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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강병철
ㆍ작성일	2005-10-11 (화) 14:59
ㆍ홈페이지	http://blog.naver.com/qshuba
ㆍ분 류	소설

ㆍ추천: 68 ㆍ조회: 2005

ㆍIP: 222.xxx.117

[장편소설] -의선(醫仙) 7-
진국태가 활약했던  조선시대에  제주에는 1목(牧) 2현(顯), 즉 제주목(濟州牧) 아래에 두개의 현인  정의현(旌義顯)과 대정현(大靜顯)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다.  진국태의 의술이 유명하자 여기저기서 아픈 사람들이 찾아왔다.
늦은 여름 오후에 비지땀을 흘리며 대정현(大靜縣)지역에서 한 여인이 진국태를 찾아왔는데 그녀의 남편이 건강하지 못하였으므로 진국태의 도움을 청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항시 피곤하고 광대뼈만 남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판이었다. 그녀가 진국태를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진국태는 돌아가라는 표시로 손을 내저으며 냉소적으로 말하였다.
“사정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돌아가라.”
이 말을 듣고 먼 길을 일부러 찾아온 이 여인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났다.
“아니, 일부러 먼 길을 왔는데 어찌 그리 말하시오.”
진국태는 태연하게 낮은 목소리로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그만 하라. 그대는 여기로 오다가 저 소나무 옆 원두막에 머무르지 않았는가!”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하였다. 여인은 불안한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불안이 그녀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그게 제가 원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인이 변명을 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알고 있다. 그대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녀가 진국태를 만나러 힘들게 오랫동안 길을 걸어오다가 원두막이 있었으므로 잠시 쉬어가려고 하였다. 이 원두막을 지키던 사내가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너스레를 떨며 수작을 부려 반 강제로 이 여인과 운우의 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진국태가 신인이라서 보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안다는 소문을 들었던 여인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진국태가 어찌 이일을 아는지 여인은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러면서도 내심 진국태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고 놀라고 있었다.
“그대의 남편은 이제 보름이 지나지 않아서 건강해질 거야. 그대도 탐심이 사라져서 식욕과 다른 욕구가 줄어들고 살이 빠지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게 될 거야. 하늘이 큰일부터 작은 일까지 세심히 정해 놓았으니.... 어험, 그대는 과거를 잊고 잘 살게.”
여인이 하직인사를 하고 황망히 돌아서려하자  진국태가 한마디를 더했다.
“아참, 그대가 만난 원두막의 홀아비가 죽어있을 터이니 불쌍히 여겨서 장례를 치러주게.”
그녀는 그를 장사지내주면서 조금의 눈물을 흘렸으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머릿속에서 원두막에 대한 것은 깨끗이 잊기로 다짐하였다.
제주의 동쪽에  정의현(旌義顯)이 있었다. 그 곳에 효성이 깊은 고정수(高正守)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의 아비가 병에 걸려 쇠약해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자 마지막으로 진국태를 찾아왔다.
아비를 업고 백리가 넘는 산길을 걸어왔으니 그 지극한 효성은 남의 마음을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피곤에 지친 고정수와 그 아비를 보고 진국태는 무심하게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쉬지 말고 지금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그대의 아버지가 병에서 회복되리라.”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아니 이렇게 먼 길을 힘들게 찾아왔는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잠깐 휴식도 없이 돌아가라니 너무 하지 않습니까?”
진국태는 코웃음을 치며 고정수에게 말하였다.
“네 효성이 지극하니 하늘이 내린 백골(白骨) 속의 쌍용수(雙龍水)를 마시고 네 아비가 기사회생(起死回生)할거야. 효성에 하늘이 수명을 연장해 주는 거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듣고 돌아가던 아비와 아들은 무척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진국태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병이 낫는다고 하니 고정수는 그냥 그의 아비를 들쳐 업고 발걸음을 돌렸다. 밝은 보름달이 힘겹게 걸음을 떼어놓는 부자를 비추고 있었다.
“얘야, 쉬었다 가자.”
아비가 지쳐서 고정수에게 말하였다.
“그래도 진의원이 쉬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는데.....”
아들이 망설이듯이 대답하자 아비가 벌컥 화를 냈다.
“ 내 수명이 다해서 죽을 때가 되었으니 이승으로 가마. 명의라고 헛소문이 난거지. 차라리 거기서 좀 쉬었다가 왔으면 죽을 때 죽더라도 좀 편하게 죽었을 것 아니냐?”
개천 옆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아비와 아들은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애야, 어디 가서 물을 좀 찾아 보거라. 갈증이 심하구나.”
지쳐서 헉헉거리던 아비가 아들에게 물을 좀 찾아보라고 했다. 고정수는 말라버린 건천으로 내려가서 물을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렸다. 잠시 헤매다가 그는 달빛 아래서 하얀 바가지 같은 것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마침 물이 담겨 있어서 그 물을 가져다가 아버지에게 주었다. 그 물을 맛있게 마신 아비는 잠시 쉬고 난 후 아들에게 업혀서 정의(旌義)골로 돌아갔다. 고정수는 다음날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기력을 찾아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정수는 감사를 표하려고 진국태를 찾아가면서 그의 아버지가 간밤에 마신 물을 찾아보니 백골에 고인 물이었고 지렁이 두 마리가 그 곳에 빠져 죽어 있었다. 고정수는 그런 더러운 물을 아버지에게 마시게 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물이 진국태가 발한 백골속의 쌍용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정수가 진국태에게 아비를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진국태는 냉랭하게 말하였다.
“세상의 이치가 이미 정해졌으니 인연이 있어서 네 아비가 산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졌거늘......”
고정수는 지난번에 진국태를 원망했던 것을 떠올리고 부끄러워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보리쌀주머니를 내려놓고 황급히 물러갔다.  진국태가 워낙 용하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고 모두가 완쾌되어 돌아갔으나 진국태는 항상 가난하게 살았다.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으나 거의 치료비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갔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진국태는 여유가 없었지만 백마를 한 마리 구해서 타고 다녔다. 환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급하게 가봐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겼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는 의성(醫星)이 비추기 때문에 예로부터 의술에 능한 사람이 많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당시에 진국태는 조선에서 가장 빛나는 별과 같은 명의였다. 진국태가 간혹 병을 치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풍습과 관습 때문이었다. 특히 유교문화 때문에 여인을 치료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번은 진국태가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에서 어깨뼈가 탈골된 처녀를 치료해야 했는데 결혼하지 않은 여자아이의 몸에 손을 댈 수도 없고 손을 대지 않고 치료를 할 방도도 없어서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처녀의 몸에 손을 댈 수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허 참, 이걸 어쩐다.”
진국태가 난감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문일이라는 목동이 그를 비웃었다.
“천하의 진국태도 별 수 없구먼!”
이 말을 듣고 진국태는 화가 치밀어 눈썹을 움찔거렸으나 이내 마음의 평정을 찾고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네게 좋은 방도가 있느냐?”
이문일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아무렴 그런 쉬운 문제에 방도가 없겠습니까. 저 처녀에게 속에 아무 것도 입히지 말고 치마만 입혀 마당으로 내 보내 주시죠.”
건방진 태도로 이죽거리며 말하는 것을 듣고 처녀의 삼촌이 작대기를 치켜들었다.
“이놈이 다리가 부러지고 싶어서 어른 앞에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진국태는 손을 내밀어 처녀의 삼촌을 제지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문일의 말대로 하도록 시켰다. 사람들은 이문일이 못마땅했으나 진국태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뼈가 탈골된 처녀는 고통을 참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방에서 나와  마당 가운데에 내려섰다. 엉거주춤 불안하게 서 있는 처녀에게 이문일이 갑자기 달려드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는 치마를 확 걷어 올리려고 하였다.
“아..악!”
처녀는 비명을 질렀고 둘러섰던 사람들은 모두들 이문일이가 실성한 줄로 생각했으며 특히 그녀의 삼촌은 작대기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이문일을 힘껏 내리쳤다. 이문일이 날렵하게 피하지 못했다면 등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한바탕 소동을 벌리는 소란한 가운데에 진국태만이 냉정한 모습으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녀는 너무나 놀라서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주저앉으며 치마를 끌어 내렸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실성한 이문일을 걷어차려고 할 때였다.
“잠깐 . 아픈 사람이 치료가 되었으니 모두들 진정하시오.”
진국태의 외침에 사람들이 처녀를 돌아보자 그녀가 일어나서 총총히 부끄러운 듯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문일은 처녀의 치마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처녀가 놀라서 팔을 내리면서 탈골된 뼈가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