
문삼석
신발 두 짝이
나란히 누워
소곤소곤
얘기했대요.
-우린 일할 땐
따로따로지?
-그렇지만, 쉴 땐
이렇게 함께 잖아
어쩌지?
송상홍
방귀를 뿡 뀌어서
친구들이 웃을 땐 어쩌지?
하하하 같이 웃고 앉아 버리지
잘난 척, 어제 한 말이
부끄러울 땐 어쩌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머리를 감아 버리지
어제 쓴 시가
부끄러울 땐 어쩌지?
슬그머니 덮어 버리지
(지우지는 마)
그런데
철이 일기장에
내 잘못이 적혀 있을 땐
어쩌지, 어쩌지?
들꽃
박두순
밤하늘이
별들로 하여
잠들지 않듯이;
들에는 더러
들꽃이 피어
허전하지 않네
2
너의 조용한 숨결로
들이
잔잔하다.
바람이
너의 옷깃을 흔들면
들도
조용히
흔들린다.
3
꺾는 사람이 손에도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의 발길에도
향기를 남긴다.
엄마가 아플 때
정두리
조용하다
빈 집 같다
강아지 밥도 챙겨 먹이고
바람이 떨군
빨래도 개켜 놓아 두고
내가 할 일이 또 뭐가 있나
엄마가 아플 때
나는 철드는 아이가 된다.
철든 만큼 기운 없는
아이가 된다.
바퀴 달린 모자
신형건
바퀴 달린 모자, 본 적 있니?
참 우스울 테지,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모자라…히힛!
뿔난 축구공은? 생각해 봐
얼마나 재미있겠어, 제멋대로
튀어 오르며 야단일 테니
뚜껑 달린 운동화는 어때?
그게 신발이냐구? 휴지통으로나
쓰라구? 거, 좋은 생각이야!
방울 달린 연필도 있는데?
머리핀 꽂은 우산은?
레이스 달린 칫솔은?
이제 그만두라구? 그게 무슨
도깨비같은 소리냐구? 그러
마지막으로 이건 어때?
반바지 입은 선인장! 이건
우리집에 정말 있는 거야
그게 바로 나야! 나라구!
엄마가 나를 그 꼴로 만들었어.
너도 나와 다름없을걸.
김순이
2006-08-19 17:57
박재형 선생님
좋은 동시 메들리, 잘 감상하였습니다.
완전 수지 맞은 기분!
서현석
2006-08-27 20:01
어렵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내 와닿는 느낌. 그래서 동시는 더없이 친근한가 봅니다. 생각지도 않게 흐뭇한 웃음을 봉갔습니다. ^^
연혁 
http://iyudo.hihome.com
김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