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에 거대한 성의 형체가 드러난다. 달빛 좋은 밤이다. 풀벌레가 운다.
마당에 갑자기 안개가 깔리면서 모친이 통정을 부르며 나타나는데, 그 뒤에는 탈을 쓴 망령들이 위협하듯 지켜 선다. 이들은 가끔 힘자랑하듯 무예의 갖가지 포즈를 느린 동작으로 취한다. 소복을 입은 모친은 젊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통정, 잠시 후 잠옷차림으로 나타난다.
모 친 : (소리) 통정아. 통정아.
통 정 : (소리나는 곳을 허우적거리며 찾는다) 누구시오? 이런 야심한 때 나를 부르 는 이 누구시오?
모 친 : (모습을 드러내며) 통정아. 오 내 새끼. 날 모르겠느냐. 벌써 잊었느냐?
통 정 : 오 당신은… . 어머니? 내 어머니가 맞소?
모 친 : 그래. 착하구나. 내 새끼. 날 알아보는구나.
통 정 : 헌데 당신은 어디 계시었소? 그토록 찾아 헤맸는데?
모 친 : 미안하구나. 날 찾지 마라. 난 이미 더럽혀진 몸. 이국 땅 고혼 되어 묻혔으 니 날 찾지 마라. 네가 애타도록 찾으면 내 발길만 더디어 질 뿐. 이렇게 보 았으니 이젠 서천 하늘로 갈 수 있겠구나.
통 정 : 어머니 뵈오니 가슴 찢어지는 듯 괴롭습니다. 어린 절두고 어디로 가셨소. 꿈속에서라도 만나려고 얼마나 헤맨 지 아십니까?
모 친 : 너는 하늘이 내리신 보물. 나라 위한 장부의 길 무엇이 두려우냐?
통 정 : 애비 모르고 어머니 없이 자란 고통, 이해나 하십니까?
모 친 : 어미가 떠나고 싶어 널 떠났겠느냐? 어미는 항상 널 보우할 것이니 외로워 마라, 두려워 마라.
통 정 : 외로움은 밤마다 도둑처럼 스며들어 제 손발을 묶어 놓습니다. 제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모 친 : 장부가 이렇게 심약해서 무슨 일을 이루겠느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라. 장부에겐 목적 달성을 위한 신념과 실천만 필요할 뿐. 쓸데없는 감정 따윈 장부의 오장을 병들게 하지.
통 정 : 하오나, 사람이 그립습니다. 피 냄새 섞인 바람이 아니라 갯내음을 마시고 싶습니다.
모 친 : 아서라. 나라의 명운이 네 손에 달려 있다. 널 따르는 장수들이 보이지 않느냐?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을 외면할 생각이냐?
통 정 : 두렵습니다. 자꾸만 자신이 없어집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모 친 : (버럭)못난 녀석. 어미가 그렇게 가르쳤더냐? (돌아서며) 다신 날 찾지 마라.
통 정 : 어머니. 가지 마셔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탈을 쓴 망령들 모친을 에워싼다.
통 정 : (망령들에게 애원하듯) 제발 우리 어머닐 놔 줘. 차라리 날 데려 가시오.
모 친 : 등신 같은 놈. 다신 어머니라 부르지도 마라. 난 그렇게 못난 아들을 둔 적 없다.
통 정 : 어머니, 전 명부까지라도 따라 가겠습니다.
망령들. 통정을 결박한다. 통정 순순히 묶인다.
모 친 : 왜들 이러시오. 내 아들에 손대지 마시오. 통정아 도망 가. 어서.
망령들 채찍으로 모친을 후려친다. 결박을 당한 통정 쓰러지는 모친을 보고 대항하려 하나 이미 묶인 몸. 날아드는 채찍에 힘을 쓰지 못하고 쓰러진다.
망령들 쓰러진 모친의 옷을 벗기고 린치를 가한다. 이윽고 망령들 모친의 몸을 핥는다. 모친 발버둥친다.
통정 달려들어 제지하려하나 망령들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울부짖는다. 망령들 모친을 걸쳐 매고 퇴장한다.
통 정 : (몸부림치며) 안돼. 어머니. 어머니. 이 자식들아 이거 놔. 안 돼. 어머니. 어 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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