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잃은 영혼의 무게
변종태 시집'미친 닭을 위한…'

입력날짜 : 2010. 04.13. 00:00:00
'돼지털 부라자, 참 요상헌 시상도 다 있다야. 요즘은 돼지털로 부라자도 맹그냐? 그걸 입으믄 뜨시다냐? (중략) 디지털 부라쟈? 디지털 부라쟈는 어떤 거예요? 그건 투명한 건가요? 맘에 안 들면 수시로 갈아입을 수도 있나요? 촉감은 좋은가요?(중략) 디지털 시대, 온갖 것들이 디지털로 흐르는 그대와 나의 사랑도, 인연도, 죽음마저도 디지털로 처리되어 디스크에 쓰였다가, 포맷시켜 지워버릴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이라면'('디지털 플라자에 가다'중에서)

제주 변종태 시인이 네번째 시집 '미친 닭을 위한 변명'을 냈다. 2005년 세번째 시집 '안티를 위하여'를 낸지 5년만이다. 다층 문학동인 터줏대감으로 도내외 시인들의 시집을 내는데 열심이었던 시인이 5년만에 자신의 시집에 쏟아낸 시어들은 그야말로 다채롭다.

'디지털 플라자'를 '돼지털 부라자' '디지털 부라쟈'로 표현하는 시어는 신선함이 살아있다. 그의 표제시 '미친 닭을 위한 변명 A'에서는 한낮에 우렁차게 우는 닭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야기 한다.

또 시인은 '해녀한씨전' 등 시편에서는 어떤 가계사를 통해 인간 스스로가 감내해야할 운명의 그물을 그리기도 한다. 이렇듯 그의 시는 여전히 확장 중이다. 그의 시편들은 서울 조응하고 결속되어 하나의 빛나는 구슬 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슬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때로는 빛 대신 그림자로, 환희 대신 고통으로 응답하기도 한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영혼의 무게' 2부 '산다는 것은' 3부 '너, 별빛' 4부 '가끔, 나 아닌 나'로 나뉘어졌다. 자서에서 그는 "뒤돌아보니 종횡으로 분주히 찍힌 무심한 발자국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틈서리에서"라며 '번지잃은 영혼의 무게'를 포착해낸다. 다층. 7000원.

한라일보 이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