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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蘇東坡)의 시세계 -2.동파, 적벽을 노래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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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재효
작성일 2005-05-10 (화) 10:10
홈페이지 http://www.hansimun.com/kjh/
분 류 평론
ㆍ추천: 91  ㆍ조회: 1588      
IP: 211.xxx.211
소동파(蘇東坡)의 시세계 -2.동파, 적벽을 노래하다(4)

2. 동파, 적벽을 노래하다 -네째 단락

손님에게 내가 말했다
"저 물과 달을 보면 아실 겝니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없어지지 않지요
달은 차고 이지러지지만
줄거나 늘어나지 않지요
변한다는 점에서는  
자연은 한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지만
또 달리 바라보면
자연과 나는 영원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까?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취해선 안되지만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들으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취해도 막는 이 없고
이를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고요
나와 손님이 함께 즐겨야 할 것이지요."

손님은 기뻐하며 빙그레 웃는다
술잔을 씻고 다시 따르니
어느새 안주는 없어지고
잔과 쟁반이 어질러진 채
서로 깔고 베고 배 안에 누워 자니
동녘이 훤해 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넷째 단락이면서 마지막 단락이다. 이 단락에 와서 노래는 완전히 철학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 대목에 와서 나는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는다. 셋째 단락에서 손님의 인식도 피상적이지만 넷째 단락에서 동파의 인식도 피상적이긴 마찬가지다.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을 노래라는 형식으로 풀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진다.

이야긴즉 만물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그 속의 나 또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태어나서부터 점점 변하여 현재의 내가 되었고 계속 변화중에 있으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아침 나절의 나와 점심나절의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일 것이다. 따라서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 된다.

인생이 괴로운 것은 이 변화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귀던 연인이 떠나가면 우리는 슬퍼진다. 머리를 뜯으며 괴로워할는지도 모른다. 헤어짐이라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원하지 않고 수시로 변하는 것, 이를 우리는 무상(無常)이라 하는 바 이 무상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는 영원한 것을 찾아 출가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동파는 손님에게 이런 변화만을 보지말고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 즉 영원성을 보자고 한다. 달은 수시로 모습을 바꾸지만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면서 우리 곁에 항상 있지 않으냐?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흘러간 물은 비가 되어 다시 강물로 흐르지 않으냐? 우리의 삶도 죽으면 끝인 듯하지만 자손이라는 형태로 끊임없이 삶을 이어가지 않느냐? 이런 얘기이다. 동파의 이런 세계관 내지 인생관을 순환적 세계관이라 하며 불교와 도가(道家)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듣고 감복하는 손님이나 대단한 철학인양 설파하는 동파나 딱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파의 이야기가 허망하게 들리는 것은 그가 체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일반적인 상식을 그냥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퇴계나 율곡의 도학적인 시를 읽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를 우리는 보통 '관념적이다'라고 하며 시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할 요소이다. 철학과 시는 다르지 않겠는가?

이해인의 시를 읽다가 나는 단순히 이 분이 대중적인 신앙시인만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시계의 바늘에 비유한  시였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쉴새없이 돌아가는 분침(나), 얼마나 참신한 비유인가? 시침과 분침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발견한 것은 단순한 교리전달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시인이 창조한 새로운 세계가 아니겠는가?

나는 동파가 고리타분한 철학을 설파할 것이 아니라 "너나 나나 뭘 알겠냐? 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임자가 없으니 이 밤 실큰 술이나 마시자." 손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면 한결 솔직하고 좋았을 것 같다. 손님 쪽도 그 편이 더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몹시 슬퍼할 때 나를 철학으로 위안하려 들지 말고 애인이여, 따뜻한 너의 가슴으로 나를 안아달라! 관능적인 너의 입술로 나의 목덜미를 핥아달라!  

내용적인 요소로 보면 넷째 단락은 별 감흥이 나지 않지만 중국시의 특징인 요운, 압운 등 리듬까지를 고려하면 시의 울림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또 어쨌든 천년 이상 명문으로 꼽혀온 작품이니 내가 모르는 장점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는 이 작품의 우수성 여부는 감히 논하지 않기로 한다.

<조규백 박사 번역>
소자가 말했다/ "손님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은 없고/ 달도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저와 같으나/ 결국 줄거나 늘지는 않았으니/ 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네./ 그런데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또한 무릇 천지간에는/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취해선 안될지나/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들으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취해도 막는 이 없고/ 이를 써도 다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고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라네."

손님은 기뻐하며 빙그레 웃고서/ 술잔을 씻고서 다시 따르니/ 안주는 어느새 없어지고/ 잔과 쟁반이 어질러진 채/ 서로 깔고 베고 배 안에 누워 자니/ 어느새 동녘이 훤히 튼 것도 모르고 있었네.

<원문>
蘇者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而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籍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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