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학교 가기가 정말 싫습니다. 늦게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며 뭉그적거리고 있으면 엄마의 성화가 시작됩니다. 그런 엄마에게 화가 납니다.
학교에 가면 남자 짝꿍이 날마다 책상에 줄을 긋습니다. 손이 넘어가면 연필로 찌르고, 내 공책에 낙서하고, 지우개를 떨어뜨리면 자기 것이라고 우깁니다. 대들고 싶지만, 짝꿍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학교 가기가 싫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걱정하실까 봐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친구들과 선생님도 아실까 두려워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에 왔지만, 짝꿍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학교 운동장 끝의 커다란 나무 그늘에 있는 시소에 갑니다. 친구가 와서 공기놀이하자고 하지만 고개를 숙입니다. 이런 내 모습이 정말 싫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요? 예전처럼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나도 밉고 짝꿍도 밉습니다.
시소의 둥근 쇠막대 위를 걸어 반대편 끝까지 가면 짝꿍을 혼내줄 용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땅을 보면 어지러워 앞만 봅니다. 흔들거리면 팔을 옆으로 폅니다. 시소 중간에 왔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친구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중간을 지나자 시소가 급작스럽게 내려가면서 미끄러졌습니다. 땅이 커다랗게 다가옵니다. 작은 돌이 바위만 하게 보이고, 개미들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개미 굴속의 여러 갈래 길도 보입니다. 흙벽이 나타났습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급한 발걸음소리도 들리고 누군가 흐느끼고 있습니다.
갑자기 “쿵!” 소리가 나면서 흙벽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넓은 세상이 보였습니다. 저 멀리 큰 동굴이 있고 동굴로 가는 길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길마다 시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시소에 앉아 있고 맞은편에는 귀엽고 예쁜 아기들이 웃으며 있습니다.
시소 옆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시소를 건너 동굴로 가려면 마주앉은 아기가 자라서 당신의 육체만큼 커져야 합니다. 그러면 시소를 건널 수 있습니다. 아기가 잘 자라려면……’ 하고 안내 글이 끝났습니다.
주위를 다시 둘러봅니다. 아기들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어른은 대꾸도 안 합니다. 어느 아이는 아기에게 욕을 했습니다. 무서워 울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른들도 무서워서 웁니다. 욕도 합니다. 아기를 웃게 하려고 돼지코를 만드는 어른도 있습니다. 예쁘고 귀여운 아기들은 웃고만 있습니다.
나와 마주 앉은 아기가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도 잘 모르겠어. 원래부터 여기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너는 언제부터 있었니?”
“같이 왔어요. 모르시겠어요? 이곳을 지나 함께 동굴로 갈 때 알려드리겠어요. 참, 어떻게 왔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조금만 알게 되면 모두 생각이 납니다.”
무섭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왔는지 생각하려고 애를 씁니다.
“고마워. 그러니까 시소를 건너다 미끄러져서 온 것 같아.”
“엄마와 아빠도 생각이 나는가요?”
“엄마 아빠 생각은 나는데 형제는 없어서 생각나지 않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그럼, 저를 동생이라고 생각하세요, 언니가 없거든요.”
여동생이 생기니 기뻐 눈물이 납니다. 상냥하게 말하는 예쁘고 귀여운 아기거든요.
“언니, 울어요? 언니는 울보예요.”
“기뻐서 눈물이 나는걸. 그런데 나는 용기가 없어. 짝꿍이 괴롭히는데 짝꿍을 이기지 못하는 내가 점점 더 미워져. 그래서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언니, 생각이 모두 나는가 봐요?”
“응, 기억나. 어울리지 못하니 친구들이 수군대기도 해. 화도 나지만 금방 화낸 것을 후회해.”
오랜만에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나니 행복해집니다.
“사랑하는 언니, 잘하셨어요. 저도 눈물이 나요. 동생도 울보예요.”
“그래, 우리는 울보 자매. 사랑해. 그런데 용기가 있으면 좋겠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거든. 먼저 다가오는 친구도 있지만, 괜스레 멀리해. 후회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가 버렸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그럴 용기가 안 생겨.”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노력해야 용기도 생기거든요.”
“내 짝꿍은 용기가 있는데?”
“언니, 그것은 용기가 아니에요.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지요.”
새 학년이 되면서 시작된 짝꿍의 괴롭힘이 생각났습니다. 점점 아파지는 내 마음도 느껴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분노도 생기고 어쩌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모르겠어. 용기가 있으면 짝꿍을 혼내줄 텐데.”
“알겠어요, 언니, 세상에서 제일 이기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음, 커다란 코끼리가 아닐까?”
“언니 짝꿍은 코끼리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이길 수 없어. 누구도 이기지 못할 거야.”
“그래요, 언니. 힘으로는 코끼리를 이길 수 없어요. 아시겠어요?”
“모르겠어. 알 것 같기도 하고.”
동생 말에 작은 용기와 희망도 생깁니다.
“언니는 꼭 알게 될 거예요. 코끼리하고 친구가 될 거예요. 언니, 저를 쳐다보세요. 동생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는걸. 미안해.”
“괜찮아요, 사랑스러운 언니.”
어떻게 하면 동생처럼 항상 밝고 상냥할 수 있을까요?
“행복해. 동생을 보고 있으면 마냥 즐거워져. 고마워.”
“언니도 참. 언니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요?”
“걸어서 시소를 건너고 싶어. 넘어지지 않고 건너면 용기가 생길 것 같아.”
“그렇게 될 거예요, 언니는.”
“혼자 있으면 슬픈 생각이 많이 생겨. 그러면 눈물이 나.”
“누구나 그러는 거예요. 언니 혼자만 그런 줄 아셨죠?”
“응. 혼자 있으면 점점 더 깊은 슬픔에 빠지거든.”
외톨이가 되면서 생긴 일들이 떠오릅니다. 엄마 아빠와의 얘기가 줄어들었고 짜증만 냈습니다. 친구들이 다가오면 고개 숙여 피하게 됩니다. 짝꿍을 할퀴고 발로 차고 때리는 꿈도 많이 꾸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옵니다. 코를 훌쩍이며 웃고 울었습니다. 점점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그리고 한동안 목청껏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나, 바보 같지? 울고 웃고.”
“아녜요, 울보 언니. 지금도 눈물을 흘리네요. 울지 마세요. 눈물을 닦아 드리겠어요.”
동생도 울고 있습니다.
“고마워. 동생 눈물은 내가 닦아 줄게.”
“언니, 제 얼굴이 잘 보여요?”
“응, 내 얼굴만 해.”
“언니.”
“아니, 동생이 나하고 똑같아!”
동생을 보니 나하고 쌍둥이 같습니다. 시소가 균형을 이루며 동굴로 가는 길이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시소 위를 건너가야 합니다.
“언니, 조심해서 시소를 건너오세요.”
“무서워.”
“힘내세요, 언니. 동생도 있으니까요.”
“동생만 보면서 건너갈게.”
시소 위에 올라섭니다. 아래를 보니 동굴로 가는 길은 좁은 낭떠러지 길이었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무서워 눈이 감깁니다. 웃고 있는 동생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고마워, 동생아.”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울면서 시소를 건넜습니다.
“잘 건너오셨어요, 울보 언니. 동굴까지 언니를 업고 싶어요.”
“힘들 테니, 우리 번갈아 업자.”
“알았어요, 언니.”
“무겁지 않아?”
“아니요, 언니. 저를 업으면 아실 거예요. 무겁지 않아요. 언니와 저는 하나인걸요.”
“이야기해줄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엄마와 아빠에게 졸랐어. 그런데도 동생이 없어. 네가 동생이면 좋겠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언니. 그런데…….”
“부끄러워서 그러는구나? 괜찮아. 사랑스러운 동생인걸.”
“언니도…….”
“이제 내가 업어줄게.”
동생은 조금도 무겁지 않습니다. 걷기가 더 즐거워졌습니다.
“동생아, 내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아. 동생을 업었는데도 그래.”
“언니…….”
동굴 가까이 도착했습니다. 동굴 속에서 물소리가 납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언니, 동굴 속에는 강이 흐르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더 밝은 세상이 있어요. 언니 혼자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안돼. 가기 싫어!”
“시소도 잘 건너서 왔잖아요?”
“동생이랑 헤어지는 것은 싫어.”
“언니, 이제 갈 시간이에요.”
동굴 속 강가에 배 한 척이 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뱃사공이 빨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어서 배를 타십시오. 강 건너에는 밝고 환한 세상이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한 곳입니다. 언제나 즐겁습니다. 강물 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동생과 함께 타고 싶습니다.”
“이 배는 당신과 나, 둘만 탈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언니, 안녕!”
그러고서 동생이 강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도 동생을 쫓아 강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립니다. 눈꺼풀이 떨립니다. 말을 하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환한 빛이 보이며 엄마 목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얘야! 여보, 정신이 돌아오는 가 봐요. 의사 선생님, 아이가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엄마 목소리에 가까스로 눈을 떴습니다.
“엄마, 왜 그러세요? 아빠도 계시네요?”
눈물을 흘리시는 엄마 아빠 모습이 의아했습니다.
“애야, 시소에서 떨어졌잖니.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세 시간 만에 깨어났단다. 담임선생님도 오셨다.”
“선생님, 죄송해요.”
“어휴, 천만다행이다. 어떻게 시소 위를 걸어서 건너가려고 했니? 호호호.”
그런 일이 있고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도 하고 아침밥도 맛있게 먹습니다. 마음이 날 듯이 가벼워져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다쳐서 이상해졌다는 듯이 바라보던 친구들도 모두 반갑게 대해줍니다. 책상에 앉으니 짝꿍이 놀랍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와 시소 놀이를 했습니다. 시소에 앉으니 뚜렷이 생각은 안 나지만 무언가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집에 와서 활짝 웃는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응석도 부리고 사랑도 많이 받고 싶습니다.
“우리 딸이 많이 달라졌구나. 너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엄마, 여동생이요.”
나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호호호, 애는. 그게 마음대로 되니?”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귀엽고 예쁘며, 상냥하게 말도 잘하는 여동생이.
<200자 원고지 28.9장> 2014. 10
김문수
2020-01-11 09:03
잘 보았어요
저도 동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많이 사랑하는 입장이라서
동화는 좋아하지요 동화를 많이
알면 어린 동심의 세계를 발견할 수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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