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16 -
이언수는 김수길에게 철괴리라는 말의 뜻은 쇠지팡이를 의지해서 다니는 이씨로 사람들이 그를 깔봤으나 개의치 않았으니 신선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언수는 다음에는 종리권에 대하여 설명하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너에게 철괴리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내일은 종리권에 대하여 설명해 주겠다.”
김수길은 인사를 하고 집에 와서 모든 것을 기록했다.
종리권(鍾離權)은 사람들이 한나라 때의 사람 종리라는 뜻에서 한종리(漢鍾離)라고 부르기도 했다. 종리권의 아버지는 한(漢)나라 때 열후의 벼슬에 봉해져 벼슬이 중군태수(中郡太守)까지 올랐었다. 종리권이 태어나자 지붕 위 하늘에는 기이한 빛이 수 미터 솟구쳐 그 모양이 작렬하는 불빛과 같아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불이 난 것으로 알고 우왕좌왕했었다. 그는 두개골이 둥글고 이마가 넓었고 눈은 호랑이 눈처럼 기개가 넘쳤으며 코가 높았다. 귀는 크고 두터우며 눈썹은 짙었고 얼굴은 붉고 기골이 장대하여 세살 정도 된 아이와 같았다. 그는 태어난 후 며칠 동안 울지도 않았고 젖도 먹지 않았다. 7일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침상에서 뛰어내리면서 말하였다.
“몸은 자부(紫府)에서 놀았고 이름은 옥경(玉京)에 올라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종이 울리는 것처럼 우렁찼다. 금방 이가 나왔고 어린아이들과 뛰어놀고 밥을 먹고 자랐다.
성장한 후에 종리권은 출세하여 관직이 간의(諫議)대부에 올랐다. 간관 업무를 수행하던 중 모함을 받아서 좌천되어 강남으로 귀양 간 적도 있었다. 귀양에서 돌아온 종리권은 진(晉)의 장군으로 복직했다. 대장군이 되어 전군을 호령하게 되었다. 그 당시 토번이 국경을 넘어 침입해 들어와서 종리권은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했다. 어느 날, 양쪽 군대가 대치하여 일진일퇴 교전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면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졌다. 앞뒤 분간이 어려워지고 양쪽 군대 모두 더는 싸움을 할 수 없었다. 군사들은 자기 몸 가누기도 어려워 군대의 대오가 스스로 붕괴되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종리권이 타고 있던 말 또한 겁을 먹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바람이 한바탕 지나가고 잠잠해지자 종리권은 사방을 살펴보았다. 쓰러진 말들과 숨을 거둔 병사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 혼자만이 말을 타고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을 타고 가다보니 험준한 산골짜기 오솔길이 나타났다. 꾸불꾸불한 험난한 깊은 산골짜기 길을 따라가다 보니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종리권은 말을 몰아 산골짜기를 벗어나 자기가 지휘해온 군대를 찾기 위해 안간 힘을 다했는데 자꾸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이 저물어 가자 처량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오래된 소나무가 무성한 숲속이라 어둠이 빨리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종리권은 멀리서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 방향으로 말을 몰았다.
산속의 외딴집은 크지는 않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엄을 느끼게 하여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종리권이 귀를 기울였으나 집 안은 고요하여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종리권은 할 수 없이 대장군다운 자세로 위풍당당하게 조용히 서 있었다. 집안의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한동안 대문밖에 서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대문 안쪽에서 노인이 걸어 나왔다. 흰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종리권 앞에 와서 섰다. 비록 머리털과 수염은 희었으나 그의 눈동자는 영롱하였고 피부는 희고 얼굴에는 붉은 빛이 감돌아 마치 15세 소년과 같아보였다.
“너는 대장군 종리권이 아닌가?”
종리권은 소년처럼 보이는 이상한 노인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종리권입니다. 노인께서는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십니까?”
노인은 살며시 수염을 쓸어내리며 답하였다.
“세상의 때가 그대의 기억을 지웠으나 실은 옥경의 신선이었네. 다시 수련하여 때를 씻으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
노인은 종리권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빙그레 웃으며 종리권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지치고 배고픈 종리권에게 검은 깨를 섞은 밥을 해 주었다. 부엌에서 종리권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그 노인은 옆에 앉아 눈을 조용히 아래로 드리운 채 말이 없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편안한 얼굴로 명상에 잠겼다. 종리권은 밥을 먹고 긴장이 풀려서 조용히 앉아 노인의 행동을 따라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지나간 삶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이 그저 꿈과 같이 허망했으며 전쟁에서 패한 일에 대한 분함이 마음속에서 봄눈이 녹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마음에서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도를 추구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신선이 되는 수련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동화제군(東華帝君)은 대답하였다.
“선문(仙門)에 들기 위해서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대는 인연이 있으므로 선도(仙道)를 가르치겠다.”
이때부터 종리권은 선도 수련을 시작했다. 동화제군(東華帝君)은 종리권에게 장생진결(長生眞訣), 금단비결(金丹秘訣), 청룡검법(靑龍劍法) 등을 일일이 전수하였다.
종리권은 산속의 초가집에서 지내면서 바깥세상을 잊고 대장군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도복을 입고 머리를 빗어 올려 쌍 상투를 틀었고 손에는 불진(拂塵:먼지털이)을 들고 다녔다. 바야흐로 대장군에서 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선도의 도력이 점차 높아지자 구름따라 발길 가는대로 천하를 주유하였다. 그가 천하를 주유하며 공동산에 닿았다. 산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기운이 생동하고 경치가 좋은 자금사호봉(紫金四皓峰)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는 신선을 만났다. 그 신선은 종리권을 데리고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옥으로 만든 함 하나를 얻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속에는 신선비결(神仙秘訣)이 들어있었다. 종리권은 이때부터 이 신선비결을 수련하여 도력의 깊이를 더하였다.
하루는 여동빈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가 선계에 인연이 있음을 알아보고 제자로 삼았다. 종리권은 여동빈을 데리고 장안 서쪽 중원 오악의 하나인 화산 학정봉으로 갔다.
종리권은 붓을 들어 석벽 위에 초서로 비결을 쓰기 시작했다.
주일고명(晝日高明)
야월원청(夜月圓淸)
음양혼신(陰陽魂神)
혼합상승(混合上昇)
그리고 여동빈에게 석벽위에 쓴 16자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인체 가운데 혼(魂)은 陽에 속하고 백(魄)은 陰에 속한다. 네가 만약 양기를 보전하여 혼을 잘 응결시키자면 양혼(陽魂)을 음백(陰魄)과 결합해야만 음양이 능히 서로 합하게 되고, 혼백(魂魄)이 참(眞)을 이루고, 수련하여 진인(眞人)으로 된다. 이것을 명심하여 수련에 정진하라.” 그곳에서 선도비술을 전수하고 여동빈이 그대로 수련하였다. 얼마간의 시일이 지나자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말하였다.
“너는 수련을 하다가 동굴을 나가 구름 따라 세상에서 노닐도록 해라. 앞으로 세상에 나가서 운유할 때 너는 덕을 널리 베풀고 공덕을 많이 쌓아라. 10년 후 동정호에서 나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을 마치자 학을 타고 화산을 떠났다.
이언수가 종리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김수길은 푸른 소를 봤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선생님, 제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벚꽃 축제장에서 푸른 소를 타고 지나가는 백발노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헛것을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지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생각났습니다.”
이언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인연이 있어야 도를 만난다고 했는데, 너는 인연이 있으니 열심히 정진하도록 해라. 푸른 소를 타고 다니는 이는 노자이다.”
이언수는 노자와 푸른 소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주(周)나라 소왕( 昭王) 때였다. 학식이 뛰어난 윤 희(尹喜)가 천상(天象)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동방의 자기(紫氣)가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뛰어난 성인(聖人)이 서쪽 함곡관(函谷關)을 지난갈 것을 예견하였다. 그는 궁궐로 들어가 주 소왕에게 함곡관의 관리로 보내주도록 간청하였다. 그는 명을 받고 함곡관의 책임관이 되었다. 소왕(周 昭王) 23년 5월 초에 윤희는 손경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내가 천기를 살피니 석 달 내에 대성인(大聖人)께서 이곳 함곡관에 나타날 것이다. 너는 명심하고 있다가 특이한 사람이 지나는 것을 보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라. 그 성인을 꼭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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