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보말국을

                                                        우리의고향평창21 의장 엄 기 종

  겨울 여행이다. 농촌관광대학 후배 전만천씨의 권고로 함께 떠난 3박 4일의 여행은 원주비행장에서 오후 1시 이륙의 설렘에서 부터이다. 좀 흐린 날씨라 비는 오지 않고 햇빛은 구름 위에 숨어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공군 복무시절 휴가를 왔다가 귀대하면서 강릉비행장에서 C46비행기를 타려다 한쪽 날개에 문제가 있어 탔다가 내려서 김포까지 기차로 갈아타고 미귀(未歸)하는 바람에 부대원들이 나의 귀대 시까지 단체 기합을 받게 한 동기가 되었다. 그 후 유럽 배낭여행과 중국 문화여행이며 공무원 시절 봄가을 산불진화와 홍보 비행을 위한 작고 큰 헬기 탑승 하는 등 비행을 자주하면서도 이륙과 착륙 순간에는 비행기 의자를 진땀나게도 부여잡는 버릇이 원주를 떠오르는 비행선에서도 도졌다. 급상승 이륙하면서 얼굴에 열이 나며 진땀이 솟았다. 나이도 그렇고 운동을 게을리 하였는지 기압의 변화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구름대를 뚫고 하늘로 오르니 밝은 해가 하얗게 평지처럼 깔린 운무 위에 빛나고 있었다. 이를 두고 별천지라 하는가. 세상은 천차만별이라 했듯 땅과 하늘의 상황은 구름장막 하나에 밝고 어둠의 교차가 컸다. 창 쪽에 앉아서 지구를 관조하려던 기대는 무너지고 1시간여 빛나는 구름 장판 위를 날아서 한라산 봉우리가 작은 배 한척 떠있듯 나타나면서 기장의 음성은 이제 구름층을 지나 착륙하겠다고 예고 방송을 하였다. 관광여행, 문학기행, 해설사심포지엄 등 여러 번 제주도로 올 때마다 비키니 입은 여인이 손짓으로 부르는 듯 설레게 한다. 유채꽃은 아직 피지 않고 오는 초봄에 꽃 피울 배추들이 가로변 화단에 심겨지고 섭지코지 봉화대 옆엔 빨리 피는 개량종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장관이었다. 제주도를 서부로는 용두암, 해피타운공연, 화랑원, 소인국테마파크, 천지연폭포, 유리의성박물관 동부로는 기념품전시장, 도깨비도로, 삼나무숲, 조랑말체험, 몽골리안 마상쑈, 제주전통초가마을, 아트랜드, 섭지코지, 종달리해안도로, 제주해녀촌을 두루 돌며 시 한수룰 적어 보았다.

제주여 /엄기종

두근거림을 위하여

섬으로 가자

심장의 요동은

든 나이도 헛거로다

비행을 기다리는

공항 소파 위로

제주바다

푸른 파도를 땡기고

그 너른 파도 타고

오는 신들의 발길이

제주의 금 빛 잔과 어포를 축내는

새별오름 들풀연기를 밟겠지

고공의 하늘에서

한라산 정상은

하얀 비단의 강보에 싸여

운무 위 고개 뉘인 여인은 여직 잠에 들었네

신들린 여인아

잠든 채 말없이 잔잔한 미소

빛 먹고 사는

머릿결 고운 여인의 몸매

깨끗이 해풍에 씻어 만객의 설렘을 다 어찌 하련가.

  여행은 예전에 보아 중복되기도 하였으나 특히 승마며, 몽골 서커스, 중국서커스는 처음 보는 여행 코스다. 중국인들의 서커스와 서글픈 배경음악을 들으며 또 글 몇 줄을 적었다.

중국서커스 /엄기종

무적(無籍)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소녀야

공중 도는 억샌 실오리

하나 걸치고야

고공의 자유를 감아 도네

지붕 아래 밤이고 낮이고

갇힌 열기를 내뿜으며

천정에 메여 도는

붉게 드린 천에

스치는 바람이 열기를 식힌다.

팽이채 감겨 돌듯

칭칭 꼬아 올가미 끝자락 타고 올라

뱅뱅돌이 낙화가 겨우 멈춘 로프 끝

여인의 가슴살이

로프 끝처럼 예리하게 빛난다.

철근 우리 벽을 오르내리는

오토바이 일곱 대의 매연은

백호의 마지막 숨지는 울음

차라리 조리는

가슴의 열기로 미라가 되어라

사람무지 사층 위에 거꾸로 선 무동

누운 여인의 다리 위에

튕겨 도는 소녀야

기구한 운명의 자죽을

허리며 멍울 진 아픔을 어찌 벗으리

이름은 뭐며

인민의 외화벌이

선봉에 서서

부모는 누구며

고향은 어디니.

  이번에는 여행의 3박을 제주시의 팔레스호텔에서 거하며 제주시 주변을 돌아본 얘기를 남기고자 한다. 오후 2시에 제주공항도 흐린 날씨다. 우선 팔레스 호텔 806호실에 짐을 내렸다. 창가에 바라보이는 푸른 제주 바다 위로 큰 배가 지나가고 동남간에는 제주항과 제주항 남향으로 바다까지 달려와 기운이 맺힌 배산 역할의 사라봉이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방이다. 바로 길 건너에는 제주문화원의 돌탑 돔 위에는 제주 특유의 검은 돌이 새인양 주둥이를 내민 ‘거욱’이라 했던가 사악한 귀신들로부터 제주를 지키고 있었다.

평창군의 최초 이름이 예맥(濊貊)의 시절에는 우오(于烏)였고, 고구려가 지배하면서 욱오(郁烏), 신라가 통일하면서 백오(白烏)라는 지명을 갖고 있었다. ‘烏’라면 삼족오(三足烏)고 태양 한가운데의 흑점을 상징하니 즉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들의 염원이 깊이 내재하는 지명이다. 내륙 중부의 태양숭배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장기가 되었다고 여기다가 제주도의 돌탑 위에 어김없이 올라앉는 방사용(防邪用) 검은 거욱을 보면서 삼족오의 상징이 제주도에도 꽃 피우고 일본의 일장기에도 꽃 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영향은 예맥이며 삼국시대 초기의 글이 기록되면서 최초의 우리군의 이름이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으로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로 고려 때까지 줄곧 써왔다는 역사의 사실을 묵과할 수가 없다. 고인돌이며 모든 돌을 눕혀 쓰던 선사시대에 돌을 세우겠다는 시도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다. 태양을 향하여 기원하는 돌은 세워야 함에도 그 시절 큰 바위를 세운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으므로 기술적인 지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어 그 시대 입석은 매우 귀한 것이다. 그 선사시대 입석이 강원도에 하나밖에 없이 우리고장 평창읍 임하리에 있다. 이는 100년의 몽고 지배와 전쟁기지의 요새화를 위하여 절벽이고 땅굴이고 온통 짓 삼던 왜정 시대며, 남북사상의 이간에 몇 되지도 않은 제주인 끼리의 때죽음을 부르던 동족상잔이며, 벽이 없는 정낭에 앉아 일을 보는 순간에도 두리번거리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유비무한의 제주인들의 고통이 만신을 불러 생명부지의 안위를 빌며 비보의 상징을 저기 탑대 위에 얹혀, 밝은 태양의 위력으로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려던 염원이 우리들의 삼국의 틈새와 몽고의 침략이며, 임진왜란에 짓밟히던 여인들의 정절이며 아픈 상처와 상통됨을 제주에 있는 곳곳의 답단 위의 거욱을 바라보며 여실히 느꼈다.

  제주항의 북쪽으로 연하는 방파제를 거닐다 탑동사거리에서 동문재래시장을 찾아 서향 동문로터리로 겨울답지도 않은 온난화를 쐬며 제주의 야음을 음미하였다. 예전엔 제주도의 가로수에 보지 못하던 ‘먼나무’의 새빨간 열매가 꽃 인양 가로마다 주렁주렁 달려 그 열매에 매료되었다. 제주는 분명 변하고 있다. 중국의 피라칸사스를 끌어오더니 이젠 먼나무의 붉은 열매로 동절기 꽃으로 삼는 지혜가 돋보인다. 밤길의 제주인들의 발걸음은 여유스럽다. 인구에 비하여 넓은 땅이라 인적이 드물고 불경기 탓에 관광객의 수도 적으니 이 밤 제주야의 정취는 한가한 편이다. 큰 사거리에서 남향으로 잠시 거리의 동문로터리엔 바다로 흐르는 개천에 돌난간을 들어 올리는 남녀노소의 석상들이 작난스레 설치된 돌다리가 있다. 나도 그 난간에 올라가 석상 사이에서 난간을 함께 드는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본인 노부부가 나를 보고 재미있다고 미소를 짓는다. 제가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영어로 말을 건네니 말 내용은 몰라도 카메라를 맡기고 냉큼 다리 난간에 부부가 올라 포즈를 취해서 셧터를 눌렀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곱게 늙은 여인이 고마워했으나 순간 일본 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당시 조선인에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발음하게 하여 내선(內鮮)을 구별하여 학살하였다는 기록이 섬찍하게 떠올랐다. 엔고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본관광객들의 무리가 재래시장에서 우루루 몰려나오고 있다. 아픔을 준 민족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국제화 시대에 여러 가지 감정이 실타래처럼 교차된다.

  재래시장 입구에는 과일 가게가 길게 늘어져 있다. 그 시장으로 깊이 드니 우쪽 통로로 동문재래수산시장이 길게 늘어져 있다. 보지도 못하던 큰 은칼치며 여러 종류의 어물이 많이 진열되었다. 남국의 어족들은 내가 자주 가는 동해의 어족보다 풍부하고 수량도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간쯤의 우측 위치에 부부가 가게 일을 함께 경영하는 수족관에 전복, 소라, 성게며, 고기들이 담긴 ‘전복나라’와 ‘젓갈상회’ 라는 간판이 걸린 가게(064-755-3047, 011-693-5722)의 좌판에 앉았다. 왠지 정감이 가는 부부의 모습에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주인아저씨는 제주도 부(夫)씨이고, 아주머니는 전주 이씨 이춘자씨이다. 어시장이라 소주를 사서 먹을 수는 없으나 프라스틱 둥근 의자를 무조건 당겨 앉아 전복과 고동안주 한 접시를 시켰다. 동행한 전만천씨는 어딘가 슈퍼에서 한라산 소주 두병과 초고추장을 사들고 왔다. 좌판에 앉아 점잖은 주인아저씨 보다는 아주머니가 시원스레 제주도 얘기를 잘 해주셨다. 제주 특산물인 오분자기며 제주도 서쪽은 찰흙이 나와 옹기가 나오고 동쪽은 찰흙이 없어 옹기점이 없으며, 제주도 말로 ‘영영영’은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뜻이고, ‘빙떡’이 ‘메밀전병’과 같은 말이며, 내가 평창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이라고 하니 여기서는 자기가 해설사보다 나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며, 메스컴 인터뷰 경험도 들려주었다. 아내의 술 실력이 좋다는 남편의 자랑에 기분 좋게 몇 잔 소주도 나누었고, 소라젓이 전문이라며 맛이 간간한 즉석 소라무침을 서비스로 내놓으며, 소라젓 한 병은 선물로 내주었다. 바로 옆집은 아주머님이 경영하는 ‘경남상회’(064-722-9038)이고 옥돔이 전문인가 보다. 좌판엔 처음 보는 고기들이 예쁜 색깔로 싱싱하게 좌판에 진열되었다. 일일이 고기 이름을 물어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메모지를 잊어서 고기 이름을 기록하지 못해 아쉽다. 특이한 것은 멸치의 크기가 10cm가 넘는 크기이었다. 의회의원 뺏지를 단 분이 친구와 함께 해삼을 사면서 살짝 대처 잘게 썰어 비벼먹으면 술안주에 그만이라며 사들고, 주문형식사를 하여주는 식당으로 갔다. 우리도 싱싱한 큰 갈치 한 마리를 18,000원에 구입하여 시장 끝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싸인을 남긴 제주금메달식당(064-751-5558)으로 가서 1인당 5,000원씩을 지불하고, 갈치찜을 부탁하여 술과 저녁을 들었다. 좀 구차하지만 해삼으로 조리를 하여 술안주로 드는 분들의 식탁으로 가서 양해를 구하고 먹고 있는 해삼요리의 사진을 촬영 하였다. 가로로 잘게 썰어 양념장에 비빈 음식이었다.

  다음날 저녁에도 동문재래시장으로 찾아가 동문시장고객지원센터 1층에 자리 잡은 동리 부인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맞춤형식당인 고객식당(064-727-3002, 011-9662-8483)에 들려서 ‘보말국’이라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시켰더니 여러 가지 반찬을 많이 내와 한라소주 두 병을 식전에 마셨다. 보말국의 내용은 민물의 골뱅이처럼 바다의 작은 고동을 보말이라 하며, 보말을 조금 넣고 미역과 함께 끓인 국이었다. 참고로 주변에 사는 분들이 많이 들리고 좋은 반찬을 성심껏 내는 고객식당 메뉴를 적어 둔다. 갈치조림 25,000원, 갈치구이 15,000 고등어조림 15,000 고등어구이 10,000 갈치국 7,000 보말국 5,000 동태찌개 5,000 한치물회 6,000 자리물회 6,000원이며 그날 당번은 맘씨 고운 총무 박해례(011-9662-8483)씨외 2명이 손님을 맞았다. 다음 날은 용두암에서 해변을 따라 제주항 쪽으로 걷다가 용두골에 이르러 해변가 향토음식점 용두골식당(064-711-2234)에서 1인당 7,000원의 한치물회를 들었다. 얼음으로 얼군 그릇에 한치물회를 내와 먹는 동안 얼음그릇은 그대로 그릇 모양을 잃지 않았다. 한여름 더위에 이렇게 음식을 내면 손님들이 시원한 음식을 들면서 얼마나 고마워 할 것인가. 제주공항 활주로와 방향이 일치한지 커다란 비행기들이 식당 위를 지나고, 유리창 밖으로는 푸른 바다에 여객선이 지나고 갈매기도 유유히 나는 광경이 시원스럽다. 여기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남긴 싸인지가 붙어 있었다. 깨끗한 식당이며 음식도 맛갈스럽고 주인 내외분들이 점잖으셔서 펜을 들어 답례의 글을 적어 드렸다

용두골에서 한치회를 들다 / 엄기종

청푸른 바다 펼쳐

문전에 두고

꿈 실은 어선들을 바라보네

일렁이는 파도야

오는 해조마다 승천을 일어

용두 솟는 용두골 번영을 끄네

용두해변 거닐며

여기 용두골 향토식당

젓갈이고 한치로 생의 끈을 잇고 가누나.

  졸작이지만 시를 드리니 지난 날 정치인 박철언씨도 친구들과 모여와 술을 들면서 썼던 시가 안쪽 벽에 걸려 있다고 알려줘, 잠시 읽으니 한참이나 술에 취해 동심을 일구는 글이었다. 삼박 사일의 펫키지여행을 함께하면서 얼굴을 익힌 객들과의 인연을 적은 글을 관광버스 속에서 낭송을 하였다

동행 /엄기종

경기도고 충북이고 대구벌이며

수원과 설원 평창도

보민고속 제주랜드 이선영가이드는

늘씬하니 우리 함께 길을 나선다

누운 여자 한라의 가슴은 처져도

신들의 나라엔 없어도 있다한들

솟은 유두가 보여

섭지코지 해변 걷던

에머럴드 푸른 빛에 취하는 방랑이여

바다가 보이면 박수를 쳐라

한라주 도는 잔에

여정 이는 알콜의 기화도

해풍이 산산이 날리고

한 때의 남자며

치맛자락 흔들며 걷던 소녀도

우리들의 옛날이었지

우리들 함께 가는 길

모두들 끝 날이 오면

우리의 연(緣)도

업겹 끄나풀처럼 흐미해저 가겠지만

오늘은 그대 미소가 아름다울 뿐

손길 가로

허공은 너울대며 스쳐가고

시름을 떠는

제주 푸른 삼나무를 바라보네

질긴 연실이 우리를 휘돌고

고동치는 가슴도 해조음과 한박자로

파도 여울이 뻥 뚫고 가슴을 지나

흐르던 용암의 송이재를 식히며

한겨울 저 바다로 드는 중이네.

  다음날 오후 1시엔 날틀에 몸 실어 육지로 떠날 시간, 그러나 밤새 창문을 흔드는 바람이 멎지 않아 비행 결항이 줄을 이었다. 몇 번이고 비행시간을 바꾸다가 저녁 8시에야 청주로 이륙을 하였다. 이륙 전에 제주공항 식당에서 ‘모나말’로 국을 끓인 ‘몸국’이란 국을 들었다. 내 입에 맞지 않았으나 처음 드는 국이니 애써들고 공항 트랩에 올랐다. 불규칙한 바람에도 뜨는 비행은 안전히 오르고, 두고 가는 여인처럼 제주를 내려 보았으나 이내 비행기는 자주 흔들리며, 그대로 말없이 오지 않는 잠을 청하였다. 다음날 새벽 2009년도 평창수정산악회 회장취임 첫 산행차에 몸을 싣고 청풍호가 내려 뵈는 아름다운 가은산에 올라 산이 있어 오른다는 엄홍길씨의 흉내를 만끽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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