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9 -
진국태가 말하자 이문일이가 얼른 죽은 사람의 저고리를 들춰 왼쪽 가슴 부위를 살피고 진국태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사람은 산돼지털이 심장을 파고들어 죽었소. 이는 필시 집안사람이나 가까운 친구의 소행일거요.”
진국태가 큰소리로 죽은 사람의 사인을 말하자 의원들이 가서 가슴 부위를 살펴보고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부인이 즉시관아로 압송되어 고문을 가하자 즉시 사냥꾼인 남편의 친구와 정을 통한 여인이 남편을 살해했다고 죄를 실토하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목사는 진국태의 의술에 다시 한 번 더 감탄을 하게 되었다.
진국태와 이문일이 명월로 떠나려 할 때 몰락한 양반집에서 부인이 다 죽어 간다고 진국태에게 치료를 해달라고 한 젊은이가 찾아와 애원하였다.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시오. 명주를 짜다가 북이 떨어져 주우려다가 쓰러져 기절했소.”
진국태는 서둘러서 젊은이를 따라갔다. 몰락한 집안이라도 명색이 양반인지라 진국태는 그 여인의 진맥을 할 수 없었다. 기절한 부인의 손목에 실을 묶고 문틈으로 내보내라고 한 후에 그 실을 잡고 진맥을 했다.
“문일아! 대통을 다오.”
진맥을 마친 진국태는 이문일이 대통을 꺼내주자 입에 물고 침통에서 침을 꺼내 대통에 집어넣어 문틈으로 힘껏 쏘아보냈다. 날아간 침은 그 여인의 복부에 꽂혔다. 잠시 후에 그 여인은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렸다.
“휴식을 취하고 죽을 조금씩 먹이도록 하시오. 수일 내로 기력을 회복할 거요.”
명주를 짜는데 힘이 들어가면 실이 끊어지므로 밥을 굶고 기진 한 상태에서 명주를 짜다가 허리를 굽힌 순간에 내장이 꼬여 부인이 쓰러졌던 것이다. 진국태가 침을 날려 배에 꽂자 내장이 자극을 받아서 움직여 제 자리를 찾은 것이었다. 진국태와 이문일은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명월로 향하였다.
진국태와 이문일이 성안으로 목사의 병을 치료하러 간 사이에 난산으로 고통을 받는 산모의 집에서 진국태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진국태의 부인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진국태가 내린 처방을 떠올려 그 사람에게 일러줬다.
“애를 낳지 못해서 전에 누가 찾아오니 문설주에 쌓인 먼지를 모아서 타 먹이라고 한 적이 있으니 그렇게 해보시오.”
그 사람은 진국태가 없어서 막막하던 차에 부인의 처방을 듣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가서 그리하라고 말하겠습니다.”
진국태와 이문일이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부인이 마중을 하다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태연하게 저녁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초저녁에 난산을 하는 산모가 있다고 명랑골에서 사람이 찾아왔었습니다.”
말에서 내려서던 진국태가 눈꼬리를 올리면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부인은 진국태의 화난 얼굴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대로 말하였다.
“전에 처방한 것이 생각나서 문설주에 쌓인 먼지를 물에 타서 먹으면 .....”
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국태는 다시 말에 올랐다.
“아뿔싸! 잘못하면 두 목숨이 죽게 되었구나. 어리석은 여인이 사람마다 시간마다 처방이 다른 것을 모르고 멋대로 지껄여 댔으니...”
진국태는 바람처럼 백마를 타고 명랑골로 향했다. 명랑골에 도착하자 말을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 동네에 난산을 하는 산모가 있는 집이 어딘가?”
그 사람이 안내하는 집으로 가니 이미 산모가 금방 숨을 거둔 상태였다. 진국태가 황급히 뛰어 들어가 산모의 맥을 짚어 보더니 황급히 침을 꺼내들었다. 길고 가는 침을 빠르게 한번 배에 찌르고는 식은땀을 닦으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더운물을 준비하고 아기를 받으라.”
다들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데 어린애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
잠시 후에 산모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휴우, 끄-응”
사람들은 죽었다고 생각한 산모와 아기가 살아나자 환호하였다.
“과연 진국태 어른은 명의입니다.”
진국태는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에게 싸늘히 말하였다.
“아기를 살펴보면 엄지손가락에 침을 맞은 자국이 있을 것이다. 아기가 어미의 내장을 움켜쥐어서 어미의 숨이 넘어갈 뻔했다. 내가 침을 엄지에 놓아서 손바닥을 펴서 어미와 아기를 살린 것이다.”
말을 마치고 진국태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진국태는 부인을 불러서 침을 목 아래에 꽂았다가 빼었다. 부인은 무슨 짓이냐고 항의를 하려고 하였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중한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워들은 풍월로 오늘 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뻔 했으니 그 잘못은 매우 크오. 지금부터 일 년 동안 벙어리로 지내면서 수양을 하시오.”
부인은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 후에 진국태가 다시 침을 놓을 때까지 부인은 말을 하지 못했다.
진국태의 명성은 마침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충청도에서 의술에 조예가 깊어 명성을 떨치던 사람이 있었는데 진국태의 명성을 듣고 진국태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명월로 찾아왔다.
“나는 충청도에서 온 장삼이(張三李)라 하오.”
장삼이는 제주의 좁은 지역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언행에서 교만함이 드러났다.
“나는 이곳 제주에서 죽 살아온 진국태요.”
서로 통성명을 한 후에 서로 의술을 논하기 시작하였다. 음양오행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서 장삼이는 진국태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한 환자가 찾아왔다.
“저 환자를 치료해 보시요.”
진국태가 싸늘한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그럽시다.”
장삼이는 자신 있게 그 환자를 진맥했다.
“이 사람은 간에 염증이 생긴 지가 오래되었으며 농이 있소.”
진국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럼 어떻게 치료를 하겠소. 치료를 해 보시요.”
진국태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하였다.
“한 일 년은 침을 맞고 약을 먹여야 치료가 가능하지요. 내가 확실히 일 년 안에 치료할 수 있소.”
장삼이가 뻐기듯이 자신 있게 말했다. 진국태가 싸늘히 코웃음을 쳤다.
“흥, 일 년이라고? 이 자는 가난해서 계속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다. 나는 즉시 이자의 병을 치료하겠다. 넌 알량한 의술을 갖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건방을 떠느냐? 실력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인물을 알아보겠느냐?”
진국태가 장삼이 에게 호통을 치고 난 후 이문일에게 말하였다.
“문일아! 저 사람을 팽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라.”
문일이가 그 환자의 발목을 단단히 새끼줄로 묶고 늙은 팽나무에 매달았다. 진국태가 긴 침을 들고 그 환자의 가슴에 침을 꽂았다가 빼기를 수 회 반복했다. 장삼이는 멍하니 그 치료방법을 쳐다보고 있었다.
“컥...컥...끄윽..”
환자가 입을 벌려 고름을 뱉어내었다. 코에서도 고름이 흘러내렸다.
“아니 저럴 수가?”
장삼이는 감탄을 하였다.
“몸 안에 있는 고름이 나올 만큼 다 나왔으니 이제 환자를 내려서 눕혀라.”
진국태가 지시하자 문일이가 얼른 환자를 끌어내렸다.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보리떡을 해서 먹도록 하라. 보리가 너의 건강에 좋다.”
진국태가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자 환자는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환자의 기색이 훨씬 편해진 모습이었다.
“진국태어르신! 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쳐댄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장삼이가 사죄하자 진국태가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너그러이 장삼이를 대하였다.
“저는 가전에 전해지는 비법을 배우고 익혀 의술을 펴고 있으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조상에게 누를 끼치게 되었으나 오늘 대단한 분을 만나서 견문을 넓힙니다. 저의 조상은 장과로 선인의 후예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진국태는 장삼이에게서 팔선중의 한명인 장과로(張果老)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장삼이가 장과로의 후손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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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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