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그 해 여름
권 재 효
1
그 해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웠다. 내가 남해안 지방의 작은 도시인 A읍에 머물게 된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연이었을 것이다. A읍은 풍광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요, 생기발랄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그저 퇴락하여 초라한, 어딘가 모르게 서글픔을 자아내는 듯한 도시였다. 허기야 모른다. A읍의 그런 초라하고 서글픈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았는지도.
아무튼 나는 A읍의 변두리에 방을 하나 얻었다. 6개월여에 걸친 방랑생활에 지친 탓일까? A읍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낼 작정을 했다.
내가 방을 얻은 곳은 속칭 금둥골이란 곳으로서 어항이 있는 A읍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이었다.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계단식 논, 가끔 경운기가 지나다니긴 했지만 이곳의 농토 사정으로 본다면 아직까지는 소와 쟁기가 농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골짜기 중간쯤에 5-60호 정도의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한때 세상을 휩쓸던 새마을 운동 탓으로 지붕들은 대개 울긋불긋한 스레트 지붕이었지만 드물게 옛 초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젊은 축들이 서울이나 광주 등 대도시로 떠나간 탓인지 빈방은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나는 거처를 정하자 방 속에 틀어 박혀 책을 읽거나 그도 싫증이 나면 집밖으로 나와 들길과 산길을 거닐다가 늙은 소나무 그늘에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곤 하였다.
때로는 골짜기를 벗어나 30여분쯤 걸어 읍내를 한바퀴 돈 뒤 포구로 나가서 어선들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배를 보며 나는 미당의 시 한 귀절을 중얼거렸다. 알래스카로 갈거나? 아라비아사막으로 갈거나? 진정 나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기에 이민 절차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나를 받아줄 만한 나라는 없었다. 캐나다나 오스트렐리아 같은 안정된 나라에서는 이억 원 이상의 투자이민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고급기술자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파라과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나라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 곳 역시 이 땅과 마찬가지로 지긋지긋한 군사정권이 짓누르고 있는 곳이니까. 길은 어디에나 있었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2
골짜기 안쪽에 5천 평은 족히 됨직한 넓은 풀밭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곳을 안골이라 불렀는데 주로 아이들이 소를 먹이는 곳이었다. 풀밭 조금 아래쪽에 50년씩은 됨직한 20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서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이 금둥골에서 나의 일과 중의 하나였다. 자학적이고 냉소적인 나의 마음도 조금은 밝아오는 것 같았다.
그날도 소나무 숲에 갔다가 전 날에는 보지 못하던 것을 발견하였다. 두 그루 소나무를 의지해서 작은 초막이 한 채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팔뚝 굵기의 나무 가지 몇 개와 억새풀을 엮어 만든 초막은 얼핏 보기에도 그 주인의 솜씨를 알 수 있을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초막 옆에서 한 여인이 몇 개의 돌을 이용해 만든 간이 아궁이에 마른 나무 가지로 불을 지펴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여인은 적잖게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입으로 후후 불어 불을 지피다가 얼굴을 돌렸을 때 나는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있었다. 윤곽이 또렷하고 뽀얀 얼굴이었다. 청바지에 흰색 브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도회풍으로 깔끔했고 언뜻 보았지만 교양이 있어 보였다. 이런 허술한 초막의 주인으로서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초막 밖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여인은 냄비와 그릇들을 가지고 초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후 여인은 빈 그릇들을 들고 나와 설거지를 시작하였다. 잠시 뒤 한 사내가 나와 바깥을 휘둘러보는 것이었다. 나는 줄곧 초막 쪽을 보고 있던 터였으므로 그가 주위를 둘러볼 때 잠시 그와 얼굴을 마주쳤지만 서로 외면하고 말았다. 사내는 초막 밖에서 마을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는 척했지만 실은 그의 외양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수염이 꺼칠꺼칠하게 나서 나이가 들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헐렁한 바지와 헐렁한 긴 남방을 입고 있었는데 노동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허름한 차림이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몸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괘념치 않는다는 듯이 나와 가까운 곳의 소나무 아래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잠시 후 여인이 사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들이 어떤 연유로 이 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만은 한 쌍의 산비둘기처럼 평화롭고 정겨워 보였다.
대체 저들은 어떤 까닭으로 이 곳에 오게 된 것일까? 몹쓸 병에 걸려 기도라도 하러 온 것일까? 부모들이 결혼을 반대하여 사랑의 도피행각이라도 벌이고 있단 말인가? 나는 처음 보는 남녀에 대해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설핏 선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꿈속에서 혜영이가 가을 코스모스처럼 웃고 있었다. 며칠 전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빨리 시집을 가라고 집에서 여간 성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약도 없이 떠도는 사람을 무얼 믿고 기다리느냐고 다구쳐 올 때는 자신도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방황도 1년이 넘었다. 혜영은 편지 끝에 이렇게 적고 있었다. ‘당신이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그 날이 저에게도 구원의 날이 될 거예요.’해거름 녘에야 나는 마을로 내려왔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내가 사는 윤호네 집 마당에는 모닥불이 피워졌다. 모닥불 옆에 멍석이 깔아지고 몇몇 동네 남자들이 모여 앉자 막걸리가 나왔다. 안주는 열무김치가 고작이었지만 누구도 부실한 안주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여름밤의 더위와 모기를 피해 멍석에 앉았다.
남자들은 오십대 이상이 대부분으로 마흔 다섯인 윤호 아버지가 제일 젊은 편이었다. 그들은 농삿일의 고됨과 오른 비료 값, 농약 값을 이야기하였다. 떨어진 소 값도 화제에 올렸다. 어찌 그들에겐들 조그만 기쁨이 없으랴! 대처로 나간 자식이 좋은 성적을 올려 장학금을 받았다는 창수 아범은 연신 술 한 잔 사라는 이웃들의 요구를 싫지 않게 듣고 있었다.
그들은 안골의 젊은 남녀에 대해서도 차마 지나쳐 버리기엔 아까운 화제라는 듯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들어본께 이십여 년 전에 이곳을 떠난 홍과수댁 아들이라 하드마. 즈그 아부지 묘가 금둥산 너머에 있지 아마.”
“홍과수댁은 광주에서 식당 일을 하며 아들을 대학까지 시켰는디, 글시, 그 아들이 허구한 날 데모를 해대는 통에 감옥소를 밥먹듯 했다지 먼가. 아들이 이 모양인께 홍과수댁은 마음고생으로 시름시름 앓다 끝내 숨을 거뒀다는군. 모르긴 해도 홧병일 것이여!”
“망할눔에 자슥, 즈그 엄매를 생각해서라도 고렇고롬 빨갱이짓을 해선 안돼제.”
영희 아범이 흥분을 하며 말했다.
“그라께 넘 많이 배운 것도 탈이여! 즈그 엄매를 봐서라도 그렇지, 빨갱이 짓이 뭐여?”
상식 아범이 맞장구를 쳤다.
“에끼 이 사람, 빨갱이는 먼 빨갱이여? 민주화 투쟁이지. 우리 같은 농투성이가 멀 알겄는가만 작년에 광주사탠가 먼가만 해도 그라제. 니기미 군인들이 꼴리는대로 분탕질 하는데 벨있는 놈 치고 그대로 있을 놈이 어디 있당가?”
창수 아범이 말했다. 창수 아범은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창수로부터 지난 겨울 들은 얘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창수가 시위에 휩쓸리지 않을까 적잖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긴 정권을 뺏은 놈들은 역적이제라. 그런 놈들을 반대하여 일어서는 건 그 머시라 하드라? 아, 열사지라 열사.”
윤호 아버지가 말했다. 안골의 젊은이가 빨갱인지 아닌지 그들로서는 판단하기가 난감했다. 이 곳은 지리산과 가까운 곳이다. 삼십여 년 전 빨갱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던가. 마을엔 아직도 그 때의 공포와 아픔들이 잔설처럼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들은 빨갱이란 말만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움추러 들었다.
“그렇고롬 젊은 친구가 대단하다믄 자네 집 바깥채라도 빌려주제 그라요.”
영희 아범이 좀 못마땅한 듯 창수 아범에게 말했다.
“에끼, 이 사람. 난 안 할라네. 형사들이라도 들락날락하믄 그 일을 어찌케 감당한당가.”
창수 아범은 손을 저었다. 윤호 어머니가 헌 바지를 꿰매고 있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녁답에 빨래터에서 들은 얘긴데 그 남자 아편쟁이라 했으라야.”
3
나는 안골에 갈 때마다 초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들도 처음엔 나를 경계하는 듯 하더니 매일처럼 안골에 오는 나를 차츰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는 경우에도 처음과 같이 재빨리 외면해버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서 강한 흥미를 느끼듯 그들 또한 나에 대해서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서로가 말을 건넬 기회는 없었다.
안골은 소몰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학교가 파한 오후가 되면 아이들은 소들을 안골에 방목하고는 저희들끼리 병정놀이나 공차기, 씨름 등을 하면서 놀았다. 그 날 오후도 아이들은 소를 방목한 채 놀이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갑자기 소 두 마리가 내닫기 시작했다. 뒤이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초막 가까이 여인이 나뒹굴어 졌다. 초막 안에서 사내가 뛰어나온 것과 내가 여인 쪽으로 달려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뒤이어 소먹이 아이들이 몰려왔고 여자를 넘어뜨린 두 마리의 소는 저 편으로 내닫고 있었다.
여인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찌그러진 양동이에서 쏟아진 물이 질펀했다. 사내가 여인을 안아 일으키자 신음 소리를 내었다. 나는 여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 갸름하면서도 윤곽이 뚜렷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서걱거리는 가을날처럼 슬픔이 번져오는 것은 나의 선입감 탓이었을까?
“병원에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처음으로 사내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괜찮은 것 같소.”
그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사내는 여인을 부축하여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내를 대신하여 둘러선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너희들 소 땜에 사람이 다치고 물을 쏟았으니 가서 너희들이 물을 길어 와라.”
나의 말은 그다지 위엄을 발휘한 것 같진 않다. 아무도 양동이를 드는 아이들이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입술을 비쭉이며 못 마땅해 했다. '잘못한 건 조심하지 않은 아줌마인데 왜 우리가 물을 길어 와요?’ 그들의 눈빛이 강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어찌 아이들의 뻔뻔스러움만 탓할 수 있으랴.
유신정권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종말을 맞은 후 어느 때보다 민주화의 가능성이 높았던 건 사실이었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길고 긴 군사정권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민주화가 실현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거스러지는 못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 민주화투쟁의 양대 산맥이라 일컫는 양김 진영에서는 차기 정부에서 대권을 거머쥐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고기는 벌써 잡아 놓았는데 누가 그것을 차지하느냐 그들은 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대의를 놓쳐버린 그들은 참으로 뻔뻔스런 사람들이었다.
민주진영측의 이런 분열은 군부세력에게 역습의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1980년 12월 12일, 기회를 노리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그 일당은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권력을 잡게 된다. 이른바 안개 정국의 시작이다. 누구도 의심치 않던 도도한 흐름을 순식간에 역류시켜버린 그들은 또 얼마나 뻔뻔스런 자들인가? 뻔번스러울수록 큰일을 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의 작은 뻔뻔스러움을 탓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내가 나왔다.
“야, 너희들 가서 소나 먹여라. 별일 아니니까.”
그는 둘러섰던 아이들을 돌려보내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싱긋이 웃었다.
“걱정 마시오. 놀라서 넘어진 것뿐이니까. 하루쯤 지나면 괜찮을 거요.”
“다행입니다.”
나는 더 할말이 없어 순간 어색했다. 조금 전의 내 자리로 돌아갈 까 하는데 이런 내 기분을 알아챘는지 사내가 말했다.
“형씨, 누추하지만 말이오. 이 초막 앞에라도 앉아 우리 얘기나 나눕시다. 우린 어차피 구 면이 아니오? 안 그렇소? 헛, 헛, 헛”
그의 웃음소리는 유난히 컸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의 웃음소리가 사라져간 봉우리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와 나는 초막 가까이 나란히 앉았다. 잔디의 부드러운 감촉이 까실까실 하면서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 난 보다시피 이 초막의 주인 김국태란 사람이오.”
“아, 네. 난 윤동식이란 사람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참 부럽습니다. 젊은 때의 방랑은 인생의 약이 된다 하잖소?”
“글쎄, 올시다. 난 내 팔자가 좋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말이지요. 뭐,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지만 도무지 세상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말이지요.”
“세상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만 해도 크나큰 행복이오.”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면 내가 사춘기 소년처럼 꽤 사치를 누리고 있는 듯 하군요. 그건 그렇고 형씨가 이 골짜기에 오게 된 연유를 알고 싶군요. 더구나 아주머니까지 함께 이곳에 오게 된 연유가......”
“헛헛헛, 윤형이 나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할 줄 알았소. 사실 나도 말이오. 윤형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오. 처음엔 윤형이 혹 기관원이 아닌가 지례 짐작해보기도 했소. 그러다가 얼마가 지난 후 난 윤형에 대해 동류의식 비슷한 걸 느꼈소. 윤형과 난 공통점이 있거든. 둘 다 세상을 피해 산다는 점에서 말이오. 윤형, 담배 있으면 한 대 주시오.”
나는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세상을 피해 산다? 하지만 속단하진 마시지요. 김형은 아직 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잖소?”
“헛헛헛, 물론 난 윤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오. 하지만 난 육감이란 게 무척 발달되어 있거든. 틀림없이 윤형은 나와 동류일게요. 실패한 지식인이란 점에서, 헛헛헛!”
나는 지나치게 그의 단정적인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허한 웃음을 한 번 더 웃고는 그는 내게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윤형, 난 사실 끝난 인간이외다. 나의 앙가주망이 끝난 것처럼.”
“앙가주망이 끝났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나의 삶을 마감할 때가 되었단 말이지요.”
그의 어투는 너무도 담담했다. 삶의 마감, 그것은 필경 죽음일진대 그 죽음이란 것을 저렇게도 쉽게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 죽음의 유혹을 강렬히 느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요 일 년여의 삶을 돌아보면 그것이 과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는바 아니다. 나는 삶을 의욕하지 않았다. 무언가 모를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다가도 그것은 이내 공허한 바람처럼 체념으로 바뀌었고, 무기력한 스스로에 대해 화를 내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고작이었다.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린 채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나는 그 그물을 찢겠다는 의지를 상실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상대방의 너무도 거대한 힘에 압도되어 나는 나의 의지를 모조리 상실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의지를 상실하고 있다면 나 역시 사실상 삶을 마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형은 너무 빨리 단념하고 있는 게 아닌지요? 아직 젊은데 그 앙가주망의 기회는 앞으 로도 있는 게 아니겠소?”
나는 국태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실상 그 말은 공허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다. 나 자신 안개 속에 갇혀 있었고 장래에 대한 어떤 희망이나 신념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지쳤소이다. 몸과 마음도. 난 한 때 역사의 진보를 믿었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나의 신념에 이젠 자신이 없어졌어요.”
그는 후-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는 내뿜었다. 내가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역사의 진보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크게 보면 세계역사가 그렇고, 또 좁게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해방 후 역사조차도 자꾸 뒷걸음 쳐가고 있지 않습니까? 먼젓번의 길고 긴 군사정권과 또 이번의 군사정권, 생각만 해도 숨통이 콱콱 막혀와요. 이런 세상에서 젊은 놈이 쐬주병이나 작살내는 것 말고 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국태와 나는 제법 의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절망한 사나이로서, 세상에 패배한 사나이로서 그 어떤 공감대가 끈끈히 배어오는 것이었다. 소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아닌 게 아니라 쓴 소주라도 대작하면서 얘기를 나눈다면 한결 가슴이 후련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국태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마을에 떠도는 소문에는 김형의 별이 적잖다던데? 혹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후후후, 맞쇠다. 나 별이 네 개요. 빨갱이라 쑤군거리진 않읍디까?”
그는 이마에 별을 그리며 말했다. 순간 지금껏 찌든 듯 하던 그의 얼굴이 순진한 악동의 그것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호, 대단하십니다. 젊으신 나이에 별을 네 개씩이나 달구. 김형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영원할 것 같던 유신정권도 무너진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용기는 엄두도 못 낼 거요.”
나는 솔직히 말해서 김국태란 사나이가 외경스러워 보였다. 국태와 나는 비슷한 나이로서 같은 시대 상황을 고뇌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지만 비교적 격동의 외곽지대라 할 수 있는 제주에서 성장하고 대학생활을 보낸 나로서는 데모의 경험이 없을뿐더러 더구나 그런 일로 감방에 드나드는 일은 도무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만큼 당시의 제주도는 아직 독재에 맞서 투쟁할 조직적인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와 나의 친구들이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유신정권에 분노하고 있었기에 그룹을 만들어 비록 탁상 위에서의 열변이긴 하였지만 유신정권과 박통을 도마 위에 올려놓곤 여지없이 난도질함으로써 화풀이를 했다. 때로는 이른바 반체제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성사직전에서 실패하곤 하였다. 초청인사가 기관의 관여로 제주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거나 인쇄해둔 포스터나 팜프롓 등이 압수당하거나 장소사용이 당국에 의해 금지되어 참석했던 사람들이 되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의 분풀이 대상은 어쩔 수 없이 죄없는 쐬주였다. 지금은 없어 졌지만 중앙로 옆 골목에 있던 ‘길미’라는 목로주점은 우리들의 치기어린 주정과 울분을 고스란히 받아주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특히 눈이 커다랗던 그 집 딸 영희란 처녀도.
나의 20대가 비교적 평탄 한 것임에 비하여 그의 말대로라면 저항과 수난으로 점철되었을 국태의 격렬한 삶은 나를 압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꾸밈없이 빛나는 해말간 그의 얼굴에서, 수난을 상징하는 듯, 고뇌어린 그의 얼굴에서, 그의 말대로라면 삶을 마감한 듯한 쓸쓸한 얼굴에서 나는 이 시대의 성자 한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면 지나친 착각일까?
그와 나는 오랜 구면이기라도 한 것처럼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내가 그에게 압도되어 있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주로 얘기를 하는 쪽은 국태였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국태의 박식함과 깊은 통찰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의 무궁무진한 화제에 비하면 나의 이야기는 마치 신변잡담처럼 초라해 주눅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국태는 대학을 2학년까지 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2학년 때부터 유신반대데모에 앞장섰고, 당연히 수배되어 도피생활을 했다. 당국에 잡혀 징역살이를 했고 형만기로 풀려나와 또 데모를 하다가 구속되고……
가장 최근에 그가 구속된 것은 한국현대사에 있어 최대의 비극중의 하나라 일컫는 광주항쟁 당시에 시민군으로서 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 생포된 뒤라 했다. 그는 1년쯤 옥살이를 하다가 병보석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런 퇴락한 시골 골짜기에서 한국 현대사의 현장 증인을 만났다는 것은 실상 우연의 결과였겠지만 어쩌면 나의 생애에 있어서 두고두고 기억될 사건인지 모른다.
뉘엿뉘엿 해가 서산을 기웃거릴 때 나는 국태와 헤어져 마을로 내려왔다.
국태와 얘기 중 나는 과연 그가 마을 사람들의 얘기처럼 아편을 맞고 있을까? 맞고 있다면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 목구멍이 간지러웠지만 결국 묻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국태에게 있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치명적인 약점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며 궁금한 마음을 꽉 눌렀다.
4
숨이 막혀왔다. 얼굴에 복면을 한 사나이가 뒤로 다가와서는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지를 뒤틀며 발악할수록 우악스런 손엔 더욱더 힘이 가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의식이 몽롱해옴을 느꼈다. '이제 나는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서른한 살의 삶이 마감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희미한 나의 의식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른하나의 내가 죽어 가야할 이유가 도무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온 힘을 팔꿈치에 집중시키고는 사나이의 명치끝을 힘껏 쳤다. 사나이는 나의 기습에 뒤로 벌렁 넘어졌고 나의 호흡은 비로소 자유로와 졌다.
눈을 뜨자 나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또 악몽을 꾼 것이다. 직장을 쫓겨난 뒤로 나는 종종 악몽에 시달려 왔다. 검은 복면의 사나이가 나타나서는 나의 목을 조르곤 했던 것이다. 그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음산한 웃음을 웃으며 나의 목을 조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꿈을 깨었고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곤 했다.
이러한 악몽은 필경 피해망상에서 오는 결과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1980년 이 땅의 역사가 내게 남긴 하나의 선물인지도 몰랐다. 소위 서울의 봄이 참혹한 살육의 잔치와 함께 물러가고 다시 이 땅에 긴긴 겨울공화국이 시작되었을 때, 맨 처음 철퇴가 내려쳐진 곳은 언론사와 공직사회였다.
나는 여름철 보도특집 녹화를 마치고 일주일간의 하계휴가를 얻어 집에서 느긋이 쉬고 있었다. 저녁때 김호근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표정은 자못 긴장되어 있었다.
“윤형,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요. 오늘 사원 모두가 일제히 사표를 제출했어요. 아무래도 몇 사람 다칠 것 같아요.”
긴장된 김기자와는 달리 나는 한결 느긋하였다. 그것은 며칠간의 휴가로 감각이 무디어진 탓인지도 몰랐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김기자에게 말했다.
“어차피 그 양반들 각본대로 해나가는 것 아니겠소? 어디 두고 봅시다. 언론계 정화를 얼마나 깨끗이 잘 하는지. 모두다 사표를 제출했다니 김기자는 내 것도 받아오라는 부장님의 특사시겠지요?”
김호근 기자는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 모두 다 사표를 낸 터이니, 난 망명정부의 특사외다.”
김기자와 나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고 윤형은 어떡할 테요? 회사 안에선 로비활동들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글쎄요, 모가지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로비활동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3년짜리 햇병아리들이야 어디 마땅히 선댈 곳도 없잖소?”
“지금 회사에서 가장 맘조리는 사람이 K부장과 H부장일겁니다. K부장은 여러 곳에서 계엄사로 투서가 들어와 있다는군요. H부장도 큼직한 이권에 개입되어 있다는 소문이구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분들은 우리 언론계 종사자들의 위신을 떨어뜨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요.”
김호근 기자는 나의 사표서를 받아들고는 나갔다.
휴가기간이 끝나 회사로 출근했을 때 사무실 분위기는 이상하게 썰렁했었다. 평소 때 같았으면 쾌활하게 농담들을 나누고 있을 텐데 초상집처럼 사무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일 주일 만에 나를 보는데도 그저 간단히 목례만 할 뿐 나의 시선을 모두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어색하게 서있자 김호근 기자가 나를 복도로 불렀다. 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기자, 어제 저녁에 정화대상자가 발표되었어요. 각부에 한 사람씩……”
“우리 부에선 내가 희생양이 되었단 이 말씀이군요.”
“정화위원회서 그렇게 결정 했다는군요…… 진짜 정화되어야 할 사람들이 정화위원이돠었으니…….”
실상 나는 난감했다. 며칠 전 김호근 기자가 찾아왔을 때 나는 호기롭게 껄껄거리지 않았던가. 그 때는 설마 내가 정화대상자에 포함되겠느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화란 무엇인가? 묵은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아닌가? 이제 3년을 조금 넘긴 햇병아리 기자에게 정화란 이름으로 목을 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희생자가 자신임을 인지했을 때 나는 며칠 전의 호기로움은 깡그리 잃고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부장에게로 갔다. 부장은 얼굴을 내리깔고 있다가 마지못해 나를 보았다.
“내가 정화대상자로서 파면되었다는데 대체 내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윤기자에게는 면목이 없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요. 명색이 내가 부장이지만 부원들을 지켜줄 힘도 없고 나의 이 자리가 가시방석 같소. 내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리다.”
계엄사에서 몇 사람 본보기로 자르라는 통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내에 정화위원회가 구성되고, 일제히 사직원을 받고……. 부서별로 공평하게 한사람씩 희생시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우리 부에선 내가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데, 그것은 내가 결혼을 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양가족이 없으니 어려움이 적지 않겠는가. 또 나이가 젊으니 새로 출발하기도 좋지 않겠는가. 신군부가 언론 정화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추진한 사업이 이 지경이라면 그것은 한 도막의 블랙코메디에도 미치지 못할 일이었다. 부장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붙였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잘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전에 본부의 서기자를 만났던 일도 쬐끔은 고려가 되었다오.”
한번 깬 잠은 좀처럼 다시 들기가 어려웠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있는 중에 여인의 화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저 좀 도와 주셔요. 아주머니, 아주머니!”
여인은 절박하게 윤호 어머니를 깨우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바지를 꿰어 입고 위에는 런닝셔츠인채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어둠 속에서 여인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희미한 윤곽이었지만 나는 여인이 국태의 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아니, 아주머니가 이 밤에 어떻게.........”
"윤선생님이셨군요. 윤선생님, 죄송하지만 저 좀 숨겨주세요. 얼른 숨겨주셔야 해요.”
“..............”
윤호 어머니와 윤호 아버지가 마당으로 뛰어 나왔다. 국태 처가 여전히 다급한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저 좀 숨겨주세요. 남편이 절 죽이려 해요!”
나도 말을 거들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윤호 방으로 숨게 하지요. 윤호는 나와 함께 자지요,”
나는 여인을 윤호의 방으로 떠밀었다. 윤호 어머니가 여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바깥 동정을 살폈다. 안골 쪽에서 국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을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년, 어디 갔어? 당장 죽이고 말테다 이년!”
그 소리는 술주정 같기도 했고 미친 사람의 발작 같기도 했다.
어둔 방에서 국태 처와 윤호 어머니, 그리고 나는 자못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국태의 고함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무겁고 답답한 침묵이 어둠 속에서 흘렀다. 어둠 속에 갇혀 있다는 그 느낌이 그 밤의 일을 떠오르게 했다.
그 밤 나는 TV주조정실 당직이었다. TV9시 뉴스에서는 광주에 관한 얘기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계엄사령관이 화면에 나타나 '모든 상황은 정상화되어가고 있으니 유언비어에 현혹되지말라’는 경고성 발언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젊은 엔지니어 하나가 말했다.
“저 유언비어라는 것이 대개는 진실일거야.”
다른 엔지니어가 되받아 말했다.
“두 말 하면 잔소리지. 박통 때도 떠돌던 소문이 박통 사망 후 모두 진실로 밝혀졌잖아.”
“감독님, 우리 일본 뉴스 한번 봅시다.”
처음의 엔지니어가 기술감독에게 말하자 그는 싱긋 웃더니 스위치 하나를 눌렀다. 화면 하나에 일본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쑈-프로그램이 끝나자 그 곳에서도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날의 톱뉴스는 한국의 광주사태에 관해서였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화면은 충격적이었다. 건물들이 불타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팬티만 입은 채 길바닥에 꿇어앉혀 있었다. 더러는 굴비처럼 엮어져 트럭에 태워지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들이 보였다. 역시 피투성이인 젊은이 하나가 시민들에 의하여 부축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사상자만도 몇 백이 된다누먼.”
일본어를 조금 알아듣는 기술감독이 혀를 차며 말했다. 모두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무도 엄청난 사건의 중압감이 모두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외국의 방송을 통해서 확인한다는 것도 묘한 아이러니였다. 외부와 일체 차단된 곳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을 광주 사람들, 그 어둠, 공포, 그리고 절망감.......나는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국태 처는 조금 마음이 진정되자 윤호 어머니와 내게 다시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아니 색시, 이렇게 참한 분이 어찌게 저런 무지막지한 화상과 살게 되었소? 당장 보따리를 싸야 쓰것소”
국태 처가 어둠 속에서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저분이 늘 저러는 게 아니어요. 가끔 발작을 하지만 그 증세가 가라앉으면 이내 조용해져요. 그땐 마치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순해요. 저 분이 저렇게 된 건 광주사태 후에 잡혀가서 너무 매를 맞아 그런 거예요.”
그녀의 눈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을 어둠 속에서도 나는 볼 수 있었다.
“소문에 감옥에 갔다 하드마 그런 일이 있었구만이라우. 색시는 참 드물게 보는 열녀 같수. 웬만한 사람 같으면 도망가고 말았을 건디.”
윤호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가만 쥐어 주었다. 국태 처는 윤호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오래 참아왔던 울음이 드디어 터졌다.
“아주머니, 우리 저이를 두고 마을 분들이 아편쟁이라 쑤군거리는 줄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감옥에서 나온 후 오죽하면 아편을 시작했겠어요?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졌어요. 살 곳이 없어 결국 이곳까지 왔으니 제발 저이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이해해 주세요. 이 동네서도 쫓겨나면 우린 갈 곳이 없어요. 오늘밤 소란을 피웠지만 아주머니가 마을 분들께 잘 말씀드려주세요.”
그녀는 말끝에 더욱 흐느꼈고 윤호 어머니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나는 슬거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국태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만 같아 고통스러웠다. 나 역시 역사의 피해자 중의 한사람이라 생각해 왔지만 나의 피해의식이란 얼마나 사치스런 것이냐? 나는 피해의식을 과장하여 허무적 생활을 즐겨온 것은 아니었을까?
서울에 있는 서창식 기자가 제주로 내려와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는 우리보다 몇 년 선배로서 내가 서울로 출장을 가면 술을 사주며 부담 없이 대해주던 사이였다. 나는 김호근 기자와 둘이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서울의 돌아가는 상황을 말해 주었다. 그의 얘긴 즉 서울에는 ‘민주화추진 기자 협의회’가 조직 중에 있는데 이곳 제주에도 조직을 했으면 했다. 그 일을 젊은 축에서 맡아줄 수 없느냐며 사실상 나와 김호근 기자에게 동참을 요구했다.
김호근 기자와 나는 즉답을 피했다. 사실 그 일은 쉽게 예스라고 말하기엔 사안이 중대했었다. 혼자서만 결단을 내리면 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동의가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으시시한 계엄시기에 과연 동참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와 가장 친하다는 김호근 기자조차 몸을 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서기자는 나에게 ‘민주화추진 기자 협의회’ 강령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거나하게 취해 신제주의 밤거리를 배회했다. 계엄하이긴 했지만 제주도는 예외였던 만큼 아직 숨 쉴 공간이 남아 있었다.
유신정권 하에서 실상 모든 방송은 어용이었다. 방송 뿐 아니라 신문도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용이긴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당시 모든 언론인들은 유신정권에 일조했다고 보는 편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언론인들은 이런 자신의 처신에 대해서 일종의 콤프렉스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반발로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조속한 계엄해제와 민주화 추진 일정’을 제시하라는 소위 시국선언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조용하기만 했다. 나는 서기자가 준 강령을 안주머니에 넣고는 차일피일 하다가 단 한번의 행동도 취하지 못한 체 시기를 놓쳐버렸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전에 서기자와 접촉한 것도 쬐끔은 고려되었다오,”
해직을 통보받던 날 부장이 내게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거렸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한 시대의 블랙코메디. 나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신중히 대처한다는 명분하에 끝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나의 비겁함이. 그리고 화가 난다. 의미 없이 잘린 내 모가지에 대하여. 나의 모가지는 신성한 민주화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 아니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시쳇말로 재수없이 잘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5
간밤에 국태가 일으킨 소동으로 마을 사람들은 대개가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아침식사 후 몇몇 남자들이 이장인 윤호 아버지를 찾아왔다.
“여보게 이장, 간밤에 무슨 일이당가?”
“안골사람 병이 도진 모양이여라우.”
“병이라니 무슨 병 말인가?”
“그 친구 아편을 한다는 말이 있잖았으라? 약기운이 떨어진게 간밤에 마누랄 죽이겠다고 야단을 지긴 모양이지라.”
“그런 위험한 친구가 우리 마을에 있으면 쓰겄능가?”
“글쎄라, 현재로선 머 뾰족한 방법이 있어야지라. 간밤에 마누라가 우리집에 와서 하는 얘 길 들어본께 불쌍도 해뵈고라. 광주사태 때 시민군하다 잡혀갔는디 고문을 당해 몸이 다 죽게 되니 감옥에서 내보내준 모양이라야. 그 고통 잊을라고 아편을 시작했담시요.”
윤호 아버지의 말에 몰려왔던 사람들도 마음을 누그려뜨렸다.
“그 일로 고생한 사람이믄 우리가 참아야지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광주사태에 관한 만큼은 어떤 공통의 피해의식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안골로 올라갔다. 초막 옆에서 불을 지피던 국태처가 나를 보고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밝은 아침에 보니 그녀의 눈언저리가 푸르뎅뎅하게 멍들어 있었다. 국태에게 폭행당한 흔적이리라. 저런 멍은 얼굴뿐 아니라 몸 구석구석에 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막 옆에 깨어진 사기그릇조각들이 치워지지 않은 채로 흩어져 있었다.
“김형은 좀 어떠세요?”
“지금은 곤히 주무시고 계세요. 간밤에 어디론가 나가서 억수로 술을 마셨나봐요. 저이는 끝내 삶을 포기하려는 걸까요?”
그녀의 얼굴이 영양실조와 걱정으로 몹시 초췌하게 보였다. 그녀는 음식이 다 되었는지 불지피기를 그만 두었다. 초막 옆에서 물통을 들고 나왔다.
“마을에 가서 물 좀 길어 올려구요.”
“김형이 궁금해서 올라왔는데 곤히 잔다니, 함께 내려갑시다.”
그녀와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어 마을로 내려갔다. 안골에서 마을 맨 첫 번째 집인 윤호네 집은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김형은 정말 마약을 끊을 수 없는 거요?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치유가 가능하다던데?”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제가 알고 있는 예전의 그이라면 능히 치유하고도 남을 거예요. 그이는 굳센 의지를 가졌거든요. 하지만 감옥에서 나온 후로 그인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 버렸어요. 그는 마치 스스로를 망가뜨리기로 작심한 사람 같아요.”
국태는 감옥에서 나온 후로 이른바 운동권과 일체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자신은 세상에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몸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자학증세가 점점 심해질수록 마약에 탐닉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그는 결국 중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국태의 이런 절망감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군부의 거대한 폭력에 의해 민주주의의 싹이 잘려나간 데 대한 절망감 때문일까? 패배감, 무기력,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죽음에의 달콤한 유혹, 이런 것이 당시 의식있는 젊은이들의 심리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태의 절망의 배경에는 좀더 깊은 다른 연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닌 김형이 그렇게 자학하는 이유가 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으세요?”
“글쎄요,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메꾸기 위하여 내가 다시 물었다.
“김형과는 언제 만나셨어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먼 기억의 저편을 더듬고 있었다.
“벌써 십년 세월이 흐른 것 같네요. 그이를 첨 만난건 제가 열일곱 때였어요. 난 공장에 다녔었고 그인 야학 선생님이셨죠. 대학생으로서 야학에 나와 근로청소년들을 지도하였는데 그는 무척 자상하고 공부도 재미있게 잘 가르쳐주었어요.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제일이었죠.”
그녀의 가슴속에 아리한 그리움 한 자락이 자리잡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그때부터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만의 가슴에 묻어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에겐 따르는 여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몇 번 감옥을 들락거리는 통에 모두 떠나버리고, 그의 마지막 옥바라지는 그녀의 차지였다고 한다. 옥에 있는 그를 면회가고 기다리던 그 때가 생각해보면 그녀에겐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했다. 옥에서 나온 국태를 그녀는 그녀의 자취방에 데리고 왔다. 그와의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심신이 탈진한 그를 위해 보약을 달여 주었지만 그는 먹는 시늉만 할뿐 잘 먹지 않았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예전의 총명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술에 취해오기가 일쑤였다. 이때 마약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국태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갔다. 국태의 엉성한 초막은 그 여름이 가도록 몇 번이나 부셔졌다간 다시 지어졌다. 그의 처는 이틀이 멀다하고 폭행을 당해 마을로 피신을 오곤 했다.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국태를 동정했지만 그의 행패가 심해지자 그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윤호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도 골치가 아픈지 몇 가지 주의만을 주고는 훈방하기 일쑤였다. 경찰에 갔다 온 날이면 국태는 온 마을에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제 국태는 이 마을의 환난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몰아내는 방법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국태를 행려자 수용시설에 보내는 일이 읍사무소측과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중이었다.
국태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영양실조로 바싹 마른 그의 몸은 떼국물이 흘렀다. 그의 옆에만 가면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국태 처의 배가 제법 봉긋이 솟아오른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혀를 찼다. 키우지도 못할 아기를 낳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아낙들은 지우라고 권했다. 마을 아낙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국태 처에게 반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다. 저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남자 곁을 떠나지 않는걸 보니 열녀 났다고 빈정거리기 일쑤였다.
국태는 정말 구제불능일까? 저렇게 폐인이 되어 삶을 마감한다면 그의 지금까지의 활동이 너무나 무의미하지 않은가? 나는 오랜만에 그를 한 번 만나보기로 하였다. 음료수 두 병과 빵을 준비해서 안골로 올라갔다. 생각 같아서는 오징어라도 뜯으며 소주라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를 자극할까 보아 술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초막 밖에서 그를 불렀다. 그가 부시시한 얼굴로 기어 나왔다. 얼굴이 검붉은 것이 영락없이 알콜에 절은 모습이었다.
“김형, 오랜만이오.”
“사이비 기자께서 오셨군. 여긴 별로 취재할 것이 없을 텐데.”
그의 말은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에이 여보슈,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에게 그 무슨 말버릇이오? 나도 머지않아 이 곳을 떠 날 참이라 어디 김형 얼굴이나 한 번 더 봐둡시다 그려.”
“많이 봐 두슈.”
그의 말이 너무도 퉁명스러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아주머닌 안계시오?”
“그 쌍년, 서방질하러 갔을 게요.”
“그 무슨 말씀이요? 아주머니가 얼마나 김형을 끔직히 생각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오? 아주머닐 생각해서라도 김형이 마음을 잡아야지 않겠소?”
“일없소이다. 난 그 쌍년 꼴도 보기 싫소. 매일 두들겨 패도 찰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으니 미치겠소. 어디 서방이나 하나 꿰차고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소. 제대로 먹이고 입히기만 하면 인물은 그다지 빠지지 않으니 어디 윤형이 몇 달간 데리고 놀아도 괘념치 않겠소.”
그의 빈정거림 때문에 대화는 불가능하였다. 별 수 없이 가져간 음료수를 그에게 한잔 따라주고 나도 마셨다. 하늘에는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국태도 나도 그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 와서 나는 일어서고 말았다.
그 날 밤 국태 처가 또 윤호네 집으로 피신해왔다. 그녀를 일단 내 방으로 숨겨놓고 윤호 어머니와 나는 그녀를 설득했다.
“이제는 아주머니가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희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 뵈니 아주머니가 김형을 떠나도록 하십시오.”
나의 어조는 단호했다. 윤호 어머니도 옆에서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국태 처는 울기만 했다.
“아이는 또 어쩔거여? 낳으면 구만리 같은 색시 인생에 큰 짐이 될 텐데.”
“꼭, 낳을 거예요. 저이도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겨야 되지 않겠어요?”
“이그ㅡ, 알아서 혀.“
윤호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이를 낳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는 나로서는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것은 결국 본인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깨뜨리고 내가 말했다.
“아이를 꼭 낳으시겠다니 드리는 말씀인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김형 곁을 떠나십시오. 김형 곁에 머무르다가는 그 아이가 배속에서 다 자랄 때까지 살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제 말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김형 곁을 떠나라는 겁니다. 김형은 염려 마십시오. 읍에다 연락을 해두었으니 수용시설에라도 얼마 가 있으면 치료가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 울기만 했다. 윤호 어머니와 나는 새벽녘까지 그녀를 달래고 설득했다. 둘은 한사코 그녀에게 떠나기를 권했다. 그것은 어쩌면 끝이 안보이는 이 지루한 게임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기심에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국태 처는 울기만 할 뿐 대답을 않았다.
6
이른 새벽이었다. 국태 처가 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윤호네 집으로 뛰어 들었다. 국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골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일상사처럼 되어버린 일이라 마을 사람들도 이제 놀라지 않았다. 윤호네만 그 뒷치다거리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여늬 때처럼 윤호 어머니와 내가 뛰어 나갔고 윤호 어머니는 그녀를 윤호 방에 숨겨 주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면 다시 마을은 평온을 되찾을 터였다.
그러나 그 새벽은 일이 간단하지가 않았다. 국태가 전에 없이 윤호네 집안까지 쳐들어 온 것이었다.
“이 쌍년, 오늘밤엔 기어이 니년을 죽이고 말테다! 서방질한 년이 먼 염치로 찾아와?”
국태가 갖은 쌍소리를 다 내질렀다.
“개 같은 년, 빨라 나오지 못해? 숨어 있다고 내가 못 찾을 줄 알아? 이 개같은 년!”
그래도 국태 처는 윤호 방에서 꼼작 않고 숨어 있었다. 반응이 없자 국태는 작심한 듯 행동으로 나왔다. 나의 방문을 열어 제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않던 국태의 저돌적인 행동이었다. 이쯤 되면 방안에 쥐죽은 듯 숨어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윤호 아버지, 윤호 어머니도 마당으로 나왔다.
“김형, 진정하시오! 이 꼭두새벽에 마을 사람들 잠도 자야 하쟎소? 제발 진정 하시오”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국태는 나를 보더니 싸늘하게 웃었다.
“웃기는 자식, 야, 저년과 붙어먹은 걸 모를 줄 아느냐? 저년 뱃속의 애가 니 새낀 줄 다 알고 있어!”
“뭐요? 말이라면 다 말인 줄 아시오? 여기가 어딘데 와서 행패란 말이오?”
내가 소리쳤다. 생각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국태를 자극할까 보아 씩씩거리면서도 겨우 참았다. 국태가 윤호 방 쪽으로 내달았다. 내가 그의 앞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가 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완전히 미친 사람 같았다. 서서히 나의 내부에서도 야성이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이런 포악한 자에게서 여자를 구해야겠다는 의협심 비슷한 것이 솟구치고 있었다. 나 역시 국태의 멱살을 잡고 흔들다가 밀어 버렸다. 국태가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에 바친 그가 가까이 있던 지게작대기를 집어들고 내게 덤볐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국태가 휘두르는 작대기에 나의 어깨죽지가 맞았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뼈가 으스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의 야성이 드디어 폭발했다. 국태의 면상과 배를 사정없이 몇 차례 후려갈겨 버렸다. 술과 마약으로 지탱하는 국태가 맥없이 고꾸라졌다. 숨을 헐떡이는 그를 윤호 아버지와 내가 내 방으로 옮겨 놓았다. 나의 완력에 압도된 탓인지 기운이 떨어진 탓인지 국태는 이외로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새벽잠을 깬 마을 사람들 몇몇이 나와서 웅성거렸다. 저마다 이 환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내가 그들의 불만에 불을 지폈다.
“어르신들, 더 이상 저 친구에게 동정심을 베풀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이 대체 무슨 꼴입니까? 날이 밝는대로 저 친구를 수용시설에 보내는 절차를 밟도록 하십시다. 절차적인 일은 제가 처리하도록 돕겠습니다.”
“그려, 그려, 젊은이 말이 맞아. 조용하던 마을이 흉흉해 진 게 다 저 친구 탓이여!"
“그 전에 먼저 처리할 일이 있는데요. 저 친구의 부인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켜야겠습니다. 보시지요, 저 아주머니가 홑몸도 아닌데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말이 그 말이야. 우리 같은 농투성이야 생각은 있지만 어디 일을 할 줄 알아야지. 젊은이가 좀 수고해 주게. 우리 마을을 이전처럼 조용하게 만들어 주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의 말에 지지를 표했다. 윤호 아버지도 내심 이 골치아픈 일에서 해방되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나와 윤호 어머니가 윤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국태 처가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송구한 듯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일어났다. 내가 다소 고압적으로 말했다.
“아주머니 보셨지요? 이제 이 마을의 누구도 김형과 아주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머니가 잘 아실 겁니다. 김형도 살고 아주머니와 아기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일어나시죠. 아주머닌 김형 곁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 색시 윤선상님 말이 맞지라. 애기를 낳을라면 애기를 살려야 안쓰겄나. 저 화상 잠들었을 때 빨리 가부랑께.”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듯 했다. 손을 끄는대로 따라 나왔다. 그녀와 나는 초막으로 가서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몇 가지 옷가지를 챙김으로써 그녀의 짐은 간단하게 꾸려졌다.
초막을 나온 그녀가 갑자기 근처의 땅을 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땅 속에서 플라스틱 상자 하나가 나왔다. 궁금한 나머지 내가 그 상자를 열어 보자 몇 장의 사진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국태와 그녀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그녀는 그 상자를 가방 맨 아래 쪽에 보물처럼 간직했다.
그녀와 나는 역까지 40여분을 걸어갔다.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혹은 뒤에 남겨진 사람에 대한 연민과 걱정으로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아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이윽고 역에 도착했다. 나는 패스포드에서 돈을 꺼내었다. 십만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김형 걱정은 마세요. 내가 시설에 보내어 꼭 완치되게 하리다. 나중에 윤호네에게서 소식을 듣도록 하십시오.”
나는 내 말에 확산이 가지 않았지만 그녀를 안심시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는 군청까지 가서 국태의 시설 수용문제를 군청직원과 의논했다. 담당 공무원은 귀찮다는 듯 시큰둥하게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열흘이 걸릴지, 보름이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아무튼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국태 처가 마을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나도 안골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 번쯤 목이 마른 국태가 주전자를 들고 마을로 물을 길러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전처럼 행패를 부리지도 않았고 얌전하게 물을 떠 갈 뿐이었다. 무지막지하게 아내를 폭행하던 그도 아내가 떠난 지금 그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가 측은했지만 좀 더 그가 기가 죽기를 기다려 찾아가 보리라 생각했다.
국태 처가 마을을 떠난 지 엿새가 되는 날 아침 나는 안골 국태의 초막을 찾아갔다. 초막은 너무나 조용하여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적문을 열어보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덮고 자던 얇은 홑이불도 말끔하게 개어져 있었고 그릇이나 가재도구들도 비교적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하얀 봉투 하나가 유난히 눈에 잘 띠는 곳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국태가 내게 쓴 편지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윤형 받아보오
짧은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윤형처럼 좋은 분을 만나 기쁘기 한량없었습니다. 시절이 좋았다면 우리는 유쾌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마침내 내 곁을 떠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생각하면 가엾은 여자지요. 나는 또 한번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그녀와 연을 맺지 말아야 했는데.........
이제 윤형에게 실패한 나의 앙가주망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도청사수가 끝내 실패한 후 나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때 만약 내가 사살되었더라면 나는 이런 참담한 불행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체포된 우리들은 굴비처럼 엮어져 몹시 어둡고 습기찬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며칠 동안 굶은 채 한잠도 잠을 재워주지 않았습니다. 자술서라는 것에 사인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모 정치인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폭동을 선동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거기에 사인을 할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수없이 주먹과 발길질이 들어왔습니다만 매에는 어지간히 이골이 나인지라 완강히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두서너 차례씩 죽음과 삶 사이를 오락가락 했습니다. 의식이 몽롱해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허깨비로 보였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자술서라는 것에 서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구와 모의를 했냐며 다시 전기고문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헛소리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헛소리 중에 수찬이라는 이름이 나왔던 모양입니다. 수찬이는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를 도와주던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는 나와 친하기는 했지만 결코 운동권 인사는 아니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나 때문에 수찬이는 잡혀와 폭동의 주모자로 엮어졌습니다. 수찬이는 몸이 튼튼한 편이 못되었습니다. 열흘이상 계속된 고문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하고 항거도 하다가 끝내 옥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가 죽을 때 얼마나 나를 원망했겠습니까? 나는 살인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나는 변절자를 가장 증오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도 변절자 춘원 이광수를 더욱 증오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희망을 또 한번 꺾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이비 지식인은 가차없이 처단되어야 한다고 평소 나는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폭력에 굴복하여 결과적으로 변절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죄없는 친구를 무고하여 죽게 한 나는 춘원보다 더 나약한 사이비지식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줄곧 생각해왔지만 결론은 나 자신을 처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윤형, 나의 죽음은 예정된 것입니다. 이 더러운 육신을 처단하여 세상을 정화하고자 합니다. 나의 이런 결심을 약하게 만든 것은 아내 미숙의 존재였습니다. 난들 어찌 그녀가 가엾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삶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보내기 위해 타일러도 봤지만 듣지 않더군요. 그녀에게 파렴치하게 대했습니다. 수없이 폭력도 가했습니다.
이제 그녀가 내 곁을 떠나 여간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녀에게 너무 아픈 상처를 남긴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나는 그녀가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설령 낳더라도 이젠 어찌할 수 없군요. 저 세상에서 나의 죄를 속죄할 수 밖에요.
윤형, 이제 작별을 합시다. 윤형이 이 글을 읽을 때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오랜 마음의 행로에 결론을 내렸듯이 윤형도 이젠 방황을 끝내고 보람있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내 생각에 윤형 같은 사람은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자, 부디 행복하시길.........
7
편지를 다 읽은 후 나는 안골을 내려왔다. 한 사람의 유언을 읽은 뒤에도 내 마음은 그지없이 담담하기만 했다. 예정된 일처럼 나는 국태의 죽음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놀라웠다.
경찰서로 가서 편지를 내보이고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 있는가 알아보았다. 그때 까진 발견된 변사체가 없었다. 나는 연락처를 적어주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튿날 오전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해변가에서 국태 비슷한 변사체가 발견되었으니 와서 확인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해변가로 갔다. 사람들이 둘러서 있고 거적데기를 덮은 것이 있었다. 담당 경찰관에게 용건을 얘기했다. 거적데기를 걷고 시체를 보여 주었다. 물에 퉁퉁 불은 시체라 형체로서는 누군지 알기가 불가능했지만 입고 있는 옷이 국태가 틀림없었다. 담당 경찰관이 내미는 서류에 나는 김국태가 틀림없노라고 확인을 해준 뒤 서명을 했다.
이제 국태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남긴 것이라곤 내게 쓴 편지 한 통과 어쩌면 미숙의 뱃속에 꿈틀거리고 있을 어린 생명이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는 오욕에 찬 삶을 마감하고 군청 사회복지과의 무연고 시체인수팀에 의해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할 것이었다.
나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감상에 사로잡히기에는 시대가 너무 어두웠던 탓일까? 나의 어깨를 알게 모르게 짓누르고 있는 이 엄청난 무게를 견딜힘이 없어 끙끙거렸다. 그 무게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간 국태가 부럽기조차 했다.
해변엔 끝없이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나는 한 가닥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장군들도 머지않아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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