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당실이 지켜보는데 앵두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며 춤을 춘다.
앵 두 : 눈부신 햇살은 나를 향해 빛나고 새들은 나를 위해 노래하네요. 마음은 구름처럼 하늘로 떠다니고 내 몸은 꽃밭을 거닐어요.
당 실 : 아씨, 꿈 깨세요. 이러다 병나요.
이 화 : 상사병은 약도 없다는데 이 일을 어쩌나?
앵 두 : 당당하고 멋진 사내였어. 위엄 있는 목소리, 타오르는 눈빛. 꿈속에 그리던 바로 그 남자야.
이 화 : 헌데, 어쩐다지? 삼별초 장수라면 반란군이오, 연합군 바람 앞 촛불인 것을.
앵 두 : 그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아.
이 화 : 어떻게? 죽지 않는 비법이라도 갖고 있대?
앵 두 : 언니도 보면 한눈에 비범한 사람인걸 알 걸?
당 실 : 하지만 김통정 장군님은 부인이 있다는데?
앵 두 : 우린 죽어서도 함께 할 운명. 하늘이 맺어주신 인연을 사람의 힘으론 어쩌지 못해.
이 화 : 아서. 기름단지 들고 불구덩이에 들어가지 말고. 편히 살어.
앵 두 : 언닌 몽고놈들 만행을 듣고서도 그 소리야? 우린 삼별초와 같은 핏줄 이야. 앉아서 능욕 당할 거냐구? 어떻게 편히 산다구 그래?
이 화 :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 봉변을 당하기 전에 빨리 시집 가. 널 지켜 줄 문국성 교위님 있잖아?
앵 두 : 그 사람 싫댔잖아? 왜 자꾸 연결시키려 해.
이 화 : 문 교위는 장차 이 섬의 지도자 되실 분이야. 그리고 너한테 얼마나 정성을 바치는데?
앵 두 : 정성? 흥. 그건 위선이야. 난 당장 죽어도 그 사람은 싫어.
이 화 : 철없이 굴지말고 시키는 대로 해. 다 널 위해서 문 교위와 혼인시키려는 거야.
앵 두 : 언니, 난 누구의 소유물이 아냐. 당장 나가라면 그리 할 테니, 날 어찌할 생각은 마. 난 내 방식대로 살 거라구.
당 실 : 어머, 성주마마 듭십니다.
성주와 국성 들어온다. 앵두 국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도도하게 앞을 지나쳐 퇴장한다. 당실 따라서 퇴장.
성 주 : (당황하며) 아니 저런. 인사도 없이. 애 앵두야.
이 화 :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녀자들이란 혼사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 지는 법 이니까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나간다)
국 성 : 고맙습니다. 성주마마께옵서도 과념치 마십시오. 하온데 갑자기 저를 부르신 연유가 무엇이옵니까?
성 주 : 문 교위. 삼별초에서 조배 드리러 오겠다니 어찌 하면 좋겠소?
국 성 : 잘된 일 아닙니까?
성 주 : 잘되다니?
국 성 : 담판을 하십시오. 그들을 몰아내고 탐라국의 법통을 굳건히 하셔야 하옵니다. 당장 이 섬에서 나가라고 해야 합니다.
성 주 : 우리가 무슨 힘이 있소? 지난 번 명월포로 상륙하여 동제원에 진을 치겠다는 걸 우리가 반대했지만 그들은 송담천에서 관군을 몰아내고 조천포에 웅거하지 않았소.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요.
국 성 : 하오나 이번 싸움은 결과가 뻔하잖습니까? 강화에서 진도로 다시 이곳 탐라까지 쫓겨온 반역자들입니다. 그들이 어찌 연합군과 맞서 싸우겠습니까?
성 주 : 허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처지 아니오. 저들이 우릴 몰아내고 이곳을 차지하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오?
왕자와 도내 들어온다.
성 주 : 어서들 오시오.
도 내 : 성주마마. 마음고생이 심하시지요?
왕 자 : 마음이 유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성주마마. 배중손, 노영희 없는 삼별초는 오합지졸이니 심려 마옵소서.
도 내 : 김통정을 쉽게 보면 안 됩니다. 전술과 병법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나 남해 연안은 이미 그의 수중에 있지 않습니까?
국 성 : 하오나, 반군의 수효는 겨우 천여 명에 불과하옵니다. 그들이 어찌 몽고와 개경의 연합군을 당하겠습니까?
도 내 : 문제는 우리 백성들이 그들을 도와 성을 쌓고 있고 재물까지 헌납하고 있다는 사실 아니오?
왕 자 : 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삼별초의 위세에 어쩔 수 없이 부역하고 있을 뿐 누 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 내놓고 싸움터에 나서겠소?
도 내 : 상황은 그렇지 않소. 지난 번 관군이 패퇴할 때도 삼별초를 도왔고 이미 항파두리에 들어가 무예를 연마하는 장정도 기 백 명에 이른다는 걸 모르시오?
성 주 : 그럼 자발적으로 동조하고 있단 말씀이오?
도 내 : 삼별초를 해방군으로 여기고 있다 하옵니다.
국 성 : 고려 정권에 반기를 든 역적을 감히 해방군이라 칭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도 내 :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보시오.
국 성 : 백성들이란 바닷가 모래성과 같아 형체가 있는 듯해도 밀려드는 파도엔 산산히 부서지는 법이니 걱정 할 것 없습니다.
성 주 : 그렇다고 삼별초의 압력을 무작정 수수방관 할 수만도 없는 일 아니오?
왕 자 : 물처럼 처신하십시오. 지난 번 조서가 왔을 때처럼 침묵으로 일관함이 현명한 처삽니다. 몽고와 개경의 신의를 생각하셔서라도 침묵으로 임하십시오.
국 성 : 차제에 우리도 성주왕자 대장군 문을 세우고 수위군을 모병하여 고려관군에 협조함이 어떻겠습니까?
도 내 : 그건 안 될 말이오. 아직 삼별초 기세가 등등한데, 괜히 신경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소?
소 리 : (밖에서) 삼별초 김통정 장군 입시옵니다.
성 주 : 올 것이 왔소.
김통정과 김혁정 들어온다.
성 주 : (예를 갖추며) 오랫만에 뵙사옵니다. 그리 앉으시지요.
통 정 : (앉으며) 탐라 백성 덕으로 축성작업도 마무리 돼 가고 있습니다. 섬사람들 구국의 일념에 경의를 표하옵니다.
성 주 : 황송하옵니다.
통 정 : 헌데 개경과 몽고에 서신을 보냈다는 제보가 있는데 어찌된 일이오?
성 주 : 자고이래로 탐라는 몽고의 제후국이고 작금은 고려국의 속현으로 통제를 받고 있는 처집니다. 해서 통상적으로 문안인사를 드린 것뿐입니다.
통 정 : 고려는 이미 끝났소. 우리의 귀한 아들딸들이 몽고놈들의 씨받이가 되고 야욕의 방패막이로 죽어도 상관없단 소리요?
혁 정 : 권신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탐라도 살고 우리의 대의도 살릴 수 있는 최소의 조건입니다.
통 정 : 이 섬마저 유린당하면 금수강산은 몽고놈들의 놀이터가 될 뿐이오. 일본국에도 이미 첩장을 보내어 침탈에 공동으로 대항코자 하였으니 머지않아 화답이 있을 것이오. 우린 어떠한 경우에도 탐라의 독립과 국권을 인정할 것이니 협조하시오.
국 성 : 국권과 자유를 보장한다면서 어찌하여 우리 백성들에게 세를 받치게 하고 힘든 노역을 담당케 하십니까?
혁 정 : 말씀 삼가시오. 바다를 둘러 성을 쌓은 것은 개경관군이 먼저였지 않소? 몽고 군사의 군량미를 빌미로 얼마나 많은 착취와 수탈을 일삼았으면 백성들이 우릴 해방군으로 여기겠소?
통 정 : 백성들은 갖가지 재물을 들고 항파두리로 옵니다. 허나 우리는 개경으로 향하는 조운선을 빼앗아 수천 석의 쌀을 비축하고 있소. 또한 백성들한테 논농사 경작법을 가르치고 고기 잡는 기술과 조선술을 가르치는 것을 어찌 강제 노역이라 하시오?
성 주 : 하오나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버리면 농사는 누가 짓고 늙고 병든 부모는 누굴 의지하고 살겠소이까?
통 정 : 항파두리로 오시오. 목성으로 바다를 두르고, 토성으로 군영지를 방비했고, 굳건한 석성으로 방벽을 쌓았으니 어떠한 오랑캐의 침입에도 걱정 없소. 의지할 곳 없는 자 우리가 보호할 터이니 항파두리로 오시오.
당실이와 앵두, 차를 가지고 와 탁자 위에 하나 씩 놓는다.
통 정 : 지금은 전쟁 중이니 탐라 백성들도 우리를 도와야 하오. 금품 대신 밥하다 남은 재 닷 되, 빗자루 하나씩 만들어 바치게 하고, 그것을 관장할 관리도 파견해 주시오.
당 실 : (앵두에게) 어머, 아씨. 어제 그 분이세요.
앵두, 통정 앞에 차를 놓다가 통정의 모습을 보고 놀라 찻잔을 엎지른다.
성 주 : 저런.
앵 두 : 어머, 이 노릇을 어째?
혁 정 : (벌떡 일어나 칼을 빼 들려하며) 무슨 짓이야? 요망한 계집들. 어느 안전에서 감히.
통 정 : 허어. 낭장 괜찮네. 그만 두게.
앵 두 : (무릎을 꿇어 용서를 빌며)황송하옵니다. 제 실수였습니다.
성 주 : 용서하십시오. 그 애는 제 처제 옳습니다.
통 정 : (앵두를 쳐다보며) 내가 그렇게 밉소?
앵 두 : 아닙니다. 장군님. 소녀의 실수이옵니다. 용서하십시오.
통 정 : (알아보고 놀라며) 아니 그대는 어제 그 용감했던 낭자 아니오?
앵 두 : 소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혁 정 : 맞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무례하게 이 무슨 결례요?
통 정 : 낭장 그만 되었네. 자 갑시다. 성주마마. 물 대접 잘 받고 갑니다. 이른 시일 내에 화답 주시오.
연혁 
홈 > 회원마당 > 문학창작방
이철화
ㅣ 제주문인협회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