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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강병철
ㆍ작성일	2005-10-23 (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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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 류	소설

ㆍ추천: 62 ㆍ조회: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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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의선(醫仙) 8 -
“허허. 대단한 놈이로군. 너는 나를 따라 다녀라.”
진국태는 흐뭇한 듯이 이문일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진국태는 그날부터 이문일을 조수로 썼다.
“너는 어디서 골격을 맞추는 것을 배웠느냐?”
진국태의 물음에 이문일은 느린 어조로 대답했다.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는데 옛날 몽고인들이 말을 타다가 자주 떨어져서 어깨가 탈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몽고병의 접골술이 잘 발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도 몽고병들이 많이 왔었는데 아마도 누가 옛적에 그들에게서 배운 것을 전한 모양입니다.”  
이문일이가 백마의 말고삐를 잡고 진국태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보니 진국태가 손끝을 다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문일이는 진국태가 말을 타고 가면서 손끝이 아려서 고생하는 걸 봤다.
“메밀그루터기에 쌀깨풀!”
이문일이가 한라산을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늦은 씨뿌림(晩播)에 적응하는 가을메밀을 수확한 밭들을 지나쳐가면서 진국태는 이문일의 말을 되새기다가 말을 세웠다. 그는 메밀그루 틈에서 쌀깨풀을 뜯어서 두 손바닥으로 비볐다. 즙을 내고 쌀깨풀을 손톱에 처매자 손톱 끝이 한결 편해졌다. 오래지 않아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허허 참! 그놈 신통하군.”
그 뒤로 진국태는 이문일을 귀여워했고 쾌활한 이문일은 누구에게나 붙임성 있게 굴었다. 이문일이가 이언수의 조상이었다. 진국태도 인정을 했던 이문일의 의술과 진국태의 비방이 비전으로 전해져 이언수에게로 내려온 것이었다.
진국태의 의술은 널리 이름을 떨쳤으나 사람들이 진국태를 존경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이웃으로 대하거나 혹은 미심쩍어 하고 시기하는가 하면 비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진국태는 명예를 탐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여도 개의치 않았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던 여름날에 진국태가 이문일이 고삐를 쥔 백마를 타고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들을 지나가게 되었다.
“저기 진국태의 백마가 오고 있다.”
한 아이가 외치자 대 여섯 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얘들아! 우리 진국태를 놀려주자. 내가 쓰러진 척 할 테니 진국태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해라.”
말을 마치자 그 애는 풀밭에 풀썩 쓰러졌다.
“끄응”
쓰러진 아이가 신음 소리를 냈지만 아이들은 그가 아픈 척 하는 줄 알았다.
아이들은 진국태에게 황급히 달려가서 말했다.
“진국태 어르신 ! 우리 친구가 같이 놀다가 넘어져 신음하고 있으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진국태는 백마 위에서 쓰러진 아이를 힐끗 보면서 이문일에게 말하였다.
“덧없는 인생이여. 수명이 다한 것을 내가 어찌하랴!”
이문일이 말고삐를 고쳐 쥐며 말하였다.
“얘들아! 너의 친구가 이미 죽었으니 살릴 방도가 없구나.”
이 말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장난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진국태와 이문일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자 아이들이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러 우르르 몰려갔다. 아이들은 그 아이가 이미 죽어 있는 걸 알았다. 쓰러지면서 풀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돌에 머리를 다쳐 즉사해버린 것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천하가 소용이 없고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네.”
이문일이 대답했다.
“생명이란 것이 너무 허무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위의 모든 생명이 다 죽어 가는 걸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사는 게 참 신기하죠.”
  이문일의 말하는 것을 듣고 진국태는 대견스럽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 봤다.
“네가 영특하여 도를 깨우치겠구나. 내가 명예를 탐하지 않는 것은 내가 양미간이 좁게 태어났으니 존경을 받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내게 주어진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현명하지. 사람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하여 헛되이 애가 타는 것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지.”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계속하여 길을 걸어가는 진국태와 이문일의 얼굴위로 여름 해가 붉게 노을을 드리우며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진국태와 이문일이 명월진(明月鎭)에서 며칠을 하릴없이 한가하게 보내고 있었다. 진국태와 이문일이 약초의 성질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제주 목관아 에서 진국태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제주(濟州)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옥돔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목이 점점 더 아파서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짜증을 부리는 목사를 보다 못한 육방하인들이 진국태를 부른 것이었다. 목사는 진국태가 매우 용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내심 자신의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목사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진국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전들도 진국태가 나타나지 않자 매우 불안하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목사는 여기저기 분풀이를 해댔다.
“아니 진국태란 놈이 대체 어떻게 되었기에 지금도 소식이 없단 말이냐? 이는 필시 나를 깔보고 능멸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 혼 줄을 내서 기강을 세우고야 말겠다. 괘씸한 놈.”
목사가 분통을 터뜨릴 때 밖에 나가서 동태를 살피던 아전이 얼른 들어와서 보고를 했다.
“지금 진국태가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목사가 분기탱천한 모습이었으므로 떨며 숨죽여서 보고를 했다.
“아니 그러면 냉큼 여기로 들어오지 않고 뭣하고 있단 말이냐?”
아전은 벌벌 떨면서 보고를 계속했다.
“그게,  진국태가 탄 백마를 이문일이란 놈이 한가하게 끌고 성안으로 들어오더니 말에서 내려 나막신을 꺼내 신고 담뱃대를 물고 유람하듯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진국태의 거동을 보고 받은 목사는 화가 치밀어서 벌떡 일어섰다.
“내 오늘 진국태 이놈을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때 관덕정 마당으로 느릿느릿 어슬렁거리면서 들어서는 진국태의 꼴을 보자 목사는 피를 토할 것처럼 분개하였다.
“저놈을 당장 이리 끌어다가 치도곤(治道棍)을 쳐라! 내가 죽으면 죽었지 저런 놈에게 능멸을 당하면서 치료를 받을 순 없다. 컥!”
너무나 분한 마음이 들어서 도저히 더 참을 수 없다고 호통을 치던 목사는 칵하고 옥돔 가시를 뱉어냈다. 그러자 진국태가 황급히 달려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용서하소서. 가시를 빼내기 위하여 한 행동이니 너그러이 생각하여 화를 가라앉히소서. 제가 어찌 감히 불손한 행동을 하겠나이까?”
목사 앞에 엎드린 진국태를 멍하니 내려 보던 목사는 침을 한 모금 꿀꺽 삼키고 무릎을 쳤다. 목이 시원해서 그간의 짜증이 즉시 사라졌다.
“과연! 과연! 너는 하늘이 내린 명의가 틀림이 없다. 여봐라. 진국태에게 후히 상을 내려라.”
목사는 껄껄 웃으며 진국태에게 후하게 사례를 했다. 이일로 진국태는 명성이 더해졌고 사람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평소 하던 대로 이문일과 함께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었다.
목사의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 한 다음날 진국태와 이문일은 주막에 들러 국밥을 시켜먹고 있었다.
밥술을 뜨던 이문일이가 멀리서 들리는 여인의 곡성을 듣고 의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어허 여인의 곡성에 슬픔이 전혀 없으니 마지못한 곡성이로군! 쯧쯧...”
진국태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과연 여인의 곡성이 들려왔다.
“아이고! 아이고! 흑흑......”
진국태는 눈을 감고 잠시 여인의 통곡소리를 들었다.
“저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자.”
이문일이가 백마를 끌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초가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멍석이 펴져 있었고 술병이 뒹굴고 있었다. 먹다 남은 산돼지 고기접시도 눈에 띄었다. 그 사내는 사냥꾼이었다. 건장한  중년의 사내를 부둥켜안고 한 여인이 통곡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인의 통곡소리에 몰려들어 측은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집주인이 술을 마시고 낮잠이 들었는데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놀라서 의원을 불렀는데 의원은 진맥을 하고 그녀의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목 놓아 울고 있었던 것이다.
“허 그것 참 모를 일이로군. 건장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죽을 리가 없는데 술에 독이 든 것도 아니고......”
의원은 은침을 마시던 술에 저어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제주 성안에 있던 내로다 하는 의원들이  다 모여들어도 사인이 아리송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죽었으면 심장이 문제였겠군. 심장부위를 살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