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22 -
한상자의 아버지 한회(韓會)는 한상자가 매우 총명하다고 생각해서 동생인 한유에게 자주 아들자랑을 했다.
“이 아이는 뛰어난 자질을 하늘이 내렸으니 장래에 큰 업적을 남길 것이다. 훌륭한 스승을 찾아보도록 해라.”
한유는 조카인 한상자를 아껴서 좋은 스승을 찾아 한상자를 가르쳤다. 한상자는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어서 경서의 깊은 뜻을 헤아렸다. 스승의 능력을 뛰어넘어 오히려 깊고 높은 뜻을 설명하여 주는 지경이었다. 가르치는 선생들이 자신들의 무지를 탄식하며 부끄러워하였다.
“어찌 평생 공부한 내가 이제 겨우 9세에 불과한 어린애보다 경서의 이해력이 모자라단 말인가?”
스승들이 차례로 물러났고 그가 신동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에 강도가 들어 그의 부모를 살해하였다.
이때부터 한상자는 숙부인 한유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한유의 기대와는 달리 한상자는 공부를 하지 않고 나태한 생활을 하였다. 한유가 보기에는 술을 마시고 꼼짝않고 틀어박혀 잠만 자는 듯이 보였다.
도저히 더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한유는 한상자에게 충고를 하였다.
“젊은 날이 길지 않으니 어찌 애써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마음을 가다듬어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라.”
한상자는 한유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숙부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제가 하는 공부는 남과 같지 않을 뿐입니다.”
한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화가 불같이 치솟았으나 꾹 참고 다시는 한상자에게 훈계를 하지 않았다.
한상자는 말도 없이 며칠씩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했다. 그러다가 낙양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20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
당나라 헌종 원화 년에 한상자는 40세가 되어 장안에 있는 숙부 한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옷이 다 떨어지고 몸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나고 있었다. 한유는 불쾌하였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조카를 따뜻이 대하였다.
별당을 한유에게 내어주고 거기서 기거하게 하였는데 마치 나무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 친구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삼사일을 계속해서 자기도 하였다. 한유는 화가 났지만 차라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은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한유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한번은 한상자에게 말을 걸었다.
“ 대체 네가 한다는 공부는 무엇이냐?”
한상자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태어나기 전부터 갖고 있는 진성을 찾는 공부입니다. 건궁에서 떨어지면 얼과 넋으로 나누어집니다. 얼은 하늘의 중심에 있게 되고 가볍고 맑은 양기가 됩니다. 넋은 음하고 탁한 기운으로 모든 생물의 육체에 붙어 있습니다. 제가 배우는 공부는 이 음기인 넋을 태워 순수한 양으로 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숙부님도 이 공부를 해 보시지요.”
한유는 조카가 삿된 길로 빠져서 요사한 배움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한심한 생각이 들어도 화를 억누르고 온화하게 갈 길이 서로 다르다고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한유의 팔순 생일 잔칫날은 떠들썩했다. 기라성 같은 벼슬아치들이 연회에 참석하여 한유에게 덕담을 건네고 선물을 전하였다. 한유는 매우 즐겁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때 한상자도 그들과 어울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상자의 수려한 풍모와 말솜씨에 매료되어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유는 조카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눈을 찌푸렸다. 과연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늙음을 늦추는 방법이라든가 장생을 하는 도의 수련법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한상자를 선인으로 생각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한유는 당황하여 얼른 손님들에게 술과 음식을 권하며 한상자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한상자에게 말하였다.
“ 어찌 요사스런 이야기로 내 손님들을 현혹하는 게냐? 잘못해서 너의 말과 행동이 구설수에 오르면 내가 난감한 처지에 빠진다. 제발 자중하고 말을 아껴라.”
한상자는 태연하게 답하였다.
“숙부님 제가 도에 대하여 시를 지었으니 들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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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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