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18 -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홀로 잔을 연거푸 비우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았던 도사가 가까이 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종리권이었는데 여동빈이 선도의 인연이 있는 것을 알고서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종리권이 붓을 들어 벽에 글을 썼다.
坐臥常携酒一壺(좌와상휴주일호) 앉으나 누우나 항상 한 호로의 술을 지녔고 不敎雙眼識皇都(불교쌍안식황도) 두 눈으로 황도의 일을 모르게 했네. 乾坤許大無名姓(건곤허대무명성)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이 疏散人間一丈夫(소산인간일장부) 한낱 인간세상을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일세. 여동빈은 시를 음미해 보고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봤다. 즉시 두 손을 맞잡고 가슴까지 올려서 극진히 예를 표하고 노인에게 물었다.
“비록 하늘과 땅이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다고 하였지만 도장의 대명을 감히 묻고 싶습니다. 도장의 성명 삼자를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미소를 띠고 대답하였다.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요.”
여동빈은 ‘종리(鍾離)’라는 말을 듣자 마음속에서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는 분명히 일찍이 부모님이 항상 말하였던 ‘마조(馬祖)선사의 예언’이 분명하였다.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 여동빈이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여동빈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붓을 들어 시로 화답하였다. 그는 시원스런 붓놀림으로 벽에다 시를 적어나갔다.
生在儒家遇太平(생재유가우태평) 유가 집안에 태어나 태평시대를 만났건만懸纓垂帶布衣輕(현영수대포의경) 갓끈을 걸어두고 허리띠를 벗으니 베옷이 가볍네. 誰能世上爭名利(수능세상쟁명리)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리를 다투겠는가?
欲侍玉皇歸上淸(욕시옥황귀상청)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돌아갈까 하노라. 종리권은 여동빈의 시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본 후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기억은 잊었으나 상청을 거론하니 공자는 이미 도를 향하는 마음이 있으니 나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선도를 따르지 않겠소?”
여동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여동빈을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을 어떻게 버리고 떠날 수 있겠는가? 여동빈의 마음을 종리권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대와 내가 즉시 선도로 입문하는 것이 아니니 다음에 내가 머무는 여관으로 찾아오시오.”
여동빈을 홀로 남겨두고 종리권은 밖으로 나갔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동빈은 고별인사나 하려고 종리권을 찾아갔다. 장안 근처 여관에 찾아가자 깊어가는 가을이라서 종리권은 마침 방안의 작은 화롯불을 피워 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다.
“도사님 저는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가기 전에 인사나 하고 가려고 찾아왔습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겠군요.”
서로 몇 마디 덕담을 나누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들었다.
“자네는 피곤에 지쳐 자고 싶다는 일념뿐이니 일단 내 침상에 올라가 조금만 잠을 자게. 내게는 여의침(如意枕)이라는 베개가 있는데 그걸 베고 누워서 한바탕 여의몽(如意夢)이나 꾸어보게.”
여동빈은 이미 너무 졸려서 몽롱한 상태로 침상에 올라 베개를 베고 누웠다. 여동빈은 꿈속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장안에 가서 진사시험을 보았는데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으며 그 후 권문세가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장가들고 자식도 많이 나았다. 천하가 여동빈의 마음대로 움직였고 인간세상의 부귀영화가 한 몸에 모인 듯이 즐거웠다. 평생의 모든 소원을 크게 이루었는데 운이 다하여 다른 당파의 모함으로 죄인이 되었다. 그의 여인들은 능욕을 당하였고 친구들에게 배신당하였다. 아내와 자식들도 다 흩어졌으며 죽임을 당하였다. 여동빈도 멀고 먼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고초는 너무나 가혹했고 병들어 죽어가면서 여동빈은 스스로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탄식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여동빈은 잠에서 깨어나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나간 것이 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생생한 것이 어찌 꿈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종리권을 보자 아직도 노란조밥을 다 익히지 못하여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 한 평생이 진정 꿈이었다는 것인가? 수십 년의 부귀영화가 정녕코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종리권이 부채질을 멈추고 말하였다.
“노란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꿈이 끝났다. 너의 오십년 부귀영화는 한갓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헛된 것에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이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여동빈은 가족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수도하고자 결심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운방(雲房)선인 종리권에게 절하며 말하였다.
“신선이 되는 수도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을 제자로 받아들인 후 여동빈에게 말하였다.
“천부적인 너의 좋은 자질을 보건대 세상을 제도하는 선(仙)술을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물들어 인성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신선이 되기는 어렵다. 너의 공행(功行)을 다 채우지 않아서는 신선이 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쇠를 금으로 만들고, 납을 은으로 만드는 황백술(黃白術)을 전수하겠다. 너는 이 황백술로 세상을 제도하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삼천 가지 공덕이 차고 팔백 가지 선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다시 와서 신선의 길을 열어주겠다.”
사제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을 데리고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의 동굴로 데려갔다. 동굴에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잔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한다.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남겨놓고,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숙독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절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시절이 호시절이라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花露滴(춘기색공화로적)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이 맺혀 지는데朝陽拍海岳雲歸(조양박해악운귀) 아침 해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산 구름이 흩어지네.스승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으라고 했다. 이어서 종리권이 여동빈에게 말하였다.
“큰 도란 이름도 형체도 없다. 그러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모든 사람의 심령에 존재하며 네가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뿐이다. 그러니 너는 그저 만물의 도리를 다하고 하나뿐인 자신의 성을 다하여 명에 이르며 명과 성을 보전하여 도에 합치하면 비로소 하늘과 땅과 같이 견고하고 장구함을 얻게 될 것이다.”
여동빈이 머리를 조아려 존경을 표시하고 종리권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수련서를 주고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속의 손님)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종남산 학정봉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사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口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姓이 여(呂씨, 여동빈)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여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을 전수하였다.
김순이
2005-12-29 15:48
진국태 의사님 계셨으면 내가 찾아가서..., 자원해서 일년동안 벙어리 되는 침 맞고프우다게.
강병철
2005-12-30 02:25
김순이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묵언은 수행의 한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괴로울 것 같습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준 자료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십시요.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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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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