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의선(醫仙) 2-
“자 이제 다리를 붙이고 바로 서 보게.”
김수길은 다리를 붙이고 서 보았다. 놀랍게도 빈틈이 없이 싹 달라붙는 것이었다.
“자네의 몸에 있는 모든 병이 일시에 사라졌네.”
김수길은 뒷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에 통증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도사님, 고맙습니다. 하느님이 도사님을 보내서 저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고 건강을 찾아 주셨으니 정말 고맙습니다.”
김수길은 이언수의 손 씀씀이가 너무 놀랍고 신비하게 느껴져서 그를 도사라고 부르면서 고개를 숙였다.
“허허허. 난 도사가 아닐세. 이언수라고 하지. 고물차 몰고 다니는 도사 본 적 있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염소수염을 쓸어내렸다. 기분이 좋아진 이언수는 한가할 때 연락을 하라는 말과 함께 명함을 김수길에게 건네주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멀어져 가는 고물 승용차의 뒷모습을 김수길은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길어지고 있었다.
김수길은 평소의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과 달리 몸이 가뿐해져서 생활에 활력이 넘쳤다. 식욕이 왕성해지고 쾌활해졌다. 잊고 지내던 윤정이 생각도 가끔 났으나 그는 머리를 흔들며 그녀를 잊어야 한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군대에 간 사이에 그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는 그녀를 보지 못하였다. 그녀가 보낸 이별의 편지를 읽고 낙엽이 떨어지던 달밤에 초소에서 그는 숨죽여 울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최윤정을 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이언수가 그의 건강을 되찾아 준 후로는 부쩍 그녀 생각이 더 났다. 만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마디씩 할 때마다 이언수가 생각났다. 그는 이언수의 얼굴과 염소얼굴이 겹쳐서 떠올라서 웃음을 짓곤 했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우중충한 날씨에 대하여 투덜거리며 화물을 내리던 김창규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허리를 삐었다. 김수길은 하나뿐인 직원이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게 되어 신음소리를 내자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병원응급실로 전화를 하여 구급차를 부르려다가 지난번의 도사를 떠올리고는 이언수에게 전화를 했다. 사연을 설명하자 이언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데려오라고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언수는 김창규를 보고는 무릎을 굽히지 말고 서라고 했다. 김창규는 고통을 참으며 이상하게 생긴 노인의 지시에 따랐다. 그는 진땀을 흘리면서 간신히 서 있었다. 이언수는 천연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이 창규씨, 군대 갔다 왔나?”
“예,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제대 했습니다.”
느긋하게 질문하는 이언수에게 김창규는 죽을힘을 다해서 힘겹게 대답했다.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김창규에게 허리를 굽혀서 손을 바닥에 닿도록 하라고 시켜놓고 이언수는 태연히 이런 저런 너절한 질문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언수의 느긋한 언행을 보면서 김수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창규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이언수에게 잘못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비 같은 노인에게 잠시 현혹되었던 자신을 탓하며 이제라도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해서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돌아들 가게.”
이언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김수길은 당황하였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말하는 이언수는 눈을 내리깔고 김창규를 내려 보고 있었다. 그는 끙끙대다 이언수의 말을 듣자 벌떡 일어섰다.
“예, 고맙습니다. 이제 허리를 펼 수 있습니다. 참 신기하군요.”
김창규는 기뻐하면서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는 신기한 듯이 허리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김수길은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허리를 자연스럽게 구부리고 잡담을 하는 동안에 김창규의 허리가 치료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차가운 음성으로 이언수가 속삭이듯이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매일 아침 조금 전에 한 운동을 하게 그러면 재발을 않지. 내가 아까 자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것은 시간을 끈 것에 불과하네. 처음 보는 자네에게 무슨 관심이 있었겠나. 이러한 동작들이 몸을 치유하지만 천천히 하지 않으면 도리어 몸을 망치게 되는 법이지. 몸에서 고통이 생기는 것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으라는 신호라네. 그러므로 몸에 생기는 통증은 꼭 치료해야만 하지. 몸은 항상 스스로 치료를 하고 온전히 하려는 경향이 있네. 아까 자네가 취한 자세에 한동안 머무르면 척추가 제 자리를 잡아서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서 몸이 좋아진 거네. 인체에는 우주의 도가 함축되어있지. 전후좌우, 사방팔방으로 몸을 움직여보게 통증이 없으면 본연의 건강체지.”
김창규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에 별다른 조치 없이 몸이 완전해 진 것이 너무나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사례를 어떻게 할까요?”
김수길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질문하였다.
이언수는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만원만 놓고 가게.”
김창규와 김수길은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허둥지둥 사무실로 돌아갔다.
통조림대리점 사업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진 김수길은 고민 끝에 사업을 정리하고 이언수 노인에게서 비법을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어머니가 노발대발 화를 냈지만 김수길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다. 과일을 한 상자 사들고 낡은 양옥집으로 이언수를 찾아갔다. 좁은 정원에 정돈되지 않은 동백나무가 멋대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 아래 멋대로 자란 풀들이 우거져 있었고 거미줄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이언수는 반갑게 그를 맞이하였다.
“선생님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김수길은 무릎을 꿇고 애원하다시피 이언수에게 부탁하였다. 잠시 동안 적막이 방안을 감싸고돌았다. 이윽고 냉정한 눈빛으로 김수길을 주시하던 이언수가 허락을 했다.
“일단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가리켜 보도록 하지. 간단하면서도 미묘해서 이해가 어려워.”
“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언수는 냉랭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배운 의술은 가문의 비전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물론 내가 더욱 연구하고 다른 의술도 배웠는데 중국의 삼황(三皇)인 복희(伏羲) · 신농(神農) · 황제(黃帝)중 셋째인 황제(黃帝)가 저술한 황제내경을 익혔고 신농(神農)이 지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을 깨우쳤다. 그러나 가장 효율적이고 핵심적인 건강의 원리로는 우리 가문의 비전만한 것이 없다. 우리 선조는 1600년대 후반에 제주에서 살았던 유명한 의선의 비법을 깨우쳤다고 전해지네.”
이언수는 과거를 떠올리듯이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면서 눈을 감았다.
“진국태라는 명의가 있었는데 우리 증조부는 그의 조수였네. 증조부는 출신이 미천했어도 지혜가 있었던 모양이야. 진국태를 따라다니면서 얻어 들은 비방을 후손에게 전했던 거야. -고통이 있으면 없는 곳으로 움직이라는 것이 우리 가문이 전하는 비방이야.”
김수길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되물었다.
“대단한 문구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비방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비방을 너무 간단하여 비밀스럽게 전할 내용도 없는 것 같은데요.”
이언수는 가소로운 듯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였다.
“너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이 말에는 많은 비밀이 들어있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오른쪽이 대부분 아팠었다. 오른쪽 눈, 귀, 목, 치아, 어깨 등등 대부분의 고통이 오른쪽에 치우쳐 있었다. 내가 어디를 손봤느냐? 너의 왼쪽 장딴지와 허리를 바로 잡았다. 오른쪽이 아픈데 왼쪽으로 가서 너는 건강을 찾았다. 어찌 네가 하루아침에 이 말의 깊은 뜻을 헤아리겠느냐?”
김수길은 이언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유통이면 무통행(有痛이면 無痛行)’ 이라는 것이 대단히 심오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모양이로군요.
이언수가 다시 물었다.
“너는 진국태에 대하여 들은 것이 있느냐?”
잠시 염두를 굴리던 김수길은 진국태의 민담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 아! 생각났습니다. 여의주를 삼켜서 명의가 되었다는 사람 말이군요. 할머니께서 어릴 적에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워낙 뛰어난 의술을 가졌기에 기이한 전설이 많아. 하지만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의술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지.”
이언수는 진국태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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