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풍운 (風雲) 선인전(仙人傳) 제5회
냉일선은 무극선인의 반도원을 떠난 후 위나라에서 한동안 지냈다. 여기에서 서문표(西門豹)를 제자로 두었다. 서문표는 총명하고 용맹하였다. 냉일선은 서문표에게 천문, 지리, 의술을 가르쳤다. 서문표는 관직에 나가 공을 많이 세웠다. 마침내 위문후는 서문표를 업땅의 유수(留守)로 보냈다. 서문표가 위풍당당한 걸음새로 업땅에 닿았을 때에 쓸쓸한 거리를 보고 적지 않게 실망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늙은이들을 불러모았다. 음식을 접대하면서 서문표는 은근히 질문하였다.
“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말해보오.”
서문표의 질문에 늙은 백성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하기 시작했다.
“이 땅에는 장하가 있는데 이 장하의 수신(水神)이 여자를 너무 자주 요구하여 고민입니다.”
서문표는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니 수신이 어떻게 사람 여편네를 얻는단 말이오?”
가장 나이 많은 듯한 노인이 대답하였다.
“장하의 수신을 하백(河伯)이라 하는데 여자를 매우 좋아해서 해마다 처녀를 바쳐야만 그해 풍년이 듭니다.”
서문표는 다시 물었다.
“누가 이런 일을 처음 시행했소?”
노인은 툴툴거리며 설명했다.
“이곳에 사는 하백파라는 무당들이 주장해서 관리와 촌장들이 같이 야합한 후 벌어지는 일입니다.”
서문표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노인들을 잘 접대해서 돌려보냈다. 서문표는 방안에서 향을 태우고 냉일선을 천리전음술로 불렀다. 냉일선이 다음날 구름을 타고서 이곳으로 왔다. 서문표는 반가이 냉일선을 맞아들이고 경과를 설명했다.
“이곳에 세도하는 사람들과 무당들이 서로 짜고서 백성들에게 돈을 걷어다가 수신에게 제를 올리는데 비용으로 쓰고 남은 돈을 서로 나눠 먹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무당들이 처녀들을 보고 다니면서 하백의 신부 감이라고 겁을 주면 돈을 바치고 모면하는 모양입니다. 딸을 하백의 신부로 주고 싶은 부모는 없으니까요. 무당에게 제물을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집에서만 하백의 신부를 뽑습니다. 하백의 신부를 뽑으면 곱게 단장시킨 후 택일하여 갈대로 엮은 배에 태워서 강물에 떠 내려 보냅니다. 그러면 조금씩 흘러가다가 배가 가라앉으면 처녀는 물 속으로 들어가 하백의 신부가 된답니다. 그래서 딸 가진 백성들은 여기를 떠나서 이곳은 쓸쓸하고 황량합니다.”
냉일선은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서문표는 냉일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이곳의 지세를 보니 오행의 기운이 고르지 못하니 12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수(水)의 기운을 보강하면 태평성대 하리라.”
냉일선은 말을 마치자 홀연히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하늘로 올라갔다. 서문표는 황급히 절을 올렸다.
하백에게 신부를 보내는 날이 되자 서문표는 의관을 갖추고 장하로 나갔다. 위엄을 갖추고 공경하는 듯한 자세로 의식에 임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구경을 나왔다. 늙은 무당은 몇 가지 재주를 보이며 사람들을 현혹시켜 의식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무당 뒤에는 제자들이 향로니 건절등을 들고 서 있었다. 서문표는 늙은 무당에게 가서 말하였다.
“수고가 많소 이 땅의 평온을 위해서 애쓰시니 어찌 보답해야할지 모르겠소. 하백에게 부탁이 있으니 오늘 하백에게 출가할 신부를 데리고 오시오 내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겠소.”
늙은 무당은 서문표가 생각 외로 꺼벙해서 하백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못 건방을 떨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신부를 데리고 서문표 앞에 섰다. 신부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척 하면서 순식간에 늙은 무당의 혈도를 짚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늙은 무당은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서문표는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수신 하백에게는 절세 미녀를 보내야지 이런 평범한 여자를 보내서 그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된다. 내 이 제사장을 보내서 하백에게 물어보고 나서 그가 원하는 처녀를 보내 주겠다. 여봐라 이 무당에게 철구슬 두 개를 매달아라.”
서문표의 명을 받들어 이졸들이 달려들어 무당의 두발에 큼직한 쇠공을 매달았다. 뱃전에 세워 놓고 서문표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성격이 급해서 네가 하백에게 빨리 가서 어느 집 딸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고 올 수 있도록 철구슬을 매달았다. 아마도 빨리 가라 앉을 것이야 얼른 가서 물어보고 오너라.”
서문표는 싱긋웃으며 무당을 물속으로 집어 던졌다. 하백파의 우두머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서문표가 입을 열었다. 역시 우렁차게 외쳤기 때문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하백에게 보냈더니 하백의 접대에 세속의 일을 잊은 모양이구나 제자를 보내서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답신을 보내라고 하라.”
이졸들이 와들와들 떠는 하백파의 제자를 차례로 강물에 던졌다. 구경하던 하백파의 사람들은 공포로 와들와들 떨었지만 서문표는 태연히 딴전을 부리며 기다리다가 한 명씩 계속 수장을 시켰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촌장들을 불렀다. 그들은 무당과 결탁해서 치부한자들 이었다.
“여자들이란 믿을 수가 없는 존재로군 한번 가더니 다시 오지를 않는군요 당신들이 한번 가보오.”
세도를 부리던 노인들이 사색이 되어서 빌었다.
“저희들은 집에서 처리해야 될 일이 많아서 하백을 찾아가는 것은 참으로 곤란합니다.”
서문표는 이들의 아혈을 짚고 우렁차게 명령했다.
“여봐라, 이들이 흔쾌히 갔다 오겠다고 하니 보내주어라.”
이졸들이 달려들어 쇠뭉치를 채우고 강물에 세 노인을 던졌다. 한참을 기다린 후 서문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들이 한번 간 후 다시 오지 않으니 해마다 이 일을 주선해온 관속과 이장들을 보내야겠다. 여봐라…….”
기겁을 한 자들이 모두 서문표 앞에 와서 조아렸다. 하백파의 잔당들과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와서 부복하고 외쳤다.
“저희들이 혹세무민하여 왔으니 그 죄 죽어 마땅하나 너그러이 목숨만은 살려 주옵소서.”
훌쩍이며 푸들푸들 떠는 이들을 한참 쳐다보다가 서문표는 입을 열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구나 설령 수신이 있다 한들 어찌 인간을 탐한단 말인가! 하백파의 잔당들아 너희 죄는 죽어 마땅하나 살려두니 나이 많은 홀아비들에게 짝을 짓게 하라 하백파의 모든 재산과 촌장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열 두 곳에 저수지를 만들겠다.”
이후로 업땅에는 무당이 자취를 감췄다. 다른 곳으로 떠났던 사람들도 점차로 돌아왔고 열 두 곳의 저수지는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였다. 서문표는 업땅을 풍요롭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었다. ( 제 2부) 끝.
김태일
2006-08-16 11:23
옛날에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관권과 신권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민초들을 수탈하였지요. 냉일선과 서문표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 ^^
연혁 
홈 > 회원마당 > 문학창작방
김태일
ㅣ 제주문인협회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